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노년을 위한 청사진
[덕암칼럼] 노년을 위한 청사진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1.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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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60년 여자 1명이 가임 기간에 낳는 자녀 수의 평균치인 합계 출산율은 6명이었다. 1984년부터는 2명으로 떨어졌고 1998년 1.5명으로 급감한 이후 2018년 1명 미만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출산 대비 사망률은 1960년에 1.21%에서 2000년 0.52%로 떨어졌다.

문제는 평균수명인데 2016년 기준 82.4세에서 2024년 여성 90세, 남성 86세를 기록했다. 당연히 밥벌이하던 나이와 은퇴후 나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어떤 식으로 감당하느냐가 관건으로 남았다.

1960년에 전 국민 대비 3%에 불과했던 노년층이 2017년에는 13.8%로 급증했다. 물론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죽고 싶어도 현대의학이 쉽게 놔줄 리가 없다. 갈수록 평균 수명은 늘고 있다.

물론 기대수명이 길어진 만큼 생존율은 높겠지만 문제는 건강수명이다. 몸져누워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면서 생물학적으로 숨만 쉰다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은 물론 간호인력까지 병행되어야 연장될 수 있는 노후의 비참한 삶은 영양제 링거나 콧줄에 미음을 주입하면서 견뎌내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민폐다.

산소 공급을 위한 호스만 빼면 숨을 헐떡이는 노인들의 요양 모습이 낯설지 않은 필자의 입장에서 심각해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일부 노인들은 음식을 거부하며 겨우 버틸 정도만 드시는데, 이유인즉 먹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배설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한때 날고 기던 젊은 날의 자신을 회상하며 조선족 간병인에게 대·소변의 수고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는 전언이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연령은 높아가고 아이는 줄어드는 현실에서 그나마 답이 있다면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제강점기가 힘들어 만주와 중국, 사할린으로 떠난 한인과 자의 반 타의 반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만 해도 200만 명이 거주했던 기록이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2세대, 3세대의 한국인들 240만 명이 모국에 대한 회귀본능과 다시 귀국할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없던 아이들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남의 국민도 외국인 근로자 우대 정책으로 온갖 명분의 예산을 편성하는데 동족에 대한 예우는 더 큰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이민정책의 완화로 현재도 세계 여러 나라에 100만 명에 가까운 교민이 진출해 있다.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경제적 능력보다 사회적 반감이 더 문제다. 고용은 물론 단기계약이나 일일 근로까지 채용을 꺼리는데 업무적 능력도 그렇지만 근로자 지위에 대한 노동법의 강화가 고용주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 문명에 익숙하지도 않고 대화 속에 벌어지는 세대 차이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젊은이들이 하나둘 떠난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에 남아 있던 노인들이 뒤늦게 합류한 도심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더욱 심각한 것은 수도권의 중소도시마저 서울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도시의 슬럼화 현상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먹을 게 없어 이듬해 농사지을 볍씨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만 연속될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트나 시장에 가도 쌀과 고구마·감자 등 비교적 기르기 쉬운 농산물을 빼고는 모두 중국산, 베트남산, 수산물은 원양어선이 수입한 러시아산과 인근 연안에서 잡은 어종들이다.

결론적으로 농·어촌에서 그나마 생계를 꾸려가던 노인들이 도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인구만 약 15,000명이고 간접적으로 용돈벌이를 하거나 전업 수집인이 아닌 인구까지 합하면 약 200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지금은 특별한 제한이나 별도의 구역 없이 먼저 손 닿는 사람이 가져가는 정도이니 문제가 없겠지만 향후 재활용 시장은 한정된 수거 용량에 불특정 다수인이 서로 쟁탈전을 벌이며 백발이 된 어르신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일도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절대 빈곤층은 어느 정도라도 기반이 있어야 재생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 늙은이들에게 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 것이며 사업 자금조차 없는 가난한 노인들에게 동업을 제안할 것인가. 이미 한번 무너진 삭막한 농·어촌 주거환경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의 이러한 예상이 소설이나 불확실한 추정에 의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문제 제기이며 대안도 정확히 마련되어 있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있지만 젊은이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경륜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를 보면 학교 앞 안전 깃발 들기, 잡초 뽑기나 화분 심기 등 단순업무에 그친다. 화려하고 풍부한 경력들이 활용되는 예를 본 적이 드물다. 다양한 분야에서 장인정신으로 배우고 익힌 그들만의 기술이나 노하우가 조용히 사장되고 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 태산처럼 많음에도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모두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수·공예품, 기타 제조업 관련 상품들로 채워진다. 자국의 생산 능력이나 기술이 있음에도 관련 시장이나 기반을 외면하고 그렇게 외면당한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 기술은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하나 둘씩 맥이 끊기고 있다.

필자의 견해가 시대를 감안하지 못 하는 발상이라면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문명이 발전한 선진국에서도 자국의 문화·예술, 기타 자국만의 장점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명맥을 이어가는 점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