[덕암칼럼] 판도라 상자 뚜껑을 덮어야
[덕암칼럼] 판도라 상자 뚜껑을 덮어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23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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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또 터졌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 상자 뚜껑이 하나둘씩 열리면서 국민들의 공분 또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어쩌자고 그동안 실컷 잘 해먹다가 새삼스레 자수를 하고 반성하는 자작극은 무슨 연유일까.

큰 몽둥이로 맞느니 회초리를 자처하는 것인지, 아니면 양심의 가책 그 끝자락에 뒤늦게나마 회개의 여지가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달라질 것도 없는 묵은 폐단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일까.

어떤 일이든 터트려 봐야 아무 소용없고 분노만 자아낸다면 그 폭로, 그 자수, 의미도 없고 방안도 없다. 철근 없는 시멘트 타설로 순살 아파트 사건이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교육계의 비리가 터졌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수사기관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파헤쳐 낼 수 있었던 사건들이 새삼스레 무슨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일선 교사가 사설학원과 짜고 뒷돈 거래를 했다면 누가 피해자며 누가 수혜자일까.

오늘은 그것부터 차분히 짚어보자. 일단 돈을 받은 교사가 수익자다. 다음이 돈을 주고 쪽집게처럼 난이도 높은 문제를 풀어내서 상대평가의 수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험생이고 그 다음 유명학원의 사교육비를 슬슬 올려 받을 수 있는 학원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인 피해자는 누굴까. 돈 없고 빽 없고 부모 잘못 만나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풀어낼 수 없는 킬러문항 앞에 좌절과 함께 12년의 형설지공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고도 자신의 무능한 학력으로 치부하며 조용히 꿈을 포기해야 하는 순진무구한 학생들이다.

그래서일까. 전자의 3분야는 공범일 수밖에 없으니 이런 비리가 오랜 기간 공공연한 비리처럼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공범의 범위 안에 고위공직자나 가진 자들의 묵인이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반사회적 범죄인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사교육 업체와 연계된 현직 교원의 최근 5년 영리 행위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총 297명이 자진신고 했다고 22일 밝혔다. 한 명이 여러 건을 신고하기도 해 건수로는 총 768건이고 유형별로는 모의고사 출제 537건, 교재 제작 92건, 강의·컨설팅 92건, 기타 47건으로 나타났다.

이번 자진신고에 포함된 현직 교사는 총 297명이나 됐으며, 대부분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만들어 팔거나 학원 교재를 제작하는 등 영리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이런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넘어갈 일이었다.

왜냐하면 일부 교사가 사교육 업체에 킬러문항을 제공하고 최대 수억 원을 받았다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 제보가 슬슬 수면위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학생들의 성적 기준점이 그 바탕부터 틀어진 것이다.

조사결과 사교육업체로부터 5,000만 원 이상 돈을 받은 이는 45명으로 대부분 수도권 고등학교 교사이며 대형 입시학원이나 유명 강사와 계약하고 모의고사 문항을 수시로 제공했다는 점이다.

어떤 교사는 7개 대형 학원·강사에 모의고사 문항 제작을 대가로 5년간 총 4억8,526만 원을 받았고 또 어떤 교사는 2개 대형 학원으로부터 5년간 3억8,240만 원을 받았으며 또 다른 교사는 5개 학원에서 4년 11개월간 3억55만 원을 받았다고 신고했다.

세 교사 모두 겸직 허가를 받지 않았고 제자들의 꿈을 갉아먹은 좀벌레나 다름없는 행위를 한 것이다. 처음 킬러문항이 논란이 됐을 때 학원가에서 펄펄 뛰며 아니라더니 그래 어디 한번 파볼까 하고 정부가 칼을 빼드니 알아서 긴 셈이다.

금액 대비 교사 월급은 돈도 아니었다. 교육부는 사안별로 고의성, 중과실 여부, 영리행위 심각성, 수수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지만 이를 믿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몽둥이로 다부지게 100대 팰 일을 회초리로 살살 10대 때리며 국민들 앞에 쇼할 것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낫다. 이미 5년 전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10년 전부터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자진신고 기간을 20년 전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파보려면 아예 근본부터 다 파헤쳐서 뿌리를 뽑든가 아니면 판도라 상자를 열지 말아야 한다. 이번 자진신고 대상에서 겸직 허가를 받지 않은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징계 사유이고 겸직 허가를 받았더라도 해당 영리행위가 교사의 정상적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교사가 영리행위를 하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번에 자진신고한 교사들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모의고사 출제 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이쯤되면 교육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감사원은 물론 제3의 객관적인 수사기관도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부, 감사원 직원의 자녀들이 수혜를 입었더라도 공정하게 벌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나 기타 반사회적 범죄가 발생해도 유야무야 넘어간 일이 한두 건인가. 당장에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대다가 슬그머니 넘어간 사건의 이면에는 누가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용두사미의 마무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터트리질 말든가 그동안 잘 해 먹었으면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도 미덕이다. 지금 와서 까발리면 가난했지만 착실히 공부했던 학생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어쩌란 말인가. 이미 학창시절 꿈은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새치기 당해 무력한 현실 앞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의 길은 운명이 아니다.

욕심이 빚어낸 현실적 패배감이며 마치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백년지대계의 현주소다. 이러고도 매년 100조원이 넘는 돈이 교육에 편성되어 너도나도 돈잔치를 하지만 그것조차 모자라 검은 돈을 챙기는 것이다.

직접 칼로 협박해서 뺏지 않았을 뿐이지 돌고 돌아 양심을 팔고 삶의 가치 상실과 살아생전 돌이키지 못할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고급 아파트에 외제 차와 해외여행을 뻔질나게 다니는 동안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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