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특권 내려놓는다며
[덕암칼럼] 특권 내려놓는다며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0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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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말로 해서 안 되면 패서라도 사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진정한 학대란 안 때리고도 충분히 개선 가능한 상황을 교육이란 명분이나 사랑의 매라며 감정을 실어 때릴 때를 말한다.

어쨌거나 오늘은 말로 공직자들의 해외출장에 대한 명분이나 효율성, 필요성, 출장 후 남긴 보고서나 함께 동행 하는 자들의 이유 등을 짚어보자. 앞서 국회의원들의 한결같은 공약 중 하나가 특권 내려놓기였다.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같은 공약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후보자 입장이었을 때 인터뷰를 하다보면 묻지 않아도 스스로 특권 내려놓는다는 말을 결의에 찬 목소리로 장담한다.

그 특권 중 하나가 해외출장이다. 물론 국민세금으로 다녀온다. 당연히 업무적 방문의 명분에 관광 일정이 슬쩍 포함된 것은 당연지사다. 심지어 회기 중에도 눈치 보지 않고 가는가 하면 너도 나도 주어진 권한 내에서 최대한 남은 패를 다 써먹기 위해 혈안이다.

안가는 사람만 바보 되는 형국이며 영종도 공항의 문턱이 닳도록 나가는 의원들도 부지기수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한국의원들이 남겨 놓은 발자취가 익숙해져 뭘 좋아하는지 알고 접대용 코스를 개발해 둘 만큼 한국의 정치인들이 국민혈세로 뿌린 흔적들에 혀를 찬다는 전언이다.

해외 출장은 선진국 견학이 대부분인데 명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보고 듣고 한국 실정에 맞는 정책수립에 참고하기 위함이다. 과거 직접 보지 않고는 확신을 갖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과 민간기업들의 참여가 대폭 향상되어 굳이 외국을 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한국으로 와서 설명하고 수주에 공을 들여야 할 실정이다.

시대가 변하면 공직사회의 썩은 풍토도 변해야 한다. 쓸데없이 해외출장에 소요되는 경비나 시간 등을 국민들의 복지향상에 할애한다면, 그러한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정치권이나 공직자들에 대한 존경은 하지 말래도 할 여지가 넘친다.

실제 해외출장의 내면을 보면 선출직 공직자 외에도 수행하는 공무원, 시민단체, 언론인 등 말이 나올만한 분야에서 돌아가며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분야에서도 내부적으로 선순위가 있어 어떤 이는 10년을 기다려도 기회가 없고 또 어떤 기득권의 주자들은 1년에 몇 번씩 공항으로 캐리어를 끌고 간다.

이러니 근절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과거 어떤 대통령을 수행하던 기자는 미국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영어 한마디 못해 국제적 망신을 떤 것은 물론 또 어떤 대통령은 기자들 데리고 중국 출장에 따라갔다가 용역경비업체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던 사례도 있었다. 당연히 동행했던 자들의 자질 문제다.

중국어 한마디 못해 당한 국가의 격이 추락된 흔적이다. 필자가 약 15년 전 국내 거물급 정치인들이 필리핀으로 단체 출장을 떠난 발자취를 따라 취재에 나선 적이 있었다. 물론 집단 성매매는 기본이고 출발부터 현지는 물론 도착할 때까지 황제여행이라 불릴 만큼 온갖 추태로 얼룩진 관광일색의 혈세 낭비였다.

현지 여행일정을 역추적한 결과 아연실색할 일들이 즐비했다. 왜 이런 관광이 성행하고 유지되는 것일까. 이들이 악어라면 여행사는 악어새다. 함께 동행한 각 분야의 일행들도 악어새다. 새들의 합창이 가능하므로 이미 다녀온 사람이나 출발을 준비 중인 사람이나 앞으로 다녀올 사람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자면 억울하면 출세하란 의미다. 누구든 욕할게 아니라 그 자리에 올라가면 안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못가는 사람이 갈 수 있어 가는 사람을 욕할게 아니라 안 가려는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 이런 풍토의 연속성을 끊어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부터 국회, 도의회, 시의회, 군의회, 정부부처의 모든 공직자들이 출장의 필요성이 확실하다면 가야겠지만 명분 만들기에 급급한 여행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어설픈 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례를 나열하자면 밤을 새워 작성해도 모자랄 판이다.

약 6년 전 경기도 A시의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선 후 임기 2년 동안 13차례나 해외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시정은 공무원 내부 망에서 성토하듯 엉망이었고 하지도 않을 일을 시정의 성과처럼 부풀려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정 홍보지에는 전체 지면 중 절반이상을 시장의 홍보에 할애했고 오로지 시장님, 시장님을 연호하며 대형 현수막도 게재하는 등 찬양일색이었다. 혹여 입바른 소리하는 언론은 명예훼손이라는 명분으로 소송을 밥 먹듯 하고 안하무인의 행보에 감히 누구하나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가 이와 유사하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이 같은 행태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동소이했다. 가는 곳마다 영부인을 대동하여 두 번 입는 옷이 없을 만큼 호사를 누렸고 이를 국가의 격으로 착각하는 언행들이 뒤따랐다.

입으로는 연신 국민을 위한다며 민생을 버릇처럼 달고 산다. 민생은 시장판에서 떡볶이나 어묵 먹으며 사진 찍는다고 위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상처가 위중하면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응급분야 전문가들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가까운 부산지역의 종합병원을 두고 헬기로 서울까지 이동하면서 온갖 성토가 뒤따랐다. 이번처럼 가벼운 경상이라면 더더욱 서울까지 갈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부산지역 대형병원의 위상도 추락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사소한 행보도 국민에게는 실망과 허탈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조금만 잘해도 엄청 돋보일 수 있다.

이유인 즉 워낙 못했기 때문에 못하던 사람이 조금만 잘해도 그리 보이기 때문이다. 이젠 말로 할 때가 아니다. 회초리나 몽둥이로 가르칠 일도 아니다. 오로지 유권자에게 4년에 한번 주어지는 투표권으로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줄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