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달라도 너무 달라진 추석
[덕암칼럼] 달라도 너무 달라진 추석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9.2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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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추석 명절을 3일 앞둔 9월의 마지막 월요일, 이미 들뜬 분위기에 동화된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직원들의 월차·연차를 써서라도 23일부터 10월 4일까지 대체 공휴일을 써서 쉬든, 10월 5일과 6일을 써서 쉬든 앞뒤로 최장 12일을 쉴 수 있는 최장 기간 휴가를 맞이하게 됐다.

이제 명절 보너스만 두둑하게 받으면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으며, 대형마트나 전국의 유명 관광지에는 예약이 넘쳐 빈방을 구할 수 없게 됐다.

반려견을 동반할 수 없는 경우 애견호텔도 예약이 밀릴 정도이며 해외로 눈을 돌린 사람들로 인해 공항은 북새통이다.

이정도면 대한민국 추석 명절은 참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여 더 없는 파라다이스로 여겨진다. 휴가를 얻어 쉬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반대로 가난하거나 쉴 수 없는 대중교통이나 기타 우체국 택배는 추석 명절이 더 힘든 날이다. 앞서 거론했듯 공직자나 대기업이야 이미 탄탄한 반열위에 정해진 법률과 근로계약에 의거 정상적인 휴가와 보너스를 받겠지만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경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차 떼고 포 떼고 일 쉬고 저래 쉬고 매출 대비 수익률은 고사하고 본전 건지기도 벅찬 사업장들에게는 너도나도 본것은 있어서 같이 쉬어야 한다거나 보너스를 더 달라고 눈치를 주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절이 반가울 수가 없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반공일이 없어지고 놀토라는 격주 휴일제도가 생겨나고 이제 주5일제도 모자라 빨간 글씨에 쉬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대체 공휴일까지 정했으니 누가 근로의욕을 가질 것이며 최근 주 4일제까지 등장하니 사업장의 경영진들은 한숨만 늘어갈 뿐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가 몇 년 더 이어진다면 땀 흘려 일할 사람들만 피해의식을 가질 것이며, 모두 놀고 먹어야 한다는 이기적이고 안일한 사고가 확산하면 결국에는 3D 직종에 근무하던 외국인 근로자들마저 동급으로 대우해 달라며 보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휴일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공정은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 놀게 해준다고 생색내고 선심성 공약으로 표를 얻었다면 이제 그 표,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진정 국민을 위하고 국가의 번영을 지킬 요량이면 불법 체류자를 모두 보내고 그 자리에 기름때 묻은 장갑과 농번기 밀짚모자를 쓸 수 있어야 한다.

대신 온갖 수당으로 길들여졌던 예산을 고임금으로 지급하는데 보태어 경영진들이 구인란에 허덕이지 않게 해야 한다. 돈 문제는 이쯤하고 과거 스스로를 본토라 여기며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했던 중국이 유일하게 한국의 예절에 대해서는 머리를 숙인 바 있다.

부모는 3년 상을 치르고 모든 일상에 법도를 정하여 지나칠 만큼 공손하고 정중한 언행들이 우리 조선의 미덕이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효를 중시했고 지금도 부모의 안부를 위해 명절이면 일주일을 넘게 걸려도 고향을 찾는가 하면 부모의 봉양을 위해 어렵사리 얻은 직장까지도 부모근처로 옮기는 효의 실천이 당연한 현실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변화를 보면 발전보다는 기형적으로 성장한 사회적 분위기가 망국의 나팔소리를 내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의 부모는 자식의 귀향을 기다리며 평소 농사지은 농산물을 바리바리 보따리를 묶어놓고 기다렸다.

지금의 중국처럼 귀향길은 당연한 것이었고 열차와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돗자리를 깔고 표를 사려는 행렬이 명절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향한 이농현상은 불과 20년 동안 급격히 늘어났고 정부의 국토균형 발전법은 예산만 낭비하고 공염불에 불과했다.

이젠 농촌으로 갈 일도 점차 없어지고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풍경은 전설이 되고 말 것이다. 당초 1차 산업의 농경사회에서 풍년의 결실을 기대했던 추석 명절의 의미는 이제 휴가라는 단순한 노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민족대이동도 없어지고 친인척간의 만남은 더더욱 상상도 못하게 됐다.

형제가 있어야 이종도 고종도 사촌도 있는 것이고 나란히 줄설 친척이 있어야 차례도 지내는 것일진대 음력 8월 15일 대보름달이 뜬들 달 보고 소원 빌 일도 없을 것이며 농사지은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으로 풍년의 보람을 느껴야 할 차례상은 마트에 가면 온갖 산해진미가 다 포장용으로 장만되어 있다.

그나마 지금은 그렇게라도 지낸다치지만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차례음식도 배달로 주문할 것이고 그나마 그 주문도 5년이 더 지나면 사라질 우리 민족의 소중한 풍습이나 자산일 것이다.

추측일까.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우리민족의 정체성 분실과 자긍심 유지의 현주소를 볼 때 더 빨리 오면 왔지 늦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필자를 비롯해 나름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식인들의 우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명절 음식 만들게 했다고 명절 지나면 이혼율이 폭등하고 어쩌다 만난 형제·자매들은 부모 재산분배로 눈치싸움하기 바쁘며 어렵사리 싸준 농산물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현실이었다.

인구소멸에 따른 귀향객들의 현저한 감소는 곧 다가올 한국의 추석이 얼마나 빨리 달라질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벌초도 옛말이 될 것이며 고유의 아름다운 한복은 미국에서 수입된 찢어진 청바지에 밀려 촌스럽고 거추장스런 천 조각에 불과해질 것이다.

나열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 밤새 떠들어도 할 말이 많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민족의 정체성도 고유의 풍습조차도 모두 망각하고 오로지 입에 들어가는 것 안일한 쾌락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찬란했던 한민족의 미래는 서양문물의 발자국만 쫓아가는 문화적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이러라고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이 희생하진 않았다. 모든 게 정치인의 욕심이라지만 그 정치인도 유권자가 뽑았으니 최종 책임자와 해결할 자는 오로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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