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진실과 현실 무엇이 중요할까
[덕암칼럼] 진실과 현실 무엇이 중요할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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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이 세상에는 진실과 현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물론 인위적인 경우도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떤 돈이든 동업하거나 특정한 보상을 받을 경우 ‘기여도’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기여도는 계약상 정하더라도 막상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나눌 금액만큼 기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분쟁이다. 당초 정했던 경우와는 달리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얹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생긴 것이 ‘법’이다. 이 법이란 것이 참 묘해서 진실과는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엉뚱한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가령 어릴 적 젖먹이를 버리고 가출했던 어머니가 수십 년 지난 뒤 아들이 사망해 보상금이 나오면 수령할 수 있는 경우가 그러하고 가족관계증명서만 제출하면 가족이 되는 종이 가족이 그러하다.

실제로 현 사회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버젓이 가족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경제권은 물론 관혼상제나 명절에 소식조차 없는 껍데기 가족이 수두룩하다. 막상 이혼하자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의 이혼 서류에 도장만 안 찍었지 실제 남보다 더 못한 인간관계를 가진 이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보험계약서에 피보험자만 명시되었을 뿐 막상 사망하거나 장애 진단을 받으면 계약자가 수령하는 경우도 있고 최근 발생하는 ‘구하라법’ 상대처럼 돈만 수령했지 실제로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지난 17일 54년 만에 나타나 아들 집·보상금을 싹쓸이하는 과정에 재혼한 가정에서 낳은 딸과 사위도 동원됐다는 내용이 모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구하라법은 지난 2019년 11월 가수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나자 20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친모가 뒤늦게 나타나 상속 재산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2022년 11월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여전히 제21대 국회에서도 폐기될 위기다. 이러는 동안 전라북도 소방관 강한얼씨가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유족급여를 받아 갔다.

2021년 1월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김종안씨(당시 56세)가 어선을 타다 폭풍우를 만나 실종되자 친모 A씨가 54년 만에 나타나 상속권리를 주장하는 등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돈만 타려 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친모 A씨는 1967년 당시 두 살이었던 김종안씨 등 어린 세 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가 거액의 보험금 소식에 54년 만에 나타났다. 이 때 A씨는 새로 꾸린 가정에서 낳은 자녀와 사위까지 합세해 선박회사의 위로금 5,000만원을 챙기고 김종안씨 명의의 집과 통장을 자신의 명의로 바꿔놓는 일에 성공했다.

실종 당시 김종안씨는 6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여성이 있었지만 사실혼 관계는 상속받을 권한이 없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도 없기 때문에 2순위인 A씨가 법적 상속인이 된 것이다. 누나 김종선씨 등은 후순위로 A씨가 유산을 분할해주지 않는 한 법적으로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이 밖에 대구에 사는 B모씨는 아들 명의로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를 아들 대신 납부했음에도 아들이 사망하자 이혼한 며느리의 딸, 손녀가 상속권을 가짐에 따라 보험금은 손도 못 대보고 고스란히 손녀 명의로 돌아가는 등 기여도는 일절 없음에도 돈만 타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민법 제1004조의 상속 순위 때문이다. 1순위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등) 배우자이고, 2순위는 피상속인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배우자이며, 3순위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순위는 피상속인의 4촌 이내 방계혈족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 14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친모에게 3억6,000만원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친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신청한 시점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손해배상을 신청한 친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B군의 생모였다. 남편과 이혼한 이후 B군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고 지냈고 아들 B군이 세월호 참사 당시 숨졌지만, 남편은 이혼한 아내에게 B군의 사망 사실조차 전하지 않았는데 지난 7년간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우연히 B군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알게 된 시점이 2021년 1월 세월호 사건 등을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연락 때문이었고 이때부터 보상청구 시점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친모는 국가를 상대로 아들이 상속한 위자료채권 3억7,000만원과 친모 고유의 위자료채권 3,000만원을 청구했다. 아들이 상속한 위자료채권 3억7,000만원은 친부와 절반씩 나눈 몫인데 1심은 민법상 소멸시효 만료를 이유로 친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상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3년인데 세월호 참사로부터 7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은 B군의 사망을 알게 된 시점이 2021년이기 때문에 소멸시효는 알게 된 2021년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는 A씨에게 4억 원을 배상하게 됐다.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사망한 아들이 상속한 위자료채권 3억7,000만원은 인정하지만 친모 고유의 위자료채권 3,000만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이 상속한 위자료채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181조를 적용했다. 해당 법 조항에 따르면 사망자의 위자료채권 등은 상속재산에 속한 권리로 상속인이 확정된 때로부터 6개월간 소멸시효가 정지된다.

친모가 아들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 2021년 1월 25일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시급하다.

이런 경우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애지중지 자식을 키우거나 부모를 모셔도 엉뚱한 사람들이 돈만 챙기는 일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