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덕암칼럼]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30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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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아이가 울면 그치게 할 목적으로 순사가 나타났다거나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고 겁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약 4~50년 전 일이다.

그만큼 일본 순사가 한국인들에게 두려운 존재였고 망태 할아버지란 넝마 통을 짊어진 고물 장수 할아버지가 아이를 납치해 가는 경우를 말하는데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그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실제 울음을 그쳤다.

자장자장 하며 곱게 달래도 충분히 행복하게 잠들 아이를 공포의 단어로 겁박하여 일시적으로 그치게 한다면 재우는 부모에게는 쉬운 일이며 재미 삼아 한 말이라도 듣는 아이에게는 공포의 후유증을 간직하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 여론을 보면 마치 망태 할아버지가 분야마다 판을 치는듯 하다. 잘 살던 아파트였음에도 갑자기 철근이 부족한 상태에서 레미콘을 타설했으니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거나 이미 족집게 문제가 공교육에서 학원으로 넘어갔으니 열심히 공부해봐야 소용없다는 등 힘 빠지는 소식들이 연일 쏟아졌다.

정치인들이 돈봉투 받았다며 대서특필 했다가도 슬그머니 넘어간다거나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한 소식들이 하루아침에 일벌백계할 것처럼 떠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뉴스가 쏟아질 때마다 망각의 냄비에 물을 끓인다.

최근 신종 망태 할아버지 등장에 한국은 물론 중국과 제 3국의 여론이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8월 기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저장탱크에는 사고 직후부터 발생한 오염수 약 134만 톤이 보관돼 있다.

일본은 이를 알프스라 불리는 다핵종제거설비로 방사성 물질 62종을 처리해 하루 최대 500톤 씩 약 30년에 걸쳐 방류한다는 계획이지만 삼중수소는 충분히 제거되지 않아 바닷물로 희석하는 절차를 거쳐 방류하게 된다.

약 1km의 해저터널을 통해 방류된 오염수는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태평양까지 흘러 미국 서부해안까지 이동한 뒤 캘리포니아 해류의 영향으로 남하한다. 이후 북적도해류를 타고 순환하며 우리 해역으로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4~10년이라는 것이다.

앞서 중국, 타이완은 1~2년 안에 먼저 도달하게 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한국 바다고 1~2년 안에 온다고는 하지만 방류 첫날부터 난리다. 약 10년 후 국내 해역 평균농도의 약 10만 분의 1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 추정은 어디서 나왔을까.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동으로 밝힌 일본 오염수 방류에 의한 삼중수소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세부적 내용으로는 10년 뒤에 삼중수소는 ㎥당 약 0.001Bq 내외 평균 농도로 그 영향은 기존 삼중수소 농도의 10만분의 1 수준일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해류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수심 200~500m에 해당하는 아표층에서는 세슘이 금방 일본 주변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깊은 곳의 해류는 북태평양을 돌지 않고 고스란히 인근 해역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수심이 깊은 곳의 경우 해류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흐르는 모드 워터 현상 때문으로 오염수가 북태평양을 크게 한 바퀴 돌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연구팀이 2011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세슘이 수심에 따라 어떤 식으로 퍼졌는지 분석한 결과 빠르면 1달, 늦어도 6~7개월 안에 우리 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삼중수소나 세슘의 반감기는 각각 30년, 12년 정도인데 국내외 시뮬레이션을 종합하면 세슘의 경우 제주는 1개월 이내, 동해엔 6개월 이내면 도착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독일 킬 대학 헬름홀츠해양연구소 역시 지난 2012년 논문을 통해 방류된 오염수가 7개월 만에 제주도 앞바다에 도달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앞서 우리 해역에 280일이면 원전 오염수가 도달할 것이라고 밝힌 중국 칭화대 연구소는 자국의 경우 240일이면 오염수가 중국 동부 연안에 도달하고, 1200일 만에 북태평양을 뒤덮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부는 독자적인 해양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 우리 해역 200곳은 물론 일본 근접 공해상 8곳과 태평양 연안 10곳으로 모니터링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데이터나 증거도 없이 일단 엄청난 방사능 유출이라는 상징적 로고앞에서 전국이 난리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첫날 국내 대형마트에서 수산물 매출이 급증했는데 오염된 물고기가 매장에 올라 오기 전에 미리 사둔다는 심리다.

실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멸치·황태 상품군은 130%, 건해조류는 100%, 넙치는 150%, 미역은 180%, 소금은 250%나 증가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오염수로 오염된 물고기를 오염되기 전에 미리 사둔다며 싹쓸이 쇼핑을 하는 시민들로 붐볐다.

북태평양을 돌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오염수의 방류소식에 방류 당일 미리 사두는 행동을 뭐라고 표현할까. 앞서 강조한 것처럼 오염수의 농도와 방류시기, 북태평양을 돌아 언제쯤 오는지, 심해에서는 인근 해역에 더 빨리 도착하는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해석이 다른데 오직 일반 국민들만 오염되기 전에 사 둬야지 하는 단순무식한 발상이 현대판 망태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약 20년 전 일이다.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식에 대형마트마다 라면 사재기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 후 북한 미사일이 하와이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주민들이 공포에 떨며 사재기를 한 적도 있었다.

아파트 고층에 들어앉아 물도 전기도 없는 콘크리트 건물잔해에서 생라면만 부숴먹고 버티겠다는 것인가. 당시에는 북한이 망태 할아버지였고 지금은 후쿠시마 원전이 일본 순사나 마찬가지다. 선량하고 착한 국민들 헷갈리게 선동할 게 아니라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이미 11년 전에 벌어진 일을 지금와서 피켓시위 하고 여당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삼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모양새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이미 방류 훨씬 전에 고민하고 대안을 세웠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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