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제38회 세계 시의 날
[덕암칼럼] 제38회 세계 시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3.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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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인간의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는데 분량에 관계없이 구구절절 쓰는 것이 가장 편하다.

반면 줄이고 줄이라 하면 짧은 문장에 많은 내용을 함축해야 하므로 소설보다는 수필, 그보다는 시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다.

필자처럼 독자들의 구독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질릴만큼 길게 쓰는 것도 사실 매일 써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함축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칼럼은 평균 200자 원고지 7매 분량 정도면 적당한데 덕암 칼럼은 14매로 두 배나 길게 쓰니 시간이 넉넉한 독자들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혹자는 좋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거나 공감대를 형성하신 분들도 있지만 아마 100명 중 1명 정도만 보실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매일 700명 정도면 콩나물시루에 물이 그냥 흘러내리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콩나물이 무성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을 것이란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26년째 무식하게 글을 쓴다.

각설하고, 먼저 ‘세계 시의 날’이 정해진 배경부터 알아보면 1999년 10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UNESCO 제30차 총회 회기 중 제3차 전체 회의에서 시적 표현을 통해 언어적 다양성을 지원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를 들을 기회를 늘림과 동시에, 시인을 기리고, 시 낭송의 구전 전통을 되살리고, 시의 읽기, 쓰기 및 가르침을 촉진하고자 정해진 날이다.

또한 시와 연극, 무용, 음악, 회화와 같은 다른 예술 간의 융합을 촉진하고 미디어에서 시의 가시성을 높이면서 시가 대륙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계속 하나로 모아 모두가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다는 융·복합 목적을 담았다. 그로 인해 3월 21일은 ‘세계 시의 날’이다.

즉 World Poetry Day로 선포하였으며 올해로 25회를 맞이하고 있다. 시는 한반도에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맥을 이어왔으며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식민지의 서러움을 시로 표현했고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깊이 있고 심오한 경지를 담아왔다.

현재도 시와 관련된 단체나 협회 등 많은 모임이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멋진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시대에 걸맞은 시인들의 비유와 풍자, 해학과 지혜가 골고루 담긴 한 편의 시는 각박하고 삭막한 현대사회에 훈훈한 문화적 향연이라 볼 수 있다.

시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고 한 편의 시는 음식을 조리하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조리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과 멋이 동시에 어우러질 수 있으며 싱거운 것 같아도 매콤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게 간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함축된 분량에 아찔하도록 독자들의 상상력을 끌어내는가 하면 모두 적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다가올 수 있을 만큼 여유를 두기도 한다. 시는 급박한 상황도 지레짐작할 수 있게 하고 절박하고 애타는 심경을 공감하게 하기도 한다.

시는 욕정이나 음탕함을 적은 것 같아도 뜻이나 의미에서 망국의 서러움을 담을 수도 있고 간접적 표현으로 직접적 정곡을 지르는 것보다 더 강한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이 될 수는 없기에 깊이 있고 멋이 담긴 시는 시인의 삶을 넘볼 수 있을 만큼 작가의 내면을 짐작하게 된다.

혹시 독자들도 시인을 꿈꾼다면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시의 형태나 분야, 쓰는 방법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리움, 아픔, 환희, 감동 등 느낌을 자연스레 적어본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문득 1980년 발라드 트로트 곡으로 유명한 가수 한경애의 옛 시인의 노래가 연상되는 것은 노래와 시가 어우러졌기 때문은 아닐까.

시인의 지난 사랑에 대한 추억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한 것이다. 여러 가지 사물에 빗대어 그리운 감정을 노래하면서 히트 친 곡이다. 반면 남녀 간의 사랑 외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시라면 더욱 애간장을 태운다.

최근 탈북 작가 박은아 시인이 발행한 ‘창공을 나는 새가 되어’를 소개한다. 총 127페이지 책 한 권에 북한에서의 18년, 중국에서 18년, 그리고 한국에서 9년간의 삶의 체험을 담은 시집이다. 출판사는 ‘그림과 책’. 교보문고나 인터파크 도서 등 전국 유명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으로 첫 장을 열면 마지막장까지 볼 수 밖에 없는 내용으로 독자들의 눈물을 훔친다.

김정일 정권 당시 고난의 행군이라는 명분으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시절부터 살기 위해 사선을 넘어 아무 안면도 없는 낯선 중국에서의 공포감을 사실감 넘치게 표현했다. 논픽션으로 적었으면 아마 평범한 탈북자의 생활정도로 예상할 내용들을 시로 함축함으로써 더욱 공감대를 얻었다는 게 평론가들의 한결같은 추천 글이다.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서슬 퍼런 북한 경비원들의 눈초리와 서로 경계하며 본능에 허덕여야 했던 생활상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박은아 작가가 겪은 한국의 자화상은 한국의 독자들 입장에서 또 다른 의미를 느끼게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시로 쓴 적절한 표현은 남과 북이 따로 없음을 느끼게 하며 같은 풍습, 예절, 가족 등 모든 면에서 한민족이라는 점도 은연중에 공감하게 한다. 끝으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의 마지막 남은 눈물까지 쏟아내면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가족을 꿈에서라도 본다며 그리움을 시로 표현했다.

한국사회에서 식어가는 효도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 곧 봄이 온다. 어디 봄뿐일까. 춘하추동, 자연과 동·식물과 모든 사물이 시의 소재다. 독자들도 한편의 시로 힘든 현실 속에 정신적 여백을 찾아보길 권한다. 탈북 여성작가 ‘창공을 나는 새가 되어’ 출간- 안산인터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