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지울 수 없는 과거
[덕암칼럼] 지울 수 없는 과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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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권불십년이라 했고, 한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이 십 년은 커녕 40년이 지나도 청산하지 못하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다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그 원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서울의 봄 영화 한 편이라면 국민들은 지난 40년 동안 왜 침묵했을까. 몰랐다면 무식한 국민이고 알고도 침묵했다면 공범이 아닐까.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건재하기에는 부역자들의 방패가 없었을까. 지금 와서 광주와 삼청교육대 등 군홧발에 짓밟힌 어두운 그림자들이 새삼 재조명되는 것은 단지 영화 한 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닌 줄 알지만, 각자의 삶에 무관심하다 보니 지금껏 운이 좋아 버텨온 것이다. 개 꼬리 3년 묻어둔다고 여우꼬리 되진 않는다. 이미 지난 과거는 어떤 식이든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진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폭군 연산군이 친모의 폐비 과정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가 왕이 되고 나서 피바람을 일으킨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지금까지 권력 이동이 있을 때마다 상대 당파에 대한 숙청이 당연한 듯 정치 보복으로 뒤따랐다. 그렇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떻게 40년 동안 건재했을까. 바로 정치적 시기가 국민적 공감대와 중복되었을 때, 곧 다가오는 총선과 현재 대치 중인 여야 입장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악행과 맞추어봤을 때 묵혀두었던 과거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의 봄은 이미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로 상당 부분 국민들에게 알려진 내용이다. 물론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지만 이번처럼 적나라하고 다소 증감된 내용으로 흥미와 역사적 가치까지 곁들였다면 국민 수준과 영화제작 수준이 그만큼 향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서울의 봄'을 통해 총선을 앞두고 여야 둘 중 하나는 득이 된 셈이다. 지난 역사를 찾아보면 부관참시라는 말이 있다. 이미 사망해 관에 묻혔는데 뒤늦게 더 악행이 드러나 묘를 파고 관속의 썩은 해골까지 흩어버린다는 의미인데 마치 사망하고도 묫자리도 못 찾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유사한 일이다.

장지를 못 찾아 2년째 서울 연희동 자택에 보관중인 유해가 경기도 파주로 가려 하자 지역사회의 완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파주시장은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학살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봄을 철저히 짓밟고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유해를 파주에 안장하려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괜스레 받아들였다가는 다음 지방선거에서 어찌될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고향이었던 경남 합천군에서 안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남 합천군 모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를 합천으로 안장해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의 유해가 묻힐 곳을 찾지 못해 자택에 있다는 것은 가족사의 비극을 넘어 한때나마 자랑스럽게 여겼던 우리 합천의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높다. 지역 시민단체는 유치발언을 한 군의원을 대상으로 강력한 비난의 뜻을 비쳤다. 합천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의 호를 딴 일해공원도 있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명칭 변경에 대한 주장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파주와 고향인 합천까지 발도 디디지 말라는 여론이 일자 이대로 서울 연희동 자택에 계속 안치될 가능성도 있다.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전직 대통령, 묻힐 곳은 그렇다 치더라도 재임 당시 대통령으로서 수여한 무공훈장과 각종 표창까지 모두 반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수치라는 의견과 함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표창까지 덤으로 반납하는 분위기다. 여론은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한데 묶어 군사정권으로 취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상이라며 자랑스럽게 거실 정면에 액자로 걸어놓았다가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니 슬그머니 서랍 속으로 접어둔다는 것인가.

같은 상이라도 대통령 재임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고 친·인척은 물론 동네잔치까지 벌이며 자랑했던 상이 아니던가. 군 인권센터는 지난해 12월 20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무궁화대훈장 추탈 촉구 10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미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훈한 9개 훈장,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훈한 11개 훈장의 서훈을 취소한 바 있지만 대통령에게 수여되는 무궁화대훈장은 그냥 두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무궁화대훈장을 추탈할 경우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의 대통령 재임을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다른 훈장을 모두 추탈했으나 무궁화대훈장은 남겨주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렇듯 살아 생전 대통령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과거에 대한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정권을 잡았더라도 헌법에 준하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했다면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장이나 각종 훈장도 자랑스럽게 걸어두었다가 최순실 사건으로 구속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여론을 의식하며 배신의 줄서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전에서는 박근혜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큰소리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배신의 정치, 대통령의 훈장은 국격을 기준으로 수여되는 것이다. 재임 시 집안의 영광으로 수여 받았던 영광의 표창들이 이제는 수치스러워 반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은 집안의 가보처럼 걸어놓았다는 것인가.

만약 서울의 봄이 상영되지 않았다면 계속 걸어두며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는 뜻인가. 지금의 정치인들이 이번 서울의 봄을 한 편의 영화로만 보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