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먹는 것보다 배설이 중요하다
[덕암칼럼] 먹는 것보다 배설이 중요하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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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노약자를 간병하다 보면 음식을 거부하거나 적은 양으로 버티는 경우가 있다. 먹는 것은 조절할 수 있지만 배설은 임의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날짐승, 들짐승, 물고기, 곤충은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먹은 만큼 배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배설이 부끄럽고 죄스럽거나 더러운 행위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 싸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이다. 간혹 항문질환 관련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보면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다. 치료 과정도 그렇거니와 일상생활도 불편하다.

배변 상태에 따라 급할 경우 수습 안 되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때론 배변이 원활하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싸는 것이야 말로 삶의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조건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직업의 귀천이나 빈부의 격차도 없다. 누구든 가장 편안하고 조용하게 찾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일명 나 홀로 다방이라고 하여 배설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거나 뒤처리를 하는 과정이 먹는 것 못지않게 만족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그래서인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갈 때야 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막상 볼일을 보고 나올 때는 느긋하게 나올 수 있기에 나온 말이다. 그럼, 화장실의 변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불과 40년 전만 하더라도 남녀 공용에 수세식도 아닌 재래식 화장실이 대부분이었다.

한 번씩 분뇨차가 왔다 가면 깊어진 화장실 바닥에 아이들은 화장실 갈 엄두도 못 냈고 겨울이면 오물이 차고 넘쳐 얼어도 어떻게든 빈 공간을 찾아 볼일을 봐야 했다. 지금처럼 부드러운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억센 종이나 일일 달력이면 고급 휴지로 손꼽히던 시절도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악취는 코를 찔렀고 벽에는 클라이밍을 방불케 하는 절벽타기 선수들이 꿈실대며 용변 분위기를 더더욱 살벌하게 했다. 특히 야심한 밤에는 오물통 아래서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하며 일명 변소 귀신 전설이 유행했었다.

그러다 양변기가 대세를 이룬 건 불과 10년 전이고 지금은 온수 비데까지 설치됐다. 넘쳐나는 대·소변의 오물에 악취까지 여간 곤혹스러운 곳이 아니었던 화장실이 언제부턴가 청결, 위생, 상쾌라는 단어까지 적용될 만큼 선진국 못지않은 시설로 변했다.

지금은 아주 좋아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유명 관광지 화장실은 가관이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칸막이도 없이 공개된 공간에 1970년도 대한민국 화장실보다 더 못한 시설이었다.

뒤늦게 중국 당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금은 아주 좋아졌지만 해외여행을 가 보면 한국의 화장실 수준이 제법 상위권에 들어간다. 문제는 제 아무리 예산을 들여 잘 지어 놓아도 사용자가 이용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결론적으로 사용자의 이용 수칙보다 이용 수준이다. 실제로 환경미화원의 말을 들어보면 일부 사용자의 무식한 이용 실태로 여간 곤욕이 아니라고 한다. 화장실 곳곳의 물티슈나 생리대 넣지 마라.

용변 보고 물 내려라. 낙서하지 마라. 아무리 강조해도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며 소변기에 파리 그림을 그려 넣어도 여전히 소변기 주변은 악취가 풍긴다.

심지어 양변기에 바로 앉지 않고 신발 신은 채로 올라가서 볼일을 보거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용변 보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다가 신고를 당하기도 한다. 일부 변태적인 이용자의 행동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화장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나라인들 오물 처리가 없었을까. 외국인도 먹었으면 싸는 게 당연한데 목축업이 주였던 중세 유럽은 집 창문으로 대·소변을 버렸다고 한다.

오물을 피하기 위해 여자들은 굽 높은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고 드레스를 입은 채 볼일을 보는가 하면 남자들은 망토를 두르고 주저앉아 볼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지금 사용되는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처음 발명했으나 실패했고 1775년 알렉산더 커밍스가 특허를 냈다.

세월을 지나 2013년 11월 19일은 유엔이 공식 지정한 ‘제1회 세계 화장실의 날’로 올해가 10년째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12년 발표에 따르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인구가 8억 70만 명인데 비해 제대로 싸지 못하는 인구는 25억 명으로 집계됐다.

물론 지금도 10억 명 이상이 불안정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환경에서 배설을 한다고 하니 한국의 화장실 문화는 비교적 빨리 자리 잡은 셈이다. 고속도로 휴게실이나 기타 공공기관의 화장실을 이용해 보면 일반 가정집 못지않게 청결하고 위생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골 마을이나 외딴곳을 가 보면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접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언제부터 양변기를 사용했다고 볼일 보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먹는 것은 경제적 사정이나 시간적 여건에 의해 구분해서 먹는 다지만 배설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문제 되는 것이 인분 아파트다. 약 300~400명 인부들에게 설치된 화장실은 컨테이너 시설로 약 3~4개다.

여성의 경우 생리 날과 겹치면 마땅히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실정이다. 화장실 3~4개로 현장 근로자들의 용변을 해결하자니 공사기일에 쫓겨 화장실 다녀오는 것이 근로자와 감독관 모두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화장실에 덜 가려면 밥도 적게 먹고 물도 조금 마셔야 한다는 게 현장 근로자들의 하소연이다. 용변권조차 보장 못 받는 불안정한 환경은 자칫 아파트 시공의 안전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고 눈치 보며 가느니 참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먹고 자고 사는 것은 본능이다. 사람이 살면서 적어도 용변까지 눈치 보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