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의 문학산책] 해바라기를 사랑한 시인 정지용 윤동주
[박상재의 문학산책] 해바라기를 사랑한 시인 정지용 윤동주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09.12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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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태양의 계절이다. 부서지는 햇살을 안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꽃이 있다. 소낙비를 좋아하는 해바라기이다. 여름을 안고 피는 정열의 꽃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휜칠하게 키가 커서 멋진 신사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겸손하기까지 하다. 고흐를 비롯한 화가들도 해바라기를 즐겨 그리고 동서고금의 시인들도 해바라기를 노래했다. 요즘은 복을 가져다 주는 꽃이라고 해바라기 그림을 집에다 두기도 한다.

해바라기 씨를 심자./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해바라기 씨를 심자.//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바둑이는 앞발로 다지고/괭이가 꼬리로 다진다.//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해바라기는 첫 시악씨인데/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고개를 아니 든다.//가만히 엿 보러 왔다가/소리를 깩 ! 지르고 간 놈이/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청개고리 고놈이다. 

정지용(鄭芝溶, 1902~1950) 「해바라기 씨」 전문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동시 「해바라기 씨」 전문이다. 바둑이와 고양이가 누나를 도와  꽃씨를 심는 평화로운 농촌 모습을 보여 주는 동시이다. 누나가 손으로 해바라기 씨를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고양이가 꼬리로 다진다. 해바라기 씨를 심는 것이 해방의 꿈을 심는 것이다. 청개구리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던 일본 순사로 해석한다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군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인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18년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졸업하였다. 이듬해 4월 휘문고보의 장학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휘문고보 영어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30년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ㆍ이효석ㆍ이종명ㆍ김유영ㆍ유치진ㆍ조용만ㆍ이태준ㆍ이무영 등과 함께 9인회를 결성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이상(李箱)의 시를 소개하여 그를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9년부터는 <문장(文章)>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백록담』(문장사)을 발간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고, <경향신문>의 편집주간에 위촉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였다. 1950년 6월 한려수도를 여행 중 6·25를 맞아 서울로 급히 돌아왔지만, 얼마 후 김기림, 박영희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한 걸로 보인다. 북한에서 발행하는 <통일신보>는 1993년 4월에 정지용이 1950년 9월 납북 과정에서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부근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누나의 얼굴은/해바라기 얼굴/해가 금방 뜨자/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누나의 얼굴/얼굴이 숙어 들어/집으로 온다.

윤동주(1917~1945) 「해바라기 얼굴」

  윤동주(1917~1945)의 「해바라기 얼굴」 전문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창씨개명을 한 후, 「참회록」이란 시도 썼다.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후쿠오카의 감방에서 별이 된 민족시인이다. 윤동주 시인과 일제의 핍박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마음이 짠해지는 동시이다. 

  윤동주는 생전인 1941년에 시집을 출간하려 했지만,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 때문에 스승인 이양하 교수의 만류로 출판하지 못했다. 1948년 윤동주의 후배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 친구 강처중의 노력으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상재할 때 정지용은 서문을 써주었다. 윤동주는 1942년 봄 도일하여 도쿄의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릿쿄대학을 한 학기 다닌 후 여름에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해 다녔다. 따라서 정지용과 윤동주는 도시샤대학 영문과 동문이다.

  요즘 전국적으로 해바라기꽃이 한창이다. 텃밭에도 언덕에도 빈 자투리 땅에도 정지용 시인의 동시처럼 희망의 해바라기 씨앗을 심자. 윤동주 시인이 슬프게 묘사한 누나 얼굴을 기운차고 활짝 웃는 해바라기 얼굴이 되게 하자. 바야흐로 전국의 여러곳에서 해바라기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함안, 태백, 연천, 고창, 경주 등의 해바라기 축제가 유명하다. 높은 꽃대에 커다란 희망을 달고 웃음과 용기를 주는 해바라기의 기상을 가슴에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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