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탁 치니 억 하고
[덕암칼럼] 탁 치니 억 하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1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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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1987년 1월 14일 故 박종철 열사가 군사정권의 희생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고문을 강행하다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변명은 훗날 영화 대사의 한 대목으로도 명성을 크게 얻었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향한 청년들의 구국 의지와 양심 있는 행동 끝에 나온 결과였으며 박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국민들은 분노했고 잔인한 군사독재의 종말은 서서히 다가왔다.

앞서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국민세금으로 월급 주고 나라 지키라고 준 총으로 주권자인 국민을 떼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 ‘서울의 봄’으로 영화화되자 위의 두 사건을 묶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테러를 경찰이 은폐하고 있다면서 故 박종철 열사와 비교하는 포스터 들이 더불어민주당 총선 후보들의 대표적인 청사진으로 나돌고 있다.

각인되는 사진을 해석하자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테러사건이 故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비교되는 것이며, 당시 경찰이 은폐했다는 사실과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건을 은폐하는 것과 연결시켰다.

이렇게 두 사람을 민주열사로 묶은 다음 여기에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광주의 영화 제목 ‘서울의 봄’을 연결시키면 이재명 열사가 경찰의 테러 은폐에 희생된 날로 해석된다. 이미 전국적으로 확대된 유사 홍보물이 과연 민주화와 직결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적어도 민주열사란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국민들의 의지를 살려내는 것이지 총선에 이기려고 짝이 맞지 않는 퍼즐을 갖다 붙이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처사다.

필자는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아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맞는 건 맞다 하고 아닌 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갖다 붙일 게 따로 있지 민주 팔이 동정표를 구걸하는 것도 국민들의 기본적인 의식 정도는 감안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예의라는 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故 박종철 열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용기 있는 보도로 인해 조금씩 벗겨지는 경찰폭력을 이제 윤석열 검사 폭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왜 검사정권으로 불릴까. 국회에서 건네 온 다수결의 결과도 거부권으로 돌려보내고 인사정책에 검사 출신들이 즐비하면서 나온 여론이다. 북한에서는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단정 짓고 내부적으로는 여야로 갈라진 민심이 분열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신당들이 우후죽순 창당되어 마치 정치를 위한 정치판이 정국을 안개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냥 둬도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인데 이 나라가 어쩌다 권력 다툼의 전쟁터로 돌변하고 있을까.

한쪽에서는 김건희 특검 하라고 소리치고 또 한쪽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구속 연기를 두고 민주당 국회의원 대다수가 방탄 국회가 아니라 공천 국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친명과 비명으로 엇갈린 공천 태풍은 각자의 소신보다는 철옹성 같은 이재명 대표의 눈밖에 벗어날까만 염려하고 있다.

1987년 민주주의는 억압과 폭력에서 견디다 못한 국민적 공분이었지만 자유가 차고도 넘친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열사들이 희생으로 남겨진 전리품이다. 전대의 값진 희생으로 현대가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비록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되고 문명이 운명을 뒤흔드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현재의 평화라도 지키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죄 없는 사람 연행해서 고문하는 경찰은 사라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전대의 열사들이 변하면서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고 이제는 무엇이 민주주의 근간인지 구분조차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청년들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정을 할까. 후보들의 가치관과 정치적 철학으로 표를 던지는 선진 선거문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도 전라도·경상도, 연령별·성별, 패거리 명칭을 지어 양들의 무리를 몰고 가듯 표몰이를 하고 있다. 이래서는 어렵사리 얻어낸 민주주의가 변질될 공산이 크다. 지켜내야 한다. 어찌 얻은 민주주의인가.

특정 정치인들 먹여 살리고 특정 이념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고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던가. 지금이 정치인들이 당시에 옥살이를 하고 때로는 앞장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6·10 항쟁에서 도심을 가득 메운 인파는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의 민심이요 자연스러운 참여였다.

최루탄 가스나 민중가요가 특정 정치인들의 출세를 위한 소품이나 전주곡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진정한 열사들은 조용히 살고 있지만 어설프게 참여했던 인물들까지 모두 정치판으로 쏟아져 나와 민주팔이를 하고 있다.

필자 또한 1987년 혹독한 경찰 폭력에 시달려 고향인 강원도 태백을 등지고 한겨울 폭설을 뒤로 한 채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 석탄산업 합리화에 반대하며 겪어야 했던 고초는 에너지 변천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대체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 투쟁이었다.

경찰의 협박이나 폭력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폭력 앞에 얼마나 비굴해지고 무능해지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지 겪어봐야 알 수 있다. 폭력은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친구를 밀고하게 되며 없던 일도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현실을 도피한 결과 강원도 태백의 탄광지역은 이제 국영기업마저 폐광을 앞두고 속수무책 인구감소로 벼랑 끝에 있다. 같은 시기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말 이전에 죽지 않을 만큼 맞고 후유증으로 수년을 아파하는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제 총선 석 달 남았다. 아무리 당선되고 싶고 공천받고 싶어도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말이 있다. 거대 양당 후보들에게 당부한다. 과유불급 이라 했다. 욕심이 지나치면 도덕도 상식도 정의감도 모두 잃게 된다.

당락을 떠나 훗날 선거운동의 흔적으로 남을 텐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1cm 상처를 민주주의 열사와 합성해 손바닥 지문이 닳도록 비비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