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소한 가고 대한 오고
[덕암칼럼] 소한 가고 대한 오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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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24절기 중 겨울의 참맛을 공감케 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6일은 소한이었고 기상청의 예보보다 더 정확히 동장군이 찾아왔다.

오는 20일은 가장 춥다는 대한이다. 지금은 춥다고 난리를 쳐도 올해 겨울은 매우 따스했다는 것이 공통적인 여론이다.

옛말에 산 사람은 어찌하든 살아진다고 했다. 가뭄과 기근 속에 태어난 아이도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할만큼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며 지내는 사회적 동물이다.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오두방정을 떨며 몇십 년만의 강추위가 어쩌고 요란을 떤다.

요즘 같은 날이면 문득 염려되는 곳이 단전·단수 가정이다. 실제로 전기요금 체납으로 인해 단전을 경험한 가구 중에서 에너지 바우처를 이용한 가구는 5년 평균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총 32만1,600가구가 전기요금 체납으로 인해 단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구당 2명만 계산해도 60만 명이다. 문제는 정부가 나름 대책을 세운답시고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했지만 이런 절차가 있는지도 모르고 안다 해도 전기도 못 쓸 형편에 정부정책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이 중 3만 5천 가구만 에너지 바우처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복지정책이 겉도는 것일까. 책상에 앉아 머리만 굴리고 현장을 나가보지 않으니 복지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고 실제로 단전까지 갔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인데 휴대전화나 인터넷은 진작에 끊겼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무슨 에너지 바우처가 어쩌고 하는 정책의 혜택을 볼 수 있을까. 한전과 업무적 공유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음에도 적극적인 에너지복지 행정이 이뤄지지 않는 증거다. 여기서 에너지 바우처사업은 경제적 부담 등으로 에너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취약계층에 전기·가스·지역난방 등에 필요한 에너지 이용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 같은 제도의 탄생은 지난 2014년 서울 송파 세모녀 사망사건 이후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단전·단수 등 위기정보를 입수하고 있지만 정작 단전 가구들 파악만 하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 바우처에 대한 안내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고 겉돈다는 점이다.

물론 신청 방법은 본인 외에도 가족이나 친족이 대리 신청하거나 담당 공무원이 직권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신청 경로별로 구분한 통계도 없고 단전 가구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신청 안내 절차 및 관련 규정도 없는 실정이라 몰라서 못 챙겨 먹는 경우가 상당하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업무용 PC에는 주식이나 게임, 심지어 개인적인 업무를 보면서도 사각지대를 외면했다면 이는 사회복지 담당자의 직무유기 아닐까.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도 마찬가지고 지난 2005년 7월 경기도 광주에서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조치를 받은 가정에서 촛불로 생활하던 여중생이 사망한 후 완전 단전은 하지 않고 형광등을 켜거나 소형 텔레비전을 볼 정도의 최소한의 전기는 공급하는 전류제한 조치가 그나마 최악의 위기를 면하게 됐다.

전류제한 조치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어두운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면 한 시간이 몇 년처럼 길고 아득해진다. 화려한 아파트 불빛을 보면 자신 말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만 실제로 아무 집이나 문 열고 들어가 보면 나름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삶의 다양함이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싶은 사람은 없고 아프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세상 사는 게 어디 그리 원하는 대로만 살아지던가. 전기를 못 쓰고 촛불로 버티다 화재로 번져 온통 불길이 시뻘건 입을 벌리며 삼킬 때면 불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혀를 날름거린다.

단전은 단순히 전기만 안 쓰는 일시적인 순간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감이 무력해지고 오래도록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오늘처럼 매서운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강원도 어느 산속의 영하 20도가 넘는 환경 속에 화마와 목숨 걸고 싸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단전뿐만 아니라 단수조치 또한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얼음을 깨고 눈을 녹여 물을 만들어본 경험 또한 한 바가지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 훌륭한 훈련이었다. 과거에는 그렇다 치고 농어촌이 아닌 도심에서 단전·단수를 맞이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물론 식수도 생활용수도 심지어 화장실 물도 쓸 수 없게 된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에너지 취약계층은 5만 명이 넘는다. 전기료 체납·단전·단수·가스 등 에너지 취약 상황에 놓인 계층은 재작년 2만 3천명 작년에는 5만 3천명으로 두 배나 늘었다.

약 4만 명이 단전상태에 있으며 1만 3천명이 가스가 끊긴 채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물론 작년에 비해 전기료가 두 배 이상 증가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단전될 정도라면 단순히 요금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사이트를 보면 지난 2023년 연료비 지출 증가폭이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은 소득 하위 20%로 나타나 엥겔지수와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대안을 제시한다. 모든 정부 부처나 지자체 사회복지 담당자는 즉시 현장으로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실질적인 조사와 함께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은 조건 없이 살려내야 한다. 마치 치아도 없고 앞도 보지 못하는 노인에게 딱딱한 비스킷을 던져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복지정책이 겉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에너지 바우처를 사용조차 할 줄 모르는 90%의 수혜자들이 몰라서 못 찾아 먹었다면 그 예산 어디로 갔을까.

다시 반납했을까. 아니면 이래저래 누군가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