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말이 뜻이 된다면
[덕암칼럼] 말이 뜻이 된다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0.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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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엄마·아빠를 발음하게 되고 맘마와 걸음마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말을 배워나간다. 그렇게 늘어난 실력으로 고난이도의 전문용어를 전광석화 같이 써가며 유능한 MC를 맡거나 화술로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하지만 제 아무리 말을 잘해도 영어 한마디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며 이제는 중국어, 일어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지식인 축에 든다. 문제는 그 정도 수준까지 능숙하게 외국어를 하거나 외국의 글을 익히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가 영어권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아내와 자식들을 외국에 보내고 가장은 돈만 벌어 보내는 일명 기러기 아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때로는 타국에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가정파탄까지 나는 경우가 있었으니 언어로 인한 비극의 한 대목이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뜻이 담겨있다. 같은 말이라도 중국은 3성 베트남은 5성 등 성조에 따라 다른 뜻이 담겨있으니 듣는 상대방은 뜻만 달라져도 아니함만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어도 이런 단점을 지니고 있다.

입에서 소리 나는 말과 타는 말이 같은 음이고 글씨 또한 같으나 앞뒤 단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가령 바다에서 배를 타고 과일 배를 먹으니 맛이 두 배나 다르다고 한다면 외국인들 입장에서 어찌 해석할까.

오는 한글날에는 글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필하겠지만 말에 대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오늘만큼은 되짚어보자. 먼저 미용실을 헤어샵, 식당을 레스토랑, 위기나 낙망을 슬럼프 또는 딜레마라고 한다면 그래서 모든 이들이 영어로 된 단어에 치중하다 우리말을 잃어버렸다면 어찌될까.

이미 한국어의 절반 정도는 분실되어 점차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나 이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향후 10년 정도 지나면 한국말의 정체성이나 의미, 통용되는 비중의 축소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영어는 국제적 대세다. 만약 태국이 강대국이 되어 국방, 경제 등 모든 면에서 힘을 가졌다면 우리는 태국어를 우리말에 뒤섞어 태국인이 되었을 것이고,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모든 사회적 언어로 통용했을 것이다.

한글날이 글의 날이라면 오늘은 말의 날이나 마찬가지다. 영어는 영어대로 유창하게 해야 맞는 것이고 우리말은 우리말대로 잘 지켜져야 맞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서 의원들이 만들어 내는 신조어는 우리말의 정체성마저 흔드는 헷갈리게 하는 행위다.

줄임말, 듣도 보도 못하는 잡것들, 듣보잡 등 온갖 신조어들이 지금은 마치 유식한 것처럼 통용되어 관심을 끌겠지만 시대가 달라지거나 유행이 지나면 무슨 소리인지 해석조차 어려워지게 된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서 기성세대가 되면 과연 우리말이 얼마나 지켜질까. 심히 우려스럽다. 그리고 그 원죄는 지금 세대가 우리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함부로 외래어를 섞어 쓴 잘못으로 치부될 것이다.

지난 9월 30일은 국제사회가 정한 ‘국제 번역의 날’이었다. 성경을 외래어로 옮겨 쓴 업적을 기려 만들어진 날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 일이니 거두절미하고 일단 우리말의 소중함과 민족의 색깔을 분명히 하자는 뜻에서 말을 지켜야할 필요성이 차고도 넘치는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지구의 종주국이 된다면 아마도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표현의 정확성이 뛰어난 한국어를 배울 것이고 한국어를 모르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현실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국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며 다 빼앗겨도 말이나 글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머지않아 한국은 영어로 말하는 나라가 될 것이며 결국에는 미국의 언어식민지가 되어 촌스러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눈치보며 줄어들 것이다.

개가 멍멍대듯 호랑이라 으르렁 대듯 말은 소리이자 자신의 언어이며 뜻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명확한 뜻도 모르면서 무조건 외국어를 따라하는 것이 얼마나 무식하고 자존감 없는 표현이며 소리에 그친 공산이 크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말이나 글에 대한 번역은 사람이 공부한다고 늘어나는 시대를 넘었다. 외국어를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번역기라는 첨단기기가 등장했기에 AI가 모든 나라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시대가 됐다.

국제사회에서 특정 국가의 언어 보다는 각국의 언어가 국가의 가치나 국격이 되는 현실이 됐다. 2023년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말을 귀히 여겨 외국어로 뒤범벅된 일상의 언어를 정제해야 한다.

필자가 얼마 전 반려견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준 사례가 있었다. 사료를 늦게 주니 마구 짖어댄 일이 있었는데, 억양을 들어보면 분명 항의성 소리였고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니 자신이 짖은 소리에 고개를 연신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물론 개소리 뿐만 아니라 새소리도 마찬가지였고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즉, 자신들만의 소리로 같은 종족끼리는 뜻을 담아 소통한다는 것이다. 개가 개소리를 잊고 고양이 소리로 서로 소통한다면 갓 태어난 강아지도 야옹거리며 살아가게 된다.

필자가 최근 국제결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베트남 여성들과 한국 남성들을 중매하여 결혼을 성사시키는 일인데, 베트남 언어를 배워보려고 어설프게 글씨도 써보고 말도 해보았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필자는 굳이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권장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 다만 우리 국민이라도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과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서 훗날 우리말을 어설프게 쓴다거나 어색해 한다면 한번 잃어버린 말을 되찾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말에서 영어를 빼면 말이 되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미 절반은 잃어버린 셈이고 이대로라면 접두사나 고유명칭 빼고 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문화 예술은 물론 체육종목이나 의상, 머리색깔과 타투로 피부에 그림그리기까지 모두 미국의 식민지화되고 있다. 그나마 말이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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