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돼지고기였으니 망정이지
[덕암칼럼] 돼지고기였으니 망정이지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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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군인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근무하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군수물자로 총, 군복, 철모, 군화, 담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군량미는 군인들이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필수적인 물자로써 단순한 음식 이상으로 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데도 일조한다.

필자가 근무하던 1985년도만 해도 닭고기 볶음이 나올 때면 차 떼고 포 떼고 남은 것이라곤 멀건 닭 국물뿐인 경우가 허다했다. 이따금 소고기뭇국이 나오면 소가 발을 씻고 지나갔다 싶을 만큼 형편없는 식단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계급별로 위에서 먹고 남은 것으로 다음 고참과 취사병이 먹고 일반 사병들이 줄 서서 먹을 때면 그러한 식단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선진 국군을 위한 풍족한 예산과 넉넉한 자유 배식이 있으니 소위 군인이 배고프던 시대는 지났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상명하복의 특수한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일정 복무기간이 지나면 전역하고 그다음은 입대하는 장병의 또 다른 몫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주인 정신으로 시정하기보다 괜히 나서지 말고 전역 할때까지 잘 참고 견디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인가. 최근 국내산 돼지고기를 납품한다던 회사가 수입산 돼지고기를 허위로 납품하다 적발된 사건이 이슈화됐다. 복수의 언론보도를 인용하자면 수입한 냉동 돼지갈비를 외관상 국산과 구분이 어렵게 작게 절단해서 국내산 고기로 둔갑시켜 납품하다 걸렸다는 것인데 과연 2년 넘게 속였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납품한 회사대표 혼자만의 범행계획으로 가능했을까. 아니면 이를 묵인하고 방관한 영양사나 군부대 취사병은 몰랐을까. 일반 식당에서도 원산지 표시는 기본이다. 약 1개월 전 정부가 원산지 표시 단속에 나서 원산지를 기재하지 않았거나 거짓으로 표시한 업체를 대대적으로 적발한 적이 있었다.

원산지 표시 위반 건수는 2020년 3511건, 2021년 3689건, 2022년 3935건 등 꾸준히 3천 건 이상을 기록하며 확연한 증가세를 보인다. 가장 많이 적발된 농축산물은 돼지고기로 1007건에 약 1120톤이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막상 적발되어도 가벼운 과징금에 그치고 있어 관련 법규에 대한 국회 차원에서 개정 법안의 필요성이 높은 실정이다. 이번에 적발된 국방부 상대 허위 납품 사건의 소재도 돼지고기였다. 지난 7일 농산물품질관리원은 2021년 9월부터 2년 넘게 원산지를 속여 13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육류 유통업체 대표 60대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의 범행을 도운 경리 담당 직원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한 뒤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군납 식품제조업체 2곳에 납품했다.

축산물을 구입하면서 얻은 도축 증명서까지 허위로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납 업체는 원산지가 바뀐 사실을 모르고 양념 돼지갈비 등으로 가공해 부대에 납품했다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난 2년간 육군 전 부대와 해군·공군 일부 부대로 유통된 고기의 양은 436톤으로, 50만 국군 장병이 4번 이상 먹고도 남을 양이다. 수백 톤의 고기를 수년간 취급하면서 정육 전문가들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유통경로나 취사병 등 검수 과정에서 몰랐다는 것이다.

군은 장병 건강을 위해 국내산 2등급 이상 돼지고기를 납품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육군 중앙수사단이 돼지고기 시료를 채취해 원산지 판별 검사를 한 결과 외국산으로 의심돼 합동 조사를 벌이면서 A씨의 범행이 발표 내용대로 A씨 단독범행이라면 수사는 여기까지겠지만 더욱 더 철저한 수사가 병행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돼지고기 원산지 둔갑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암암리에 행해져 왔고 국내산과의 가격 차액을 챙길 수 있다는 얕은 생각에 비양심적인 상술이 성행했었다. 그러한 이유로 약 3년 전인 2021년 5월 돼지고기 원산지 판별을 4일에서 5분으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키트가 개발되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공식 발표한 적이 있었다.

돼지고기는 소비량이 가장 많은 육류로 매년 수요의 30%를 수입하고 있다. 외국산이 국내산보다 50%가량 저렴해 원산지 위반이 많았다. 국내산 돼지가 백신접종을 통해 돼지열병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했는데 키트에서 2줄이 나오면 국내산이고 1줄이면 외국산으로 판별된다.

기존에는 돼지고기 원산지 판별을 위해 1건당 실험실 내에서 이화학 분석 기간 4일, 분석 비용 40만원, 시료량 2kg이 소요됐으나 새로운 분석 방법은 돼지열병 항체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점을 이용해 판별하는 방식이었다.

비용도 1만 원 미만이고 시료 채취도 콩알만한 크기면 가능하다. 또 기존 분석 방법으로는 돼지고기 중 삼겹살과 목살의 원산지 검정만 가능하나 새로 개발된 ‘돼지고기 원산지 판별 검정키트’는 삼겹살뿐만 아니라 갈비·안심 등 돼지고기 모든 부위의 원산지 판별이 가능하다.

이래도 2년간 436톤이나 납품한 단독범행(?)이었다고 한다. 누가 믿을까. 쉬운 원산지판별법을 두고도 그 많은 고기들이 국군장병과 부사관, 장교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단순한 과징금이 아니라 국방을 책임진 군인들의 군량미를 허위로 둔갑해 이득을 챙긴 일이다.

형법이 아니라 군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야 하고 이를 안일하게 받아 확인도 없이 조리한 군납 식품업체의 묵인 여부도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 훔친 자나 망보는 자 모두 공범이다. 소중한 세금 으로 군인들 식사와 조리 하라고 1년 국방예산 50조원 이상 책정된 것이지 이래저래 빼먹으라고 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서류까지 위조했다는데 이를 몰랐다면 위조 서류가 유통된 경로를 역으로 추적해 공범을 찾아내야 한다. 돼지고기였으니 망정이니 총과 무기류 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방독면이었다면 전쟁 발발 시 어쩔 뻔 했을까.

혹시라도 범행으로 얻은 이득을 나눠 먹은 자들이나 금품수수를 했거나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면 이 또한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