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같은 사고 다른 정권
[덕암칼럼] 같은 사고 다른 정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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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70년 12월 14일 오후 5시 제주 서귀포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던 남영호가 15일 새벽 1시 27분경 여수 앞바다 지점에서 차가운 겨울바다로 침몰했다. 승선 인원 338명 중 12명이 구조됐고 326명이 사망했다.

53년 전의 일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한국판 타이타닉과 유사한 해양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정권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민심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상황 속에 이렇다 할 보상이나 뚜렷한 사고 경위 등이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참사 원인의 상당 부분이 해경의 안일한 대처와 감귤 운반을 위해 적재 허용량의 4배인 540톤을 무리하게 초과 선적한 선주들의 욕심에 있었다. 이미 제주 서귀포항와 부산항의 정기노선은 늘 크고 작은 사고가 불행의 징조를 보인 바 있었다.

사고 당시 정부는 희생자 1명당 40만원의 보상비 지급방침을 세웠고 유족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했지만 사표를 냈던 지금의 행정안전부과 건교부장관 모두 반려되는 등 사건을 덮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언론이 조용해지자 국민들의 관심도 이내 식어버렸고 그렇게 남영호 사건은 지금까지 정부의 이렇다 할 공식 사과나 재조사도 없이 세월이 약이었다. 원인 제공자로 재판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가벼운 처벌과 무죄 선고로 풀려나는 등 사태는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이때 희생자의 절반인 155명이 학생들이었다. 그 사건 후 이듬해 1971년 3월 제주 서귀포항에 위령탑이 세워졌다가 1982년 도로건설과 미관상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변두리 산으로 옮겨졌고 그나마 2003년에는 위령제까지 중단됐다.

2006년부터 그 자리는 골프공들이 난무하는 불모지로 전락했고 2013년 다시 유족회가 결성되어 2014년 제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에 신축, 이전했다. 정권이 외면한 해양 참사의 현주소였다.

시신 300여구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선체 인양과 대형 추모관 건립은 꿈도 꾸지 못한 참사였다. 유족회 재구성 이듬해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물론 사고 원인규명부터 보상, 사후처리, 정부의 대대적인 선체 인양부터 모든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영호 보상금으로 지급된 1970년도 40만원이면 쌀 80kg짜리 35가마니 값이고 이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시세로 볼 때 당시 쌀값이 16만이었으니 35가마니면 560만원인 셈이다.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희생자 대부분 학생, 안전의식 부재로 발생된 해양참사, 남영호과 세월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사고였다. 필자는 지금 세월호와 빗대어 왜 다른 보상을 받았는지를 논하자는 게 아니라 군사정권에서 짹소리 못하고 덮인 남영호 사고의 원인규명, 보상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일이 밝혀지면 지금이라도 정부가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은 필자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이니 알 수 없었던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에는 진도 팽목항을 수십번 다니며 사고 현장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이제 세월호 참사는 10주기를 앞두고 다양한 행사와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지금도 안산시에는 세월호 담당부서가 운영되고 있고 추모관 건립도 예정대로 착수되고 있다.

이제 경기도 안산의 교통 요충지이자 모든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화랑유원지 내 한복판에 세월호 추모관이 들어선다면 많은 추모객들이 안산을 추모의 도시, 해양참사를 연상시키는 죽음의 대명사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치 고양 벽제화장장(화장터) 하면 시신 소각에 대한 선입견을 갖듯 안산은 흰 국화로 추모의 예를 올리는 성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의 많은 추모객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대형 분향소를 차릴 것이고 너도 나도 머리 숙이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 것이다.

필자 또한 어린 학생들의 희생에 대한 슬픔이 어느 추모객보다 깊고 안타깝지만 적어도 한 도시에 영원히 옮기지 못할 추모관을 건립하려면 해당 도시의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해야 맞는 것이다.

도시의 주인은 시장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들인데 추모 건립 위윈회의 회의 내용을 마치 모두 찬성한 것으로 꾸며 정부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국무총리실 산하 담당자들 조차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정권 탄생에 기여함이 크다는 이유로 정권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점은 남영호와 비교해 볼 때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세월호 추모관 건립을 반대하는게 아니라 주인에게 물어보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지금의 아이들이 왜 도심 한복판에 경제적 요충지에 추모관을 설치했냐고 따진다면 그때 가서 모든 시민들이 동의했다고 해야 희생자들을 두 번 욕먹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단체를 구성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산시청사 앞에서 160차례 집회를 벌였지만 국민의힘 시의원 1명만 삭발로 잘못된 정책의 오류임을 대외적으로 밝혔다. 사고 발생 9년이 지나 10년이 다 되도록 4명의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물론 시민단체도 마찬가지고 세월호 라는 명칭하에 감히 어느 누구 하나 입을 다문 채 함구하고 있다. 필자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훗날 그 당시 나름 바로 잡자고 애썼음을 말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가질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관을 건립하는 것은 필자도 찬성하고 안산을 안전의 성지로 만드는 것도 찬성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물쩍거리며 대충 넘어간 건립과정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건립추진위원회에 직접 참여했었고 그 자리에는 안산과 무관한 인사들도 참여해 찬성에 대한 여지를 밝힌바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필자도 또 다른 시민단체 대표로서 안산시의회 강광주 의원과 함께 의논을 거친 것이지 찬성을 한 게 아니었다.

개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닌 것을 맞다 라고 허위로 중앙에 보고하고 그것을 토대로 지역에서 찬성했다고 밀어붙인 세월호 추모관 건립, 남영호 사고가 발생한지 53년. 달라도 너무 다른 유족들의 보상과 사후처리는 지금부터라도 전면 재조사에 착수해 이미 사망한 책임자가 있다면 부관참시라도 해야 옳은 것이다.

그래야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는 것이지 시간이 약이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