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텔레비전의 날
[덕암칼럼] 텔레비전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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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텔레비전’이란 말을 해석하면 방송국에서 송출된 영상과 음성을 재생하는 전자기기를 뜻한다.

수상기는 송출된 영상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장치와 소리를 보내는 음향 장치, 소리신호를 받아들이는 안테나와 케이블 연결 단자, 그리고 선택된 채널을 화면으로 보내는 전자회로로 구성되어 있다.

텔레비전의 역사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처음 개발되었을때는 기계식이었으나 10년 뒤 전자식으로 발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컬러TV, 위성TV가 등장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TV와 스마트TV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 텔레비전은 1956년 처음 들어왔다. 1961년 12월 31일 처음으로 KBS 한국방송이 생겼고, 1964년에는 동양방송인 TBC와 MBC가 추가로 개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안방극장 시대가 열렸다.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TV는 부잣집 가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가전제품이었기에 1970년대 들어 동네마나 한두 가구는 소유하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컬러로 선명하게 상영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산간지방이나 기타 외딴곳에서는 TV가 있어도 배가 불룩한 브라운관의 초점이 수직 상하로 오르내리며 중심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껏해야 안테나를 빙빙 돌려가며 전파를 맞추는 게 전부이다 보니 지금의 1960년~1970년 출생자들은 대부분 유사한 추억으로 갖고 있다.

TV기기 또한 4개의 다리가 버젓이 서 있고 목재로 제작된 화면 보호용 슬라이드 문을 양쪽으로 여닫으며 시청할 때만 보는 보물단지 대우를 받았다. CF나 기타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온 동네 아이들이 TV 있는 집으로 모여들었다.

하루 종일 골목길을 뛰어다닌 탓에 땟국물이 꼬지지 할 수 밖에 없고 눈치를 봐가며 인기 프로그램을 눈치껏 보다 보면 꼭 주인집 아이들이 거만한 생색을 내며 평소 눈엣가시였던 아이들을 퇴출하는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TV의 여론조성에 대한 영향력과 인기 드라마의 시청률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막강한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선거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국민들이 믿고 보는 공영방송은 불과 4개 채널밖에 되지 않았다.

지방으로 가면 겨우 지역 방송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유튜브나 SNS가 대세를 이룬 시대 이전에 방송의 위력은 절대적이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선보인 것이 컬러TV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컬러TV 시대는 과거 흑백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천연색깔을 모든 면에서 뛰어 넘으며 전혀 다른 시청 수준을 요구했다.

1980년대 방송은 케이블로 가입자에게 전송하는 방송 방식이었다. 지상파, IPTV, 위성방송과 함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유선방송도 있었다. 신고제이기에 우후죽순 늘어나 1980년대 가장 활성화되었다가 1991년 12월 31일 종합유선방송법을 제정했다.

이후 급속히 발달한 TV는 2008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미디어법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2009년 7월 일명 날치기법으로 통과됐고, 10월 헌법재판소는 표결 방법은 위법이지만 법안 효력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했다.

2010년 12월 종편사업자로 TV조선, JTBC, 채널A, MBN 4개 종편사가 2011년 12월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경쟁과열이 시작됐다. 평소 안정적이던 기존의 방송사에서 급속히 늘어난 채널 속에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은 미래의 시청률을 고려할 때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처음 종편의 시청률은 미미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인기 프로그램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게 됐다. 채널의 다양성은 공익보다 수익 위주로 급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무한경쟁 시대가 되면서 인기 위주의 상업성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볼만한 내용들이 속속 편성되면서 TV시장은 다시 호황기를 누리는 듯했다. 물론 2000년대 들어 확산한 SNS와 2010년부터 급성장한 유튜브 시장으로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안방극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문제는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이었다. 방송국별로 심의 규정도 지켜가며 시청률도 올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인데 반사회적 부작용까지 감수했다. 11월 21일은 ‘세계 텔레비전의 날‘이다.

1996년 유엔 총회에서 텔레비전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목적으로 제정된 날이다. 유엔 TV를 통해 국제적인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거짓 없는 정보와 정확한 사실을 통해 텔레비전이 유해 매체가 아닌 지식 소통의 장으로 존재하기를 추구하는 뜻에서 제정됐다.

하지만 현실은 다소 상이한 점이 있다. 가령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법률적 상한선을 교묘히 넘나들며 인기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 문제다. 멀쩡히 잘 살던 주부들도 불만과 이혼을 부추기는 동조 내지 편승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충분히 감내했던 일들이 자신만이 겪고 있는 불행으로 착각되어 불만이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이슈와 인물, 소재를 미리 정해두고 프레임 작업으로 사회적 생매장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야 변호사도 일거리가 생기고 가정법원의 존립 가치도 더 생기겠지만 자유를 표현하다 방종으로 가는 경우가 그러하고 다양성을 보여주려다 정제되지 못한 내용들이 검증없이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판단 기준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공정해야 할 선거 방송에서 군소후보들은 아예 얼굴 한번 내비치지도 못 하고 편파방송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이 그러하다. 유권자들은 모든 후보들의 면면을 알 권리가 있음에도 인기위주의 거대 양당 후보나 어쩌다 제3당 후보 1명 끼워 넣기 정도가 전부다.

방송은 시청자들과 일방통행이다. 신뢰를 잃으면 다시 복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지켜봐 줄 때 중도와 공정과 정보의 가치를 유지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