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나라의 운명이 임산부에
[덕암칼럼] 나라의 운명이 임산부에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0.11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쩌다 임산부에 달렸다. 모든 물질과 문명의 문화적 가치는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고 인간이 없다면 그 사회와 국가의 존재감은 동시에 사라진다.

마치 집주인이 사망하면 그 집이 주인을 잃어버리고 타인이 집을 점령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다. 북한과 중국은 2.22명으로 부족한 아이들이 결국에는 북한에게 고스란히 나라를 내줄 수도 있다는 산술적 결론이 나온다.

굳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이대로 두면 자연스레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남한의 인류가 멸종할 것이고 총 놓고 빈손으로 내려와도 될 일이다. 물론 통계상 그렇다는 얘기다. 굳이 아니라고 펄쩍 뛸 일도 아니다.

정부가 저출산 예산편성을 제 아무리 해도 겉도는 정책에 돈만 날리지 실효성이 떨어지면 이미 실패한 정책 아니던가. 관련 공직자들이 책임지는 일은 없다. 만약 자기 지갑의 돈으로 정책을 세우라 해도 이랬을까.

입법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이 실패하여 그 손해액을 급여에서 공제한다 해도 이랬을까. 농사꾼이 농정업무에 어느 정도 경험치를 덧붙여야 하듯 임산부에게 어떤 점이 필요한지 물어야 했다.

가임여성에게 왜 임신이 두려운지 결혼하고도 피임을 하는지 물어야 했다. 아이는 여자 혼자 임신하던가. 미혼 남녀가 왜 결혼을 기피하는지. 무엇이 두려우며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 저출산 정책에 대해 정부가 시행한 정책들을 살펴보면 실패의 원인은 간단히 찾을 수 있다.

사회단체 보조금 타먹던 일부 단체들이 해변가의 쓰레기를 수거하거나 기타 봉사활동을 한다고 홍보용 보도자료가 들어오면 현장을 취재하게 되는데 쓰레기 1자루 줍느라고 장갑, 집게, 봉투, 행사용 현수막, 행사 마치고 식사, 그것을 홍보자료로 만드는 인력까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뒤늦게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2년 기준 0.78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2위 이탈리아, 3위 그리스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예산은 2006년 2조1000억원을 시작으로 2022년 51조7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예산편성이 얼마나 실효성이 떨어지는지는 지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제 ‘임산부의 날’을 맞아 답을 찾아보자. 지금와서 출산 때가 임박했다고 대문밖에 금줄치고 고추나 숯을 다는 풍경은 옛말이다. 산파가 찾아와 서까래 기둥에 광목을 걸고 입에 재갈을 물며 산통을 참아내던 시절도 있었다.

제왕절개라는 단어조차 없었으며 산후조리도 비위생적이었던 조선시대와 전쟁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5남매·7남매를 낳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던 과거였지만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2023년, 마당에 하얀 기저귀는 사라지고 종이 기저귀마저 코를 막고 갈아주는 시대가 됐지만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는 말이 공감대를 형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먼저 정책의 현실화다. 저출산에 대한 얘기보다는 임산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보자. 아이가 출산하면 산부인과를 거쳐 산후조리원으로 가야하고 경험이 없는 산모는 친정이나 시댁보다 의사나 간호조무사의 손길이 더 중요하게 된다.

물론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경제적 문제다. 지방으로 갈수록 턱없이 부족한 산모 관련 의료시설도 그렇거니와 수지타산이 안 맞는 상황에 누가 버틸 것인가. 서울이나 수도권은 고액의 비용 발생으로 서민들은 꿈도 못 꾸는 시설이다.

다음 과거같이 산모가 젖 먹이던 시절은 지났다. 분유나 이유식은 제조회사들의 탄탄한 수입원이었고 유모차나 유아 관련 용품들은 제조원가 대비 폭리를 취해도 귀한 자식들이 고객이다 보니 누구 하나 감히 토를 달 사람이 없었다.

정부가 온갖 명분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육아휴직까지 챙겨주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다 보니 출산이 두려운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임신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가중되는 과정이며, 출산이후 겪어야 할 산모만의 후유증은 또 다른 임신 기피 조건으로 손꼽히고 있다.

임신기간 동안 임산부가 편히 쉬며 태교라도 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있다면, 그래서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취하며 출산이후 몸이 아물 때 까지 충분히 산후 조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마련한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저출산 예산의 절반만 들여도 초호화판 시설을 만들 수 있다. 10달이라는 임신기간 동안 산모에게는 모든 게 조심스럽고 태아와 산모의 안전을 위해 말 한마디라도 신중을 기하는 기간이다.

필자가 어릴 적 들었던 모친 세대의 전언을 빌리자면 문어나 낙지 같은 뼈가 없는 수산물을 먹으면 태아가 뼈 없이 난다했고 닭고기는 태아의 피부가 닭살이 된다했다. 평상이나 탁자에는 끝자리에 앉지 말라 했다.

심리적으로 조바심을 갖게 되면 태아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더라도 그만큼 기성세대의 자손 아낌은 사소한 부분까지 온갖 조심을 더했다는 뜻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왜 미역국을 먹는지에 대해서도 산모의 과다출혈로 인해 피를 생산하거나 탁한 어혈을 풀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업, 학력, 나이 구분 없이 산모는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장차 무슨 인물이 될지 모를 위대한 인류를 낳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을 거둬 사용하는 분야 가운데 산모에 대한 투자는 보다 과감히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해서도 사회적 편견을 버려야 한다. 10대 임산부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 중 하나가 주변의 견해다. 일명 애가 애를 낳았다느니 불장난의 산물로 취급하는 경우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인데, 정작 아이 아빠는 오간데 없고 산모만이 모든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철저히 살펴줘야 한다. 심지어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거나 안다 해도 함구하고 출산해야 할 처지라면 그 어려움은 산모 스스로가 감내해야 한다.

돈이 없어 낙태도 못하고 간혹 화장실에서 여고생이 출산했다거나 태아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산모의 경우 그 고통은 당사자에게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어제 ‘임산부의 날’ 누군가는 축복 속에 행복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생물학적으로 젖을 물리는 본능에 충실 하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세금은 이런 아픔을 치유하는데 제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