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사각 귀신이 판치는 나라
[덕암칼럼] 사각 귀신이 판치는 나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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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옛날 아주 먼 옛날 태백산 깊은 골짜기 동굴 속에 4명의 사각 귀신이 도를 닦고 있었다. 악마가 바빠서 대신 보냈다는 이들은 언젠가는 인간 세상에 나가 선과 악을 뒤섞어 거짓과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천년을 기다렸다.

가장 큰 귀신을 TV라 칭했고, 둘째 이름은 A4였으며, 셋째가 스마트폰이고, 막내가 48장으로 구성된 화투였다. 막내는 간혹 카드라는 친구까지 데려와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일조했다.

제일 큰 귀신은 당초 어둠의 나라에 빛을 주는 듯했다. 온통 산과 강과 들판이었던 세상에 흑백으로 태어났다가 컬러로 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들의 혼을 빼기 시작했다. 몇 개뿐이던 선택지가 백 개도 넘는 채널로 성장하면서 물불을 안 가리고 경쟁이 시작됐다.

일명 종편과 케이블TV 채널이라는 세상이 열리면서 인간들의 인기와 관심을 끌기 위한 흥미 위주의 편성은 도덕 불감증은 물론 남이야 죽든 말든 지나친 경쟁의 과열 현상으로 수십 년 노력한 사람보다 일시적인 인기만 얻으면 출세할 수 있다며 정직과 성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다.

대대로 함께 살던 주거문화는 핵가족화로 변모했고 아이·어른이 구분되지 않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꼰대들의 합장은 외면당하는 사회적 배경으로 변모해 버렸다.

누구의 탓이라 할 것도 없이 안방극장의 키를 잡고 있는 TV 사각 귀신의 입지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데 기여했고, 잘 참고 살던 주부들까지 밥주걱을 던지며 분노의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일조했다.

가장이 가장 대접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서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오죽하면 현역 국회의원이 온통 나 혼자 산다, 불륜·사생아·가정파괴 드라마가 너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 프로그램 편성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다음 둘째는 A4 귀신이다. PC라는 기계가 개발되면서 프린트라는 파트너가 생겼고 이들은 국적은 물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두 같은 크기의 사각형 종이로 소통하고 모든 중요한 내용까지 적시하는 물건이 됐다.

A4 귀신은 말로 하던 세상에 글로 남기는 바탕이 되었고 모든 문서에 공통으로 적용되면서 근거를 남기고 결국에는 인간이 A4에 종속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말로 할 때는 인간적인 융통성이 있었다.

하지만 A4 귀신은 서류라는 명칭으로 모든 인간사에 질서를 빙자한 구속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인간은 법대로 하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다음 셋째는 큰놈과 둘째 놈이 서럽게 울고 갈 만큼 유형·무형의 능력을 갖춘 전천후 슈퍼 귀신이었다.

당초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목적으로 태어났으나 이미 마약보다 더 무서운 중독성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임의로 조정하며 모든 사회생활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 이제는 인체의 장기보다 더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명 스마트폰이라는 사각형 물체가 눈떠서 잠들기 전까지, 심지어 수면 유도에 필요한 앱까지 내장되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으면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절대적 존재가 됐다.

은행 업무는 물론 각종 증명서 발급 등 안 되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알람 확인에 길든 인간은 스스로 눈뜨고 계획된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하다못해 걷는 것도 만보기라는 앱을 깔고 걸을 만큼 종속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지하철 안에서 졸던 사람들도 졸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딜 가나 스마트폰 귀신이 없는 곳이 없다. 한번쯤은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 귀신에게서 벗어나 멈춰버렸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야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겼는지, 얼마나 뼛속까지 점령당했는지 스마트폰을 놔봐야 알 수 있다. 사각 키보드 대신 손 편지도 써 보고 노트북이나 PC의 사각 모니터의 스위치를 하루라도 잠시 OFF 시키고 멈춰봐야 종속으로 잊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다.

끝으로 막내 화투 귀신은 가장 작지만 가장 무서운 독을 지닌 귀신이다. 초등학생의 호주머니 돈부터 가정주부는 물론 어르신들 쌈짓돈까지 모두 긁어낸다. 명절이면 가족끼리 둘러앉아도 도덕을 상실하게 한다.

시아버지 똥 쌌어요, 어머님도 죽으세요는 보통이다. 뒷장이 붙지 않고 불리한 패를 내놓으면 아래위도 없이 인상을 쓰며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친다.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판이 커져 도박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초상집에서도 화투를 빼면 썰렁하고 타짜라는 전문가들이 설치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한번 빠지면 손가락을 잘라도 손목으로 한다는 도박, 오죽하면 도박 단체가 결성되어 몇 년간을 안치다가도 다시 화투만 보면 슬슬 미치는 도박중독증이 사회적 문제가 될까.

인생은 도박이라고 한다. 한방에 거액을 쓸어 담는 장면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게 된다. 일본에서 조선이 망하고 서로 싸우라고 만들었다는 화투는 대부분의 그림이 일본의 풍경이나 우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반면 서양에서 들어온 카드도 만만찮은 사각 귀신이다. 나라가 망하려면 사이비 종교, 사이비 언론이 판을 친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려면 도덕이 무너지고 성에 대한 윤리관이 사라지며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려면 자손이 번식하지 아니하고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현재 사각 귀신이 판치는 꼬락서니를 보면 망국의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