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아나바다 장터
[덕암칼럼] 아나바다 장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9.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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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이른 아침 여명이 동녘 하늘을 비집고 붉게 떠오를 때 어김없이 들리는 딸랑거림이 새벽 아낙네의 잠을 깨운다. 손수레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싣고 그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를 담아 파는 청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30세는 되었을 듯한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새벽 5시면 약속이나 한듯 순두부를 팔지만 요즘처럼 검은 비닐봉지 하나없이 자루가 달린 바가지가 전부였다.

이미 익숙해진 주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방에서 쓰던 바가지를 들고 순두부를 사러 모였고 청년도 당연한 듯 바가지로 순두부를 퍼 담아 주었다. 약 1시간정도면 바닥을 볼 순두부 장사는 거래되는 과정에 그 어떤 쓰레기도 생기지 않았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김도 하얀색 종이띠만 두르면 거래가 가능했고 논에서 생산된 쌀조차도 됫박에 퍼 담아 자루로 거래됐던 시절이 있었지만 누구도 불편한 줄 몰랐다. 포장에 대한 생각은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닦고 조이고 기름쳐가며 고쳐 쓰다가 이제는 수리비가 중고차 값을 넘기면 가차없이 폐차시키는 시대가 됐다. 한때 동네마다 ‘전파사’라는 곳이 있어서 라디오나 TV를 고쳐 쓰기도 했고 의류도 구멍 난 양말까지 실로 꿰매어 쓰다가 이제는 유행만 지나도 모두 헌옷 수거함으로 버려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이 이렇듯 자원이 넘치고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수준이 높은 나라로 평가 받을까. 필자가 한때 대형 웨딩홀도 운영해 보고 리조트도 운영해 보았지만 남아도는 음식쓰레기나 일회용 용기를 보면 작게는 이건 아니다 싶고, 크게는 지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크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일단 퍼 담아 버리는가 하면 캠핑 온 고객들이 챙겨온 일회용 용기에는 플라스틱은 물론 금속으로 된 대형 맥주통까지 다양하다. 자연보호와 친환경 소재를 강조하면서 커피나 음료수 빨대마저 종이로 만들고 일회용 봉투 무료 제공시 벌금을 매긴다며 요란을 떨지만 과연 이런 정책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형식적인 것인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정작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하나마나인 정책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지구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는지 초등학생도 알만한 일을 하지 않고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 서양에서 소비자 중심의 포장지로 매출을 향상시키기 위한 변화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에서 그것을 흉내 낼 일도 없는데 우리가 버린 쓰레기, 기타 재활용 제품이 가능했던 폐기물들은 어디가지 않고 우리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고 만다. 묻어도 땅이 오염되고 태워도 대기가 오염된다.

바다에 버리면 해양투기이고 이대로 계속 묻고 버리다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 재앙은 후손들의 몫이 된다. 누가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의 해결점은 최초 원인제공자로 거슬러 가보면 찾을 수 있다.

소비자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원하니 제조업체는 화려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내용물이야 어찌되든 잘 팔리기만 하면 되기에 뒷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농사를 지어보며 느낀 것이 깻잎은 제 아무리 꼼꼼하게 농사를 지어도 벌레가 먼저 먹기 마련이다.

소비자는 말끔하고 상처 없는 채소를 원하고 생산자는 소비자 요구에 맞추려니 농약을 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소비자가 야채를 입으로 먹으면서 선택은 눈으로 하는 것이 현실이니 먹고 어찌되든 그것까지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다부지게 약을 치고 보는 것이다.

과일도 마찬가지이고 겨울철 대하나 빙어도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생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입으로 먹을 것은 구멍 난 잎채소가 더 낫다는 것을 소비자도 알아야 한다.

혹자는 소비의 미덕에 대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라고 한다. 버린 것들의 종착점은 김포매립지나 소각장 지자체의 재활용처리장에서 해결하겠지만 과연 현재 일반 국민들이 나름 성실히 재활용해서 버리는 각종 쓰레기들이 몇 %나 재활용 소재로 사용될까.

재활용을 위해 유리, 금속, 플라스틱, 스티로폼, 종이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재활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생활습관이다. 이미 일상에서 포장용기의 과대 생산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향후 더 많은 쓰레기 양산은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다.

지나간 일 보다는 다가오는 일에 국민들의 눈높이를 높이고 정부의 시책도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에서 밀수입 되거나 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미제만 봐도 환장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 중고차들이 범람하고 있는 베트남이나 필리핀을 가 보면 한국에서 헐값에 넘겨진 버스나 트럭,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한국산이면 버스 광고판까지 그대로 붙어 있어야 제 값을 받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 의정부 부대찌개의 명성 뒤에  있는 명칭의 배경이 슬픈 일인줄 알면서도 구멍 난 청바지가 고가에 수입되는 현상은 무엇이라 해석할 것인가. 이제 다가올 미래에 필요한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견해를 정치권에 기대한다.

우매한 국민들이 환경보호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신중히 고려해 볼 일이다. 오늘은 환경부가 정한 법정기념일로 2009년 9월 6일 정해진 ‘자원 순환의 날'이다. 9와 6은 서로를 거꾸로 한 숫자이므로 이에 착안하여 순환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올해로 제15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온갖 이벤트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재활용의 주인공은 폐지를 수집하는 노년층이다. 수 십 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속담에 ‘마당 쓸고 동전 줍고’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길바닥에 1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다. 만약 1,000원짜리 지폐가 있었다면 당연히 주웠겠지만 10원이 100개 모이면 1,000원인데 산술적으로 알면서도 돈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100원짜리가 그런 신세가 됐다. 필자가 지난 2019년 겨울 미국 뉴저지 공원에서 만난 노인의 행동에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를 소개한다. 이어폰을 낀 채 손에는 금속탐지기가 들려있었는데 공원이나 특정 공간에 대한 점유비를 내고 동전을 줍는다는 것이다.

1센트짜리까지 금속탐지기를 통해 모두 주울 수 있으니 하루 평균 한국 돈으로 약 5만원 이상의 수입을 챙긴다고 했다. 물론 버려지는 동전을 재활용 하면 다시 은행을 통해 불필요한 동전 발행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한국은 그러한 직업 자체가 없다. 한국사회에서도 지금은 뜸하지만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장터’가 한때 유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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