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SOFA 개정의 출발 윤금이 피살 사건
[덕암칼럼] SOFA 개정의 출발 윤금이 피살 사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0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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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2년 10월 28일 동두천 기지촌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26세 여성 윤금이씨가 주한 미군 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안면부부터 질과 항문은 물론 몸 전체에 변태적인 폭력으로 과다출혈이 발생한 피해자는 미군이라는 거대한 신분에 밀려 한낱 피해자로 조용히 넘어갈 상황이었다. 당시 사건은 단순살인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범죄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었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인 SOFA에 대한 개정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로 부각됐다. 당시 가해자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93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형기를 채우지 않은 채 2006년 8월 14일 가석방 되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집단 항의에 나섰고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은 미군 승차 거부 운동을 상인들은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을 이어갔다.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은 것이다.

어느 한쪽에서는 성매매 여성의 단순한 사망으로 한미 간의 공조가 깨져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를 모욕했다. 당시 피해자의 시신 사진이 대학가 등 집회장에 공개되면서 반미 감정이 더욱 강해졌고 한미 주둔 미군에 대한 법안이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그러던 중에도 미군 범죄는 연속으로 발생했고, 2000년 이태원 접대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 운동이 전개되어 2001년부터 미군 범죄자를 기소 시점부터 한국 정부가 인도하는 쪽으로 SOFA 규정이 개정됐다.

군사적으로 약소국이 감내해야할 치욕적인 사건들이었다. 자국의 국민을 자국 정부가 보호해 주지 못하고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난리를 쳐서 이끌어낸 개정안이었다. 여기서 SOFA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각자의 생활에서 이런 단어를 알 필요가 없기에 알리는 것이며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 수 있겠지만 이글을 보고 다시 인터넷을 찾을 분들이 얼마나 될까 싶어 소개한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잔존한 미군부대가 서울 용산과 경기도 동두천 등 곳곳의 군사적 요충지에 산적해 있었다.

지금도 지대가 높은 산 정상에는 어김없이 레이더 기지가 설치되어 공해상이나 영공의 경계 태세에 24시간 가동 중이다. 미국은 확실한 군사대국이다. 대한민국이 서울을 제외한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을 시대.

미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만들고 잠수함과 고성능 전투기가 하늘을 누비던 나라였다. 약소국의 비참함은 기득권을 빼앗긴 한국 땅 곳곳에서 발생했다. 미군들의 욕정을 해소하기 위한 일명 양공주의 등장은 한국 여성들의 생존과 일제시대 위안부나 다름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대놓고 말리거나 권하지도 못하는 입장이었고 이미 전쟁터에서도 자체 위안부가 있었으니 역사는 침묵해도 기록은 남아 있다. 1966년 7월 9일 협정에 의해 정식문서로 작성된 SOFA는 1967년 2월 9일 발효됐다.

이후 1980년대 들어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가 끊이지 않자 1991년 1월4일 개정 서명후 2월 1일 발효되었다. 2000년 12월에 한미 간에 2차 개정 협상을 통해 형사재판권에서 미군 피의자 신병 인도 시기와 관련하여 살인, 강간 등의 12개 주요 범죄는 한국 검찰이 기소시 인도하도록 개정됐다.

다시 말해 그 전에는 무슨 죄를 지어도 미국이 가해자를 인도해 가면 피해자는 속수무책이었다는 뜻이다. 그동안은 미군에게 일체의 재판권을 부여하고 미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들어있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미 1950년 이후 1960년대에 주한미군에 의한 한국인 살상·폭행·강간 등의 범죄행위가 그칠 날이 없었고 그나마 반미의식이 높아지자 1962년부터 실무회담이 시작되었으며, 1966년 7월 9일 이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대표적 불평등 조항이었다. 특히 형사재판권의 규정을 보면 주한미군에 전속적 관할권이 있는 경우 한국 정부는 전혀 처벌권이 없으며 한국 정부에 일차적 권리가 있는 경우에도 포기권 조항의 행사로 재판권 행사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무 조항에서도 미군 당국은 언제든지 한국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미 1995년 5월 서울의 충무로 지하철역에서 주한미군들이 집단으로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고, 2000년 7월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으로 방류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2002년 미군이 훈련 중 탱크로 여중생 두 명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측은 작전 중에 일어난 사고라고 하면서 가해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했었다. 우리는 기억해야할 게 있다.

만약 1992년 윤금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2000년 이태원 접대부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발생했더라도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SOFA개정안은 부각 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들은 미군에게 피해를 보더라도 양들의 침묵으로 일관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 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애타는 구호 요청에 도와준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고마운 것이다. 유엔군과 연합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건 분명한 은혜다. 하지만 고맙다고 모든 범죄에 무능하게 당해야한다면 이는 그 고마움이 원망과 분노로 돌변할 뿐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한민국 정부가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이 들고 일어나 개정안을 끌어냈다면 정부가 부족한 것이고 그런 정부를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에게 분노와 고통만 가중되는 정권은 신중하게 골라내야 한다. 그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