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동물과 사람의 차이
[덕암칼럼] 동물과 사람의 차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4 08: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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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언어와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도 옷을 입고, 불을 다루고, 종족 번식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1차 산업을 통해 자연 위에 군림하며 인공적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리고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출생과 사망의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태어나면 탄생일을 죽는 날까지 기억하고 축하하지만 반대로 사망하면 기일을 제삿날이라 하여 매년 날짜에 맞춰 제사를 지낸다.

제사 말고도 설날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그 전에 성묘를 가기도 한다. 이러한 절차는 동물이 아닌 사람이기에 더 우리 종족의 가치를 높이고 죽음에 대한 애도를 길거리 로드킬 시체 나뒹굴 듯 대충 그렇게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자손 중 장남이 제사를 도맡아 지냈고 장남의 장남이 제사를 맡으면 종갓집이라 하여 대대손손 집안의 가문과 역사를 지키는 일에 매우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바 있다.

일명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것이다. 족보와 가풍, 가훈, 어느 집안의 몇 대손인가를 짚어가며 후손들에게도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바뀌는 것인지 망국의 장송곡을 부르는 것인지 제사에 대한 여론조사가 경악을 금치 못할 결론으로 나타났다.

모처에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살아 있을 때 뿐이니 제사는 물론 조금만 더 있으면 장례식도 치를필요가 없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관이나 언론도 그렇지만 설령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비윤리적 편리함의 추구에 대한 산술적 수치를 조사해야 할까. 그래야 독자들의 인기를 끌어 조회 수와 열독률이 올라가고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일명 낚시성 기사도 그렇지만 이런 여론을 보고 굳이 제사 지낼 필요가 없음을 공감하는 시대를 만들고 그 다음 족보도 가문도 없이 입에 들어가는 고기를 배불리 먹다가 때가 되면 알아서 늙어 죽는 무가치적, 비윤리적 삶을 도모해야 할까.

이런 식의 여론조사로 관심 끌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훗날 부모가 돈이 없으면 집에서 쫓아내야 하냐는 여론조사도 통계를 내볼 것이고 퇴직후 돈도 못 벌면서 하루 세끼 식사를 요구하는 남편을 집에 두어야 할지 이혼서류 도장 받고 재산을 모두 빼앗고 내보내야 할지 여론조사를 해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경제력을 잃은 노인들을 특정기간 보호했다가 유기견 보호소처럼 가족이 찾지 않으면 안락사 시키는데 동의를 구하는 통계도 뽑아볼 수 있다. 관심만 끌고 계산적으로 이득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회.

그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관심을 끌어 예산만 많이 따올 수 있는 일이라면 무용지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여론조사를 통해 공동의 비용을 가로채는 얌체 주민들의 이기적인 계산이 먹히는 사회로 가게 된다.

이쯤에서 그만해야 한다. 어떤 분야든 할 게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부모님 제사를 지낼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나 대동소이다. 과거 전쟁터에서 아무것도 없던 시절, 부모의 기일이 되면 사과 한 개라도 돌 위에 얹어놓고 고향 방향을 향해 두 번의 절을 올리며 예를 표했던 민족이었다.

필자의 자랑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해마다 개천절이면 태백산의 천제단에 올라 단군 할아버지에게 기도문을 올렸다. 마땅한 제수용품도 없이 술과 과일, 육포만 챙겨 우리 민족 살펴 달라고 기도문을 정성껏 낭독하며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무탈을 기원했다.

물론 기원한다고 될 것은 아니겠지만 기도는 간절한 바람에서 우러나오는 무언의 주문이다. 제사 또한 마찬가지다. 홍동백서·좌포우혜를 놓고 학생부군신위에 선생의 함자를 적어 현실적으로 있지도 않은 영혼을 초대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고인이 생전 살아온 덕담을 후손들이 함께 기리며 현존하는 자손들의 번영에 조상들의 영혼이 살펴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혹자는 제사를 지내는 의도가 자손들 잘 살게 해달라는 계산적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제사를 지내는 현세대와 이를 지켜보는 자손들이 보고 배울 게 있는데 제사 지내는 일을 할까말까 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동방예의지국을 먹칠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제사는 동북지역을 비롯해 유럽은 물론 인디언들과 남아메리카지역도 중요한 일로 규정해 온갖 요란한 예를 올린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사람은 살아 있을 때뿐이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으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나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의 추모는 아무런 뜻도 없는 허례허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제3국에서 대한민국을 뭐라고 볼까. 제 부모의 제사도 외면하면서 예수 탄생과 부처 탄생은 중요할까. 인기 가수의 기일과 강아지의 기일은 중요하고 자신을 낳고 키우고 교육해 출가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했던 부모의 제사는 그보다 못한 것일까.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의 관련 부서는 복지예산의 1%라도 효도하는 자식에게 그 행위에 대한 기준을 정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사후에도 제사의 예를 올리면 민족의 미풍양속을 이행하는 수당을 지급하여 후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조금만 귀찮은 설명이면 무조건 꼰대로 몰아버리면 몰던 사람은 꼰대가 되지 않을 것인가. 챗GTP도 예의를 차리라고 할 것이며, AI에게 자식이 부모의 돈만 빼앗고 안면박대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문명이 운명을 타넘어서는 안 된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해도 안 되고 적어도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만큼은 알고 가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