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덕암칼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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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70년대 만화방은 20원에 1권, 30원에 2권을 읽을 수 있었다. 시리즈물로 나온 10권짜리 전집은 100원이었지만 이를 빌려 가면 요금은 두 배로 뛴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돌려볼 수도 있고 제 날짜에 반환하는 것도 만만찮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땟국물이 꼬지지한 손에 침을 잔뜩 발라넘기니 간혹 찢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설탕을 녹여 만든 달고나와 포도당을 국자에 끓인 간식은 당시 아이들에게 더 없는 주전부리였다.

문제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과서·참고서와는 달리 스토리가 담긴 만화책은 아이들 정서발달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일 만화책에만 매달려있으니 요즘 학생들로 치면 게임에 빠져 중독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세월이 지나 애니메이션 전문학교도 생겼고 만화시장은 예상보다 더 큰 문화적 산업으로 발달했으니 이제 만화책 본다고 공부 못한다는 말은 쑥 들어가게 생겼다. 필자 또한 소년시절 만화에 빠져 모친을 어지간히 졸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 가야지 하면서도 이미 발길은 만화방을 향하고 전날 보았던 마지막 장면이 다음 권에는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에 밤을 설치기도 했다. 특히 무협지와 공상과학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당시 만화에 등장했던 일들이 현재 모두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공상은 아니었다. 이제 만화는 단순한 재미로 보는 시대에서 첨단 문명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지난 3일은 ‘제23회 만화의 날’이었다. 웹툰산업의 발달로 관련 업계로 뛰어든 많은 지망생들에게 더 없는 생일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만화는 책 뿐만아니라 영상, 웹툰 등 관련 산업의 발달로 문화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번에는 ‘제21회 대한민국창작만화 공모전’도 진행됐다. 장관상은 물론 협회상과 다양한 시상이 진행됐다. 현재 모든 콘텐츠는 미디어로 연결되고 과거 데스크탑에서 스마트폰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애니메이션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손꼽힌다.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글로벌 플랫폼 시대로 진입했다. 다양한 플랫폼은 콘텐츠를 거래하는 교역의 현장이 되었다. 이제 콘텐츠 생산의 원천 기술자로서의 애니메이션은 막대한 시장성을 안고 있다.

필자는 며칠 전 한국 외국어대학교의 헤커톤 대회에서 특강을 진행하며 AI가 미래산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다. 가령 AI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데이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의 추억이나 기분, 인간관계 형성에 첨가되는 감정적 요소까지 대행할 수는 없는 점을 어필했다.

인공지능과 사용자 간의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성숙도와 함께 웹툰산업에서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전세계 웹툰시장 규모는 약 6조원에서 2030년이면 78조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제작에 성공한 웹툰 IP 하나가 막대한 수익을 올린 예는 허다하다. 가령 1997년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했던 포켓몬스터 IP 하나가 벌어들인 수익은 100조원이 넘는다. 애플은 북미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세로로 읽는 만화를 개발했고 아마존은 일본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아마존 플립툰을 공개했다.

틱톡(숏폼영상), 유튜브, 페이스북까지 독자들의 시간을 웹툰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이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시류도 변하고 있다. 가령 영상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소리와 화면을 제공하며 가만있어도 정보를 제공하는 반면 강한 중독성으로 보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하지만 웹툰은 영상보다 자극은 부족하고 직접 판단해야 하는 영역도 있지만 보는 사람의 적극성을 필요로 하기에 더 많은 구독층을 확보하게 됐다. 그리고 영화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웹툰에 쓰다 달다 의견도 제시하며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만화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창작활동이며 인간은 창작과 동시에 그 범위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만화가 세계 속에서 더욱 발전해 K-한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감해야 한다.

매년 11월 3일 한국만화가협회 및 관련단체가 2001년 대중예술로 만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한국 만화의 발전을 위해 제정한 만화의 날은 1993년의 불법일본만화퇴치운동, 1996년의 만화심의철폐운동 개최일이었던 11월 3일을 기념일로 삼았다.

필자가 지금처럼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글을 쓰듯 만화로 인한 창작활동은 상상 그 이상을 초월해 인간의 무한한 영적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 글은 뜻을 담고 있는 반면 만화는 그림 한 장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50년 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화방을 돌아다닌 경험이 지금의 감정표현에 대한 밑바탕이 되었지만 순간적인 기억만 남기고 지나치는 영화보다는 더더욱 임의로 책장을 넘기며 구독의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서적 도움이 되었다.

가상현실(VR)이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장면들이 대부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관련 산업의 종사자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도 참고해야 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1960년생 이후 세대라면 어릴 적 안방극장이나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던 만화영화의 주인공들 캐릭터 스티커나 소품 하나쯤은 소장품으로 소유하고 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뽀로로가 만화시장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가치는 실로 막대했다.

물론 음란성 만화와 기타 사행성을 조장하는 불량만화도 있지만 이는 일부에 국한될 뿐 실제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개발에 기여하는 비중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