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하나를 보면 짐작되는 열
[덕암칼럼] 하나를 보면 짐작되는 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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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부산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유치전이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참패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을 비롯해 재계, 정계의 유명 인사들, 온 국민들의 열광적인 관심과 홍보가 동원됐음에도 결과는 119대 29로 예상 밖의 표 차에 망연자실하게 됐다.

이래서 투표함은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결과를 떠나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고 한때 경쟁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승리에 박수를 칠 수 있는 페어플레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경쟁자로서의 매너다.

문제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벌써부터 누구 때문에 졌는지를 짚어보는 원망과 탓을 파헤치는 내분의 조짐이 들썩거리고 있다.

같은 사물과 무형의 현상이라도 견해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대참패 결과가 나오자마자 엑스포 실패에 대해 조국 前 법무부 장관은 1표 얻는 데 무려 198억원이나 썼다며 언론에 대서특필이 왜 없는지를 어필했다.

이를 무능의 극치라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의문을 제시했다. 조 전 장관 주장에 따르면 정부가 2030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올해 편성한 예산은 3,228억 원이고 2022년 2,516억 원을 포함하면 5,754억 원이라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제시했다.

지난 2022년 7월부터 시작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은 약 509일 동안 막대한 예산과 인원이 동원됐고 대통령까지 해외 순방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만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의 뜻을 표했다. 측근들과 직접적인 관계자들은 물론 민·관 합동 팀의 자체 분석이 시급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겉도는 외교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고 싶어서 지는 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패했으면 책임도 져야 한다. 전략은 처음부터 무모했다. 당초 오일머니로 강력한 후보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겨 보자는 패기는 좋았으나 최종 결승전 마련을 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3분의 2 저지선 구축과 함께 이탈리아를 눌러 보는 양면전을 펼쳤다.

물론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쳤다. 자칫하면 경쟁국가였던 이탈리아에도 밀려 불과 5표차로 3위를 기록할 뻔도 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투표함을 열어 봐야 한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스포츠 외교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제173차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투표 참여 165개국 중 3분의 2인 110표를 넘긴 119표를 얻어 결선 투표 없이 많은 참여국들의 공감대를 얻어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선수들의 격차가 이 정도라면 그동안 떠들썩하게 난리를 치며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고로 예산은 국민들의 혈세다. 적어도 지출 내역이라도 밝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한 것과 관련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 달라. 민·관은 합동으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되, 부산을 남부의 축으로 삼는 균형 개발 등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현지에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또한 부산 시민들의 꿈이 무산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몇몇 인사들의 사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182개국을 다니며 노력한 과정도 전면 재조명되어야 한다. 부산시는 2035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다시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할 요량이면 5,745억이 아니라 5조 7천억을 쓴다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예상이란 어느 정도 편차가 있어야 하는데 마치 날벼락 맞듯 대 참패였다는 점에서 볼 때 외교를 펼친 관계자들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는 것인가.

함께 동참했던 경제단체들은 성명에서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며 “이번 유치전은 값진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자화자찬의 평가를 남겼다. 필자가 보기에는 억지춘향이고 비겁한 합리화다.

119 대 29라는 결과는 단순한 참패가 아니라 결과에 대해 무감각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스포츠 외교 실력이 없었거나 상대방 전략을 몰랐거나 165개국 중 투표권을 가진 자국을 빼고 164개국의 속마음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결론났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승리와 비교해 볼 때 대한민국의 스포츠 외교 수준은 한방에 드러났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와 간절한 염원뿐이었다.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유치를 시작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불과 100일 전, 지난 8월 12일까지 열렸던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전북 군산 새만금에서 150여 개국에서 참가한 가운데 국제적 망신을 떨었다. 어설픈 준비에 대한 책임론은 지금도 전무하다.

소중한 세금 낭비는 물론이고 국가적 행사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착복하고도 시간이 약이었다. 뒤늦게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난리의 뒷수습에 부랴부랴 서둘러 동참했지만 당초 대회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대회 장소부터 멀쩡한 곳을 두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경위도 잠잠하다. 관계 부처인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도 시간이 약이었다. 특별교부세나 예비비를 빼더라도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은 현장의 진흙탕처럼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약 1달 전인 11월 1일 독일 뒤셀도르프 세계생활스포츠 연맹 대회장을 찾았던 필자와 동행한 임원들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우승은 짐작되는 분위기였다. 제28차 총회에서 개최된 세계 생활스포츠 연맹 대회장에서 180개국 대표들 약 1,000여명이 참석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다음 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대외적인 홍보에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영상이 상영됐다. 하지만 대회장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부산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영상보다는 개인적인 홍보에 열을 올리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작 국제적으로 중요한 행사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부산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6조9천796억 원이고 그 중 24%에 달하는 체육 예산만 1조6천701억원이다.

정작 필요한 생활체육이나 국제적 행사의 지원은 고사하고 유사한 명칭을 사용했다고 과태료 부과라는 엄포를 놓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을 겁박하는 정부의 처세를 보며 2035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다시 나서는 방안이 공염불이라는 우려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