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남과 나의 차이점
[덕암칼럼] 남과 나의 차이점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2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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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병원에서는 환자 중심의 치료를 한다고 하고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신뢰를 장담한다. 상인들은 남는 게 없이 판다고 하고 노인은 늙으면 죽어야지 하며 정치인은 특권을 내려놓는다고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다 맞는다고 치자. 의사가 환자의 신체를 개복하거나 절단할 때마다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한다면, 변호사가 사건 수임할 때마다 의뢰인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생각하고 소송에 임한다면 이 또한 스트레스로 몇 년 살지 못하게 되고 수명을 다할 것이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의뢰인 입장에서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에 대해 자신의 어려움을 대신해 주거나 고쳐 달라는 취지인 만큼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또 그만큼 기대하게 된다.

전자는 벌어진 상황이고 후자는 나름 대안이라고 세운 것이다. 이렇듯 남과 나는 분명한 입장 차이가 있다. 이를 간과하고 지나친 기대를 건다면 그만큼 실망감도 커지게 된다. 최근 들어 남과 나의 차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남에 대한 배려가 나의 이익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건도 그러하고 정치적 도덕성도 그러하며 각 개인 간의 인간관계 또한 그러하다. 일단 주거 환경부터 3대가 함께 거주하던 문화에서 핵가족도 모자라 원룸 형태의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외롭다는 표현보다는 아늑하거나 편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 옆에 누가 있으면 불편해질 만큼 독신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니 당연히 습관이 몸에 밴 철저한 배타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된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은 점차 사회 전반에 보편적 이해관계로 형성되고 있다. 누군가는 괴로우며 함께 사느니 외로우며 혼자 살겠다고 말했다. 본래 사회란 사는 게 두려워 만든 조직이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독신이 증가하면서 결혼조차 기피하게 됐고 이제 10년 정도 지나면 독신가구가 지금보다 월등히 많아질 것이다. 물론 자연사로 인한 인구감소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조차 무감각해지는 미래가 찾아올 텐데 마냥 하나님·부처님 찾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최근 필자가 알게 된 서민들의 경제적 현주소와 대안에 대해 잠시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 먼저 오프라인 신문과 인터넷뉴스를 운영하다 보면 일반 서민들의 생활정보를 취합하게 된다. 구인·구직은 물론 중고 자동차나 생활용품, 부동산 등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는데 이 같은 현장 상황은 정부 고위관료들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가장 먼저 지역화폐, 상품권, 자영업자 전기세 보조, 세금 감면 등 온갖 정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서민들을 구제할 것처럼 하지만 이렇게 쏟아 붓는 예산들이 누구 돈인가. 이미 온갖 명분으로 싹싹 긁어모았던 혈세로 누가 누구에게 생색을 냈단 말인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장갑을 벗어 던지고 수당에 목을 매고 있으니 외국인노동자들이 판을 치는 게 아닌가. 구인란에 어렵사리 광고를 내는 업체 운영자들은 아무리 찾아도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어쩌다 와도 4대 보험이 되느냐, 실업수당 수령할 때 협조가 가능하냐며 단서를 단다고 한다. 오히려 피고용인이 고용인을 상대로 면접을 보는 형국이다. 최저 시급 적용은 물론 초과수당 등 법적으로 유리한 것만 모두 외워 와서 요구 조건을 달면 그나마 와준 것만으로 고마워 채용을 수락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외적 성장과 내적 병폐는 전혀 다른 양면성을 띠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열쇠는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이고 국민들이 덩달아 동요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권력은 잠시 주인인 것 같으나 결국에는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에 밀려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는다.

이제 총선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오고 후보들의 난립과 너도나도 한자리하려는 의욕과 열정들이 거리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어제까지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치인도 어느 날 공천에 밀려 야인의 길에 내동댕이쳐지고 듣도 보도 못한 청년이 공천받아 정권의 세대교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코로나19가 극성일 때처럼 어려울까. 어떻게 하든 이 또한 지나가리니. 이번 총선에서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 이 나라의 장래를 예측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건 확실하다.

지난 20일은 가장 춥다는 대한이었다. 겨울의 정점이니 당연히 춥겠지만 자연 여건이나 경제적 여건이 힘들수록 약자들의 한겨울을 함께 염려해 주는 마음과 이에 걸맞은 현실적인 정책이 병행되기를 바란다.

자고로 집단생활이란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무리가 지도자를 신뢰할 때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가중되면 지도자도 힘들겠지만 결국에는 무리가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한다.

토끼나 사슴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숲에 없다고 약한 동물들이 행복할까. 호랑이는 배만 부르면 잠들지만 교활한 늑대는 비축할 먹이를 위해 하지 않아도 될 사냥을 한다. 어떤 정권이든 일장일단은 있다.

지금껏 대한민국 지도자들 중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파란만장한 마침표를 찍었다. 총 맞고, 자살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아 묫자리조차 없거나 당연한 듯 구속되어 괴로운 수감생활을 해 왔다.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당파싸움이 그러했고 지금도 여야의 당쟁이 그러하다. 그만큼 고생했으면 이제 태평성대의 세월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