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웃는 낯에 침 뱉을까
[덕암칼럼] 웃는 낯에 침 뱉을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14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정이 말라가는 삭막함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정착했다.

짐을 든 여성의 힘겨운 모습에 친절을 베풀었다가 없어진 물건이 있다고 도둑놈으로 몰리기도 하고 하굣길 어린 여학생이 인사라도 건네면 절대 외면해야지 하면서도 어깨라도 토닥거렸다간 영락없는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세상이 됐다.

은행 ATM기 위에 놓인 임자 없는 지갑은 고의로 던져진 미끼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반갑게 미소 짓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정신이 약간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면 그 사회, 너무 살벌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뱉을까’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숙이고 악수한다. 사람을 원숭이와 비교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저서 ‘털 없는 원숭이’에서는 악수를 “너를 공격할 무기가 없어 나 빈손이야”를 대신하는 육체적 신호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다음 명함을 건네는데 누구든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넨다. 처음 만날 때처럼 인간관계가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인연으로 만나 악연으로 종결되는 경우도 많으니, 나중에 헤어질 때는 인상만 쓰는 게 아니라 법적인 문제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송사도 모르는 사람과는 생길 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화가 화를 부르고 선이 선을 부른다. 대화가 부실해지면 결국 임의적인 판단으로 오해가 생기며 결국에는 사소한 것조차 편견의 잣대에 포함된다.

사람이 살면서 거짓말만 하면서 살 수는 없듯이 마음에도 없는 웃음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에 사로잡히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5개월 후면 총선이다. 하마평부터 활짝 웃는 친절한 모습의 정치인 현수막이 거리마다 나부낀다.

물론 선거 때가 되면 하나같이 환한 미소의 포스터와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웃는 모습을 기자들 카메라 앞에서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당선돼 정치 일선에 나가면 안하무인과 오만방자로 사납기는 마치 동네 싸움꾼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상대 당 의원과의 한판 전투를 벌인다.

그러다 사진 찍을 때만 김치, 치즈, 미나리, 고사리 하면서 치아를 잇몸까지 보여주고 초 단위로 표정을 바꾸는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정치인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지난 13일은 ‘세계 친절의 날‘이었다. 다시 회복해야 한다. 친절은 곧 배려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보여주기 위한 친절은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헛웃음은 직감으로도 알게 된다.

미소를 보는 상대방도 바보가 아니니 한두 번은 몰라도 접대 멘트에 감동할 리 있겠는가. 먹고 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전화나 대면 창구에 앉아 민원인 또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우리는 감정노동자라 칭한다.

“지금 상담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일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까지 적혀 있다. 이 안내문이 왜 생겼을까. 그만큼 민원인들이 불친절하고 함부로 말을 뱉어 근무자들이 정신적 고충을 겪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럴까. 물론 아니다. 일부지만 상대방의 인격까지 무시하며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로 인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당한 근무자들이 하소연하는 것이다. 또 직업 중에는 코미디언이 있는데 요즘은 개그맨이라고도 한다.

자신을 바보나 좀 모자란 사람으로 설정해 대사를 하노라면 관객들은 즐거워하며 손뼉까지 친다. 대리만족이다. 누군가의 바보스러운 모습에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위안 삼으며 반대급부적인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물론 개그맨은 관객들이 즐거워해 주는 모습을 보며 보람도 느끼고 인기도 올라가 경제적인 부도 뒤따른다. 근본적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배려심이 없으면 절대로 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독자들은 남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사람이 너무 똑똑하고 잘나면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된다. 혹여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남을 음해하거나 무시해야 내가 빛나 보이고 이긴 것 같은 승부감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남을 인정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은행 잔고가 100억이 있는 사람은 주변 이웃이 100만원 버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방해할 이유가 없지만, 자신은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데 친한 친구의 주식이 올랐다면 배가 아픈 것이니 흠집을 내고 싶고 혹여 교통사고라도 나면 말만 염려해 주는 것이지 마음은 고소해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마음적으로 심란하더라도 자신의 인격을 높이면 배려라는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봐서 괴롭고 미운 사람을 봐서 괴로우니 사랑도 미움도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했다.

남을 미워하면 미움받는 상대는 모르지만 분노라는 감정에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니 미워하는 자만 힘든 것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의 여유, 환한 미소, 친절의 나비효과로 모든 가족들, 이웃들, 국민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요즘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더이상 자리 잡지 않도록 친절함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말붙이는 것조차 길을 묻는 것조차 불편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돈으로 성형을 할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미소는 만들 수 없다. 직업적으로 억지웃음에 스트레스로 상한 얼굴을 애써 번 돈으로 성형하고 나면 하나 마나다. 나이 50살이 넘으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라 한다.

50살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 선하게 산 사람과 악하게 산 사람의 표정은 그 무엇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살아온 흔적이자 임의로 만들지 못한 삶의 훈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