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의 문학산책] 박목월과 ‘물새알 산새알’
[박상재의 문학산책] 박목월과 ‘물새알 산새알’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09.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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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朴木月 1915-1978)의 본명은 박영종(朴泳鐘)으로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리던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1915년 1월 6일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수남리에서 아버지 박준필(朴準弼)과 어머니 박인재(朴仁哉)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일이 지날 무렵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로 이주하였다. 

  1929년 건천공립보통학교와 1935년 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3년 계성중학교 재학 때 〈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짝짝」이 특선으로 뽑히고, 그해 〈신가정〉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되어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1935년 경주군 동부금융조합에 잠시 취업했다가 일본로 건너가 영화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1938년 여름 스물 세 살 목월은 공주 처자 유익순(劉益順)과 혼례를 올렸다. 유익순은 선교사가 설립한 공주영명학교(현 영명고등학교) 출신이다. 박목월은 경주에서부터 부친과 함께 택시를 타고 공주제일감리교회로 와서 하얀 불두화 꽃송이를 가슴에 달고 혼례식에 참석했다.

  1939년 정지용이 <문장> 9월호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를 추천(1회)했고, 12월호에 「산그늘」을 추천(2회)했으며, 1940년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 이 추천 완료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지용은 추천사에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 날만 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아, 민요풍에서 시에 발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소월이 천재적이요, 독창적이었던 것이 신경감각 묘사까지 미치기에는 너무나 ‘민요’에 시종하고 말았더니 목월이 요(謠)적 데생 연습에서 기까지의 콤퍼지션에는 요가 머뭇거리고 있다. 요적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이다.” 그의 호 목월(木月)은 변영로의 호 수주(樹州)에서 나무 목(木)을 따오고 김소월에게서 달월(月)을 빌려다 목월이라 지었다.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동부금융조합에 부이사로 승진했으나 사임하고, 교직에 종사하였다. 모교인 대구 계성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 연세대학교 · 서라벌예술대학 등에 출강했다. 1956년에는 홍익대학교 전임강사가 되었다가 조교수로 승진했으며, 1959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겨, 부교수, 교수, 문리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청록집』(1946, 3인 공저), 『산도화』(1955)에서 동심을 바탕으로 한국 고유의 정서가 묻어나는 시를 즐겨 썼으며, 주로 자연을 노래하는 짧은 서정시를 발표하여 한국 시단의 전통적 시풍을 열었다. 1950년대 이후 『난, 기타』(1959), 『청담(1964)』에서는 담담하게 신변 서사를 풀기도 했다. 『경상도의 가랑잎』(1968), 『무순』(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9, 유고시집) 등 후반기에 쓴 작품들은 시재가 역사적, 사회적 현실로 확대되고 생각의 내연도 더욱 깊어졌다. 

  월간지 <아동>(1946), <동화>(1947), <여학생>(1949), <시문학>(1950~51) 등을 편집, 간행하였고, 1973년부터는 원간 <심상(心象)>을 발행하며 문학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아시아 자유문학상(1955), 대한민국 문학상(1968), 서울시 문화상(1969), 국민훈장 모란장(1972) 등을 받았다. 

  1952년 가을 목월은 자신을 흠모하는 여대생 제자와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도피해 밀월을 한 적이 있다. 이를 알고 찾아간 부인이 겨울옷과 용돈 봉투를 내밀고 조용히 떠나자 모닥불 같은 사랑을 접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제주항을 떠난 제자의 뒷모습을 보고 심정을 토로한 시가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로 시작하는 「이별의  노래」(김성태 작곡)이고, 이를 목도한 제주제일중 국어교사 양중해(1927~2007) 시인은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로 시작하는 「떠나가는 배」(제일중 음악교사 변훈 작곡)를 썼는데, 두 곡 모두 한국인이 애창하는 가곡이 되었다. 

  목월은 1978년 3월 24일 새벽 산책길에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서울 용산구 원효로4가에 있는 자택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8시에 63세 나이로 타계했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를 지낸 박동규 시인이 그의 장남이다. 박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그리 풍족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자녀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 아버지였다. 

  목월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나그네’처럼 떠나갔지만, 그의 시는 영원한 생명체인 ‘물새알 산새알’이 되어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물새는/물새래서 바닷가 바위틈에/알을 낳는다./보얗게 하얀/물새알.//
산새는/산새래서 잎수풀 둥지 안에/알을 낳는다./알락달락 얼룩진/산새알.//
물새알은/간간하고 짭조롬한/미역 냄새/바람 냄새.//
산새알은/달콤하고 향깃한/풀꽃 냄새/이슬 냄새.//
물새알은/물새알이래서/날개쭉지 하얀/물새가 된다.//
산새알은/산새알이래서/머리꼭지에 빨간 댕기를 드린/산새가 된다.
                                          「물새알 산새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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