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건국 전쟁과 서울의 봄
[덕암칼럼] 건국 전쟁과 서울의 봄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3.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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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영화에 이념대립의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덕영 감독의 영화 건국 전쟁이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큐 형식의 영화로써 상영 내내 많은 증인들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사실에 기반 했다는 점과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 북한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적 번영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각기 다른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건국 1세대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땀과 눈물, 투쟁을 조명한 작품으로 제작 기간 3년, 진귀한 기록 필름과 국내외 20여 명의 증언자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을 완벽하게 복원했다는 점에서 향후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오인된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전혀 상반된 발자취를 직접 목격하며 이념대립이 가져오는 망국의 조짐을 염려하는 계기로 삼았다. 반면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서울의 봄은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이래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군사 반란이 발생한 그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이후,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대 내 사조직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이는 사상 초유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

영화에서는 가명을 쓰지만 모든 관객들이 실제로는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리얼한 총격전이 실전과 같은 상황으로 연출됐다. 두 영화에서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점은 지금까지 인지했던 점과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이구동성으로 유사한 영화평가가 잇따르는 것은 교과서나 구전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 일부 과장되었거나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교육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오인 내용은 한 편의 영화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극과 극을 달렸다.

한강철교를 폭파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게 하고 정작 자신은 남쪽으로 피난 갔다는 점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승만 대통령의 처신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애국심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시절 초대 대통령부터 3대를 이어가다 4·19 혁명으로 고국을 떠났던 그는 90세의 나이에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반면 서울의 봄 주인공인 전두환 전 대통령도 제11·12대 대통령을 연임하며 군인의 길을 벗어나 정치에 입문했다.

초기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극심했다. 영화 속에서 친구라 불리는 노태우에게 대통령을 물려주는 정치적 작전(?)도 성공하는 운명의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당시 6·29 선언으로 마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선구자처럼 보였지만 결국 같은 군복을 입고 12·12 사태를 주동했던 오욕의 흔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친구끼리 한 나라의 권력을 이어받는 경우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용된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순한 양들이었고 침묵을 깰만한 언론이나 유력한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친구’는 2001년 3월 31일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오성, 장동건 등 국내 유명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던 영화다. 당시 1980년대 부산 일대 폭력계를 평정했던 조직들이 친구라는 사이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고 결국 이해부족이 오해로 불거져 흉기로 난자한 사건이 주요 줄거리였다.

영화 친구에서 두 사람 사이는 새드엔딩으로 끝났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해피엔딩으로 자연수명을 다할 때까지 권력의 그늘에서 불편함 없이 살다 갔다. 전자는 의리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였고, 후자는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5천만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와 미래를 짓밟고 개인은 행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된 부역자들까지 서로 의지하며 버텼기 때문에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까지 요직을 차지하며 그들만의 카르텔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도권과 기득권 내에서 잔뿌리까지 천 만 명은 호강할 수 있었지만 사천 만 명은 불행했다.

전자가 마시는 물은 후자의 눈물이었고 전자가 누린 호강은 후자의 피땀이었다. 서울의 봄에서 반란은 혁명이라고 했다. 반란이란 애국이라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원하지 않고 당위성도 없는 내부 총질의 성공이었다.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동안 국민들의 안녕은 실종됐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먹칠했다. 현재도 그러한 정치인이 총선 현장을 종횡무진 내달리며 자신만이 애국의 상징이라고 거품을 물고 다닌다.

제2의 전두환. 친한 사람끼리 나눠 먹을 수 있는 대한민국은 안 된다. 대통령상의 가치도 추락했다. 대통령이 대통령다워야 상도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을진대 임기 동안 화려했던 대통령상이 범죄자로 몰려 구속되거나 생을 마감하면 거실에 걸어놓았던 상장과 상패를 슬그머니 서랍 속으로 감춰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도 걸핏하면 민주화를 입에 달고 살고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친다.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질까. 호랑이는 때가 되면 한 마리 사슴만 잡아먹지만 교활한 하이에나는 살아있건 죽었건, 배가 불러도 비축하기 위해 마른 수건도 짜려 한다.

마치 사채업자가 마른 오징어를 짜서라도 이자를 받아 내려는 것처럼 세금을 거둬 이해관계자들이 나눌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외관상 경제 발전은 번듯해졌다.

밤이면 야경도 화려하다. 시대가 변하면 어느 나라인들 달라지지 않을까. 마치 대한민국만이 국제 번영의 선두주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정녕 우리의 얼과 혼과 모든 가치를 내려놓고 일부의 부 앞에 만백성이 조아리고 그 시스템에 엮어 사는 것이다.

총선 한 달 남짓 남았다. 2024년이 2034년에는 어떤 영화로 제작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