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덕암칼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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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말을 못하는 짐승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물론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사육의 경우도 있지만 같은 도축이라도 부득이하게 죽이는 경우와 주지 않아도 될 고통을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또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 나면 가장 괴로운 것이 여자, 노인, 어린이다. 지난 19일은 그 약자 중 어린이에 대한 학대를 예방하고자 전 인류가 합의한 날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여기서 아동이란 한국의 실정법상 미성년자를 뜻한다. 먼저 먹고 자고 입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핵가족, 이혼, 기타 경제적 이유로 보호자가 없을 경우가 있고 보호자가 있음에도 가정이라는 그늘에서 오히려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경우도 있다.

먼저 보호자가 어느 한쪽이 결원되었거나 둘 다 없거나 조손가정, 또는 보호자가 질병에 걸려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자. 국가에서 나름 복지예산을 조성해 관할 지자체로 하여금 어려운 가정이 없도록 사회복지과를 두고 살핀다.

하지만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했던가. 아무리 살펴도 그마저 책정된 쿠폰이 주전부리로 끝나거나 심지어 보호자의 잡비로 남용되는 경우도 있다. 행정기관이나 후원단체가 살피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일일이 먹고 자는 것을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간혹 홈스테이를 통해 일반 가정에서도 가출 청소년과 방치 아동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정 분열의 후유증은 심각한 편이다. 굳이 통계를 전제로 그 심각성을 얘기하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고 있는 아동들의 숫자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다음으로는 가정이나 보호자가 있는 경우이다. 가정이란 울타리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는 아동 입장에서 볼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못 하고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기분에 따라 웃고 데리고 행복할 수 있는 반려견이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모르면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안정감과 성장환경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이를 게을리하거나 반대하게 되면 아이는 갈 곳이 없다. 가령 음식, 의류 부족, 폭력, 언어 폭행, 겁박, 성추행, 유기, 방치 등 모든 면에서 표시 나지 않게 괴롭힐 수 있는 환경이 가정이다.

어쩌다 의붓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은 뉴스거리가 됐다.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구타하던 구시대적 관습이 아직도 가부장적 분위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학대받는 아동 입장에서는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가정폭력은 학원폭력보다 더 위험한 것이며 이를 겪는 아동 입장에서는 언제든 가출을 꿈꾸는 반사회적 감정을 갖게 된다. 어릴 적 아픈 기억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적개심을 가진 아동이 성장해서 권력을 잡거나 우월적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표시 안 나게 누군가를 대상으로 보복하는 심리가 남게 된다. 조금 성장해서 학교에 가면 일진이 되어 특정 급우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군대나 직장에서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갖게 된다.

처음부터 어른은 없다. 아동이 커서 청소년이 되는 것이고 청소년이 커서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기에 어릴 때 학대받은 아이들이 사회의 악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때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착한 병에 걸렸더라도 특정한 계기로 근본적으로 깔린 피해의식이 작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육 과정에 괴롭힘도 안 해야 하겠지만 성장하면서 치유 과정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아동은 잘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당연하듯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정책을 세우려면 겉도는 행정이나 이미 해보고도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하는 비효율적 예산 낭비부터 줄여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시행하기 전에 기획하려면 해당 정책의수혜자인 아동 입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른 농경지에 한 바가지 물을 뿌린다고 고루 뿌려지지 않는다. 거액을 들여 대규모 스프링클러를 설치해도 구석까지 물이 가지 않아 말라 죽는 농작물이 있기 마련이다.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물조리개로 직접 한 포기 씩 적당량을 뿌려 준다면 모든 식물이 고루 자라 단 한 포기의 고사도 없이 푸른 농장을 기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아동 학대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무조건 아이들을 부추겨 멀쩡한 부모를 아동학대범으로 몰고 가는 부작용도 주의해야 한다. 학대 기준도 어느 정도 마련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아동들이 굶거나 매를 맞거나 성범죄의 대상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부모나 보호자는 의무적으로 조사에 응해야 하며 아동들로부터 허위나 협박에 의해 거짓 진술이 나오지 않도록 충분한 안내도 뒤따라야 한다. 때로는 보호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면 세부적인 조사보고서를 통해 국가가 이를 대신해야 하며 현재 비효율적인 복지예산으로도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는다.

여야는 여성 조사원이 폭력이나 성추행의 흔적이 있는지 조사해야 하며 남아는 남성 조사원이 전담해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된 아동은 부모나 보호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민생고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안 그래도 저출산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무슨 아이를 더 낳도록 바랄 것인가. 돈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며 양계장 계란 뽑듯 임의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있는 사람만 잘 키워도 대한민국의 장래는 그리 어둡지 않다. 문제는 아무리 말해도 우이독경이요, 마이동풍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