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간디가 전하는 망국의 징조
[덕암칼럼] 간디가 전하는 망국의 징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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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간디가 말한 7가지 망국의 징조를 보면 원칙 없는 정치와 노동 없는 부자들의 급속한 증가, 그리고 양심 없는 쾌락의 만연과 인격 없는 교육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밖에 도덕심 없는 경제와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 그리고 희생을 모르는 종교를 망국의 징조로 손꼽았다.

마하트마 간디는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지역에서 태어났다. 13살에 결혼한 간디는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군대도 가지 못했고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인도 민족운동 지도자이며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오직 무저항·비폭력 불복종운동으로 민족의 독립운동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도의 모든 화폐에는 간디의 초상이 그려져 있으며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신으로 불릴 만큼 대단한 인물이다. 1948년 1월 30일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한 날부터 77년이나 지난 2024년 오늘날 간디의 교훈이 남긴 말 중에는 앞서 어필한 7가지 망국의 징조가 마치 예언처럼 맞아떨어지고 있다.

마치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지금이라도 망국보다 흥하는 나라가 되길 모든 국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오늘의 글을 남긴다.

가장 먼저 원칙 없는 정치다. 시류에 따라 표만 얻어낼 수 있다면 분야와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원칙과 변칙의 차이도 모르고 국민들의 표를 얻기위해 선동하며 공약에 대한 의지나 실천도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적 철학과 국민들을 위하는 개정법안보다는 선거구에 도움 될만한 국책사업이라면 얼마의 적자가 예상되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다고 뽑아주는 유권자도 그렇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예산 낭비의 악순환을 거듭한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신랄하게 파헤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범죄기록도 의원들이 탄핵안을 가결해도 얼마든지 단식이나 다수당의 힘으로 버티는 장면이 버젓이 언론 1면에 보도되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헛소리한 것이고 아니라면 둘 중 한 명은 분명히 국민을 속인 것이다. 다음 두 번째 부자들의 급속한 증가다. 인구 5,200만명 중 40만 명이 가진 재산이 전체 국민 재산의 절반을 넘는다.

빈부격차로 부자는 배불러 죽겠다 하고 가난한 자는 배고파 죽겠다 한다. 다음 세 번째로 양심 없는 쾌락의 만연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스와핑이나 갱뱅의 유행이 그러하다.

처음 일본에서 시작된 난교 파티가 현해탄을 넘어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이제 성매매는 단순히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 모든 양심을 버리고 오로지 쾌락 위주로 급변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20년 전 200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난교 파티가 경찰에 단속된 당시만 하더라도 6,000명이 확인됐다.

개인 간의 사생활이다 보니 점조직으로 번성했고 마치 악성 바이러스가 번지듯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달리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도 없었다. 연령을 가리지 않고 소액의 입장료만으로도 얼마든지 짝을 바꿔가며 성관계를 즐기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풍선효과로 인해 종사자들이 15분에 5만원씩 토끼보다 빠른 성관계를 전제로 마치 컵라면 팔듯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네 번째로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에 지혜는 없다. 올바른 사람 되라고 인격 교육했다가 민원에 시달릴 것이고 성적만 올려 우수한 대학만 많이 보내기 위해 동급생끼리도 경쟁 위주의 교육 분위기가 조성됐다.

학생은 인권조례로 교권이 추락했다 하고 줄어드는 학생 대비 100조원이 넘는 교육예산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여전히 대한민국 대학교 중 국제적 랭킹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설령 졸업해도 취업이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인격에 대한 교육은 먼 나라 얘기다.

다섯 번째로 수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경제에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도덕이 병행되어야 한다. 돈만 된다면 가짜도 판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도 극심하다. 납품 단가 500원도 안 되는 닭이 소비자에게 2만원에 팔리고 인터넷 유통을 거친다면 가격 경쟁은 이미 정상적인 거래보다 철저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우선이다.

여섯 번째로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인데 현재의 AI가 그러한 징조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내비게이션이 자동차의 중요한 옵션일 때 나름 연구와 투자를 쏟아 부었던 기업들이 현재는 스마트폰의 티맵으로 대체 되면서 폭망했다.

그리고 사람이 앉아 있던 계산대에 키오스크가 대신했고 고속도로 안내원 대신 하이패스가 자리잡는 등 대화로 거래되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사람을 밀어냈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었으나 그 기계에게 조아리며 짹소리 못하고 복종당하는 시대가 됐다. 여유도 없어졌고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도 없어졌다.

인간성 자체가 거론되지 못하는 환경속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왜 존재가치가 기계에게 종속되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끝으로 희생을 모르는 종교로 가고 있음을 누구 하나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교회는 도심에서 기업화 되어가고 사찰은 산속에서 판도라 상자가 되어간다. 일명 사이비 또는 이단이라 칭하는 종교들은 점차 그 신도수가 늘면서 어디가 진실이고 현실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종교 박물관,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다.

자고로 종교란 제도권을 벗어나 사회정화 기능이 있어야 함에도 교회를 위한 교회, 절을 위한 절, 특정인의 신격화를 위한 성경과 불경의 도용이 남발되는 시대가 됐다.

적어도 이 같은 상황이 맞다면 망국의 전주곡이요 아니라면 다행이다. 방법이 없을까. 물론 있다. 알면 고치면 되는 것이고 모르면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