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 교수의 문학 산책]한정동과 정순철의 「갈잎 피리」
[박상재 교수의 문학 산책]한정동과 정순철의 「갈잎 피리」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08.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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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교수
박상재 교수

 국민동요 <따오기>로 유명한 백민(白民) 한정동(韓晶東1894~1976)은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이월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한 후 2학년 때 어머니가 별세하자 숭실학교를 자퇴한다. 그 후 1912년 평양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1916년 졸업한다.  

  1917년 총독부에서 시행한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진남포 시청 서기로 3년동안 근무한다. 1920년 삼숭(三崇)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5년동안 교편을 잡으며 동시를 쓰기 시작한다. 1925년 많은 습작 중 「소금쟁이」, 「달」, 「갈잎배」, 「어머니 생각」 등 4편을 골라 동아일보에 응모하여 당선한 후 동요 창작에 힘쓴다. 

  이후 1930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일보> 진남포 지국장 겸 기자로 있었고, 1937년부터 3년동안 <동아일보> 진남포 지국장을 맡아 일했다. 해방 후에는 조만식이 결성한 조선민주당 진남포 시당 창당 멤버로도 활동하였다. 그 후 6․25전쟁 전까지 진남포 용정국민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한정동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둘째가 아들이고 나머지는 딸이다. 전쟁이 난 후 1950년 12월 막내딸만을 데리고 피난을 한다. 피난 생활이 오래지 않을 것 같아 원고를 두고 왔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유실된다. 이후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국제신보>사 기자로 일하다,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덕성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데 탈렌트 전원주가 그의 제자이다.
  1958년에는 동화 33편, 동요(시) 33편, 동극 3편이 실린 『갈잎 피리』를 상재하였고, 1968년에는 동화집 『꿈으로 가는 길』을 펴냈다. 1968년 ‘고마우신 선생님상’의 상금과 개인 돈을 내어 1969년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제정하였다. 

  한정동은 1976년 6월 23일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여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남대문교회 묘지에 영면하고 있다. 그의 무덤가에는 아동문학가 박경종이 글씨를 쓴 ‘따오기 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백민은  방정환에 의해 창간된 <어린이>지에 1925년부터 1928년까지 4년 동안에 14편의 동요시를 발표한다. 같은 기간에 활동했던 윤극영(3편), 이원수(3편), 유도순 (3편)에 비하면 한정동의 왕성한 활동력을 알 수 있다.

  백민은 고향인 강서 초리면 이리섬의 자연과 정서를 동시로 표현하였다. 그의 고향 이리섬은 대동강에서 갈라져 나온 봉상강의 지류라 물이 풍부하고 갈대밭과 버드나무가 많았다. 백민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창포못의 소금쟁이를 노래하였고 갈대밭의 갈잎피리를 연주하였다. 
  그의 동시에는 푸른 갈잎(갈대잎)과 수양버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소재는 시각적 이미지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갈잎과 버드나무는 그가 나서 자란 이리섬의 상징이요 그의 정서적 고향인 것이다.

혼자서 놀을라니/갑갑하여서/갈잎으로 피리를/불어보았소//
보이얀 하늘가엔/종달새들이/ 봄날이 좋아라고/노래 불러요//
내가 부는 피리는/갈잎의 피리/어디어디까지나/들리울까요//
어머님 가신 나라/멀고 먼 나라/거기까지 들리우면/좋을 텐데요
                       
  백민이 <동아일보>(1925. 4. 9)에 발표한 「갈잎 피리」 전문이다. 백민은 어린 시절 혼자 놀기 심심하여 갈잎 피리를 즐겨 불었다. 갈대가 무성한 하늘에는 종달새들이 봄노래를 부른다. 시인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어머님 가신 나라’ 까지 들리라고 갈잎 피리를 분다. 갈잎 피리 소리는 작고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상적인 사모곡이다. 이 동요시에 <졸업식 노래>를 작곡한 정순철이 곡을 붙인다.

  정순철(1901년~1950)은 충북 옥천군 청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최윤은 동학의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딸이다. 청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던 정순철은 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하여 천도교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의 배려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외할아버지 최시형의 세 번째 부인이 손병희의 누이 동생이라는 인연이 있었다. 정순철은 손병희의 셋째 사위인 방정환과 절친하게 지내며 ‘천도교소년회’에 입회하여 늘 같이 활동을 했다. 그리고 방정환과 같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23년 동경음악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정환이 주도한 ‘색동회’를 함께 만들고, <어린이>지에 창작동요를 작곡하여 발표,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동요 「우리아기 행진곡」(짝짜꿍으로 개제)은 방송국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29년 제1동요작곡집 『갈닢피리』(개벽사)를 출간했다. 이 작곡집에는 「갈잎피리」(한정동), 「봄」(한정동 ), 「짝짜꿍」(윤석중), 「늙은 잠자리」(방정환) 등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정순철은 1946년에 윤석중이 작사한 졸업식 노래를 작곡하여 전국의 졸업식장에서 불렸다. 

  6.25 전쟁은 백민과 정순철의 운명을 갈라놓고, 수많은 이산가족을 낳게 했다. 백민은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오고, 정순철은 9.28 서울수복 때 학교(성신여고)를 지키고 있다 인민군에 끌려가 생사를 알 수가 없다. 6.25 때 북으로 끌려가다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자가 어디 옥천 출신 정지용, 정순철 뿐이랴! 전쟁의 비극과 상흔은 슬픈 갈잎 피리소리처럼 현재 진행형이다. 경기도 시흥시 물왕호수에는 어린 시절 한정동이 살았던 고향의 자연처럼 갈대숲이 무성하다. 근처에는 백민 한정동을 기리는 따오기문화공원과 따오기아동문화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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