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산신령님과 용왕님이 한판 붙으면
[덕암칼럼] 산신령님과 용왕님이 한판 붙으면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3.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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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산신령님과 용왕님이 한판 붙으면 누가 이길까.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두 신이 이른바 한판 겨루기를 한다면 승부가 날까.

필자는 산신령이 이길 것으로 예상한다. 일단 수적으로 오대양·육대주이니 대륙이 하나 더 많고 바다보다는 땅이 부동산 가치도 높고 활용도도 더 많다는 측면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관리 측면에서 볼 때 산을 지배하는 산신령님은 산하에 국립공원 관리공단이나 온갖 단체들이 너도나도 환경보호라는 명분으로 말끔하게 청소도 하고 과거처럼 삼겹살을 구우려고 불을 피우면 영락없이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바다는 누구하나 관리하는 사람 없이 어쩌다 해양보호 한다고 항구 주변의 쓰레기 몇 톤 건져 올리는 것이 전부다.

최근에는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해양투기가 법으로 금지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차츰 녹아내리는 빙하는 해수면 상승이라는 보복으로 바다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문제는 그 속도가 인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라지고 있음에도 당장은 목에 차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인다고 관리가 되고 물밑으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된다면 제 아무리 자정능력을 갖춘 바다라 해도 결국 쓰레기 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소형 선박부터 대형 선박까지 승선하는 사람들의 대·소변은 물론 강과 하천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부유물과 산업폐기물, 이따금 기름유출로 죄 없는 철새나 해양 동물들이 검은 범벅을 뒤집어 쓴 채 아주 난감한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때뿐이다. 말 없는 바다는 모든 것을 감싸주고 묵묵히 스스로 맑아지려 애쓰지만 그 속도보다 인간들이 망치는 오염의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일까. 차츰 바다는 제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늘 한결같이 인류에게 신선한 생선을 제공해 준다.

이에 인간들은 감사보다는 자신들의 수고로 잡은 고기니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고 언제까지 끊임없이 받아만 먹는 것이 현실이다. 늘 주기만 하고 말없이 모든 것을 감싸주는 바다가 화가 나면 어찌될까.

전설 속의 포세이돈은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로 바다를 상징한다. 어원을 보면 대지의 주인 또는 대지의 남편으로 크로노스의 아들이자 제우스의 작은 형으로 5남매 중 다섯째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신화 속의 이야기로 자세한 내용은 백과사전과 기타 인터넷을 검색하면 재미있는 설화를 알 수 있다. 포세이돈은 한국으로 치면 용왕님과 동급이다. 한국인이 바다를 대하는 모습을 신랄하게 논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도 시급함을 논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바다는 서쪽으로는 황해를 동남쪽으로는 태평양을 끼고 있으며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나라가 수역 경계선을 긋고 국경선을 정해 놓았다. 그리고 해군과 해양경찰을 배치해 일명 공해상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바다는 크게 두가지로 이용될 수 있다. 여행과 화물운송을 위한 운항, 수산물을 채취하거나 어획량을 올리기 위한 어업의 바탕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두 가지 목적 모두 바다 오염에 대한 특정한 규정은 있어도 이를 단속하거나 관련 법규를 정해 처벌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특히 바다나 강을 생존 기반의 현장으로 삼고 있는 직업적인 사람들도 해양오염에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어쩌다 뭍에서 물로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바다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직접 체험하는 부류가 아니다 보니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바다 정도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과정을 보면 미끼로 사용되는 떡밥부터 쓰다가 고장 나거나 파손된 낚시 도구들은 물론 물고기에게는 가짜 먹이를 주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온갖 음식을 끓이고 먹고 남은 것은 스스럼없이 바다에 버린다.

마치 먹이라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면서 버리고 소화가 되면 대·소변까지 배설한다. 이쯤이면 자정 불가라 볼 수 있는데 분해가 되지도 않는 깡통, 비닐, 스티로폼, 깨진 유리병까지 함부로 버려도 물밑에 가라앉으니 누구 하나 알 길이 없다.

한두 명이 하루 이틀 버리고 말면 다행이지만 해안선에서 바다로 던져지는 낚시나 갯바위에서 파도를 친구삼아 푸른 바다로 던져지는 낚싯줄은 꾼들에게 재미지만 바다에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먹고 살만한 시대가 되다 보니 갈수록 레저 인구가 늘고 있다. 자유대한민국에서 푸른바다를 지키는 일이 특정 기관과 단체, 개인의 의무나 책임으로 해결될까. 아직 마땅한 규제나 낚시에 대한 의무, 자격,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단체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너도나도 자유롭게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들의 해양오염은 어떤 선박이 얼마나 오염시키는지 데이터조차 없으며 해양수산부에서도 업무적 특성상 이를 제재할 만한 법률적 규정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앞서 거론한 낚시 인구 또한 자격이 없다 보니 마치 무면허 운전자들이 너도나도 교통법규도 지키지 않은 채 도로를 질주하고 불법 주차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국회로 입성할 의원들 중 누구 하나라도 이에 대한 관련 법안을 상정해 입법화 된다면 해수부나 해안가 지자체가 관리의 법률적 권한과 책임을 안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법안을 마련한 대표 의원은 바다 사랑이라는 명분과 해양오염에 대한 실익을 추구할 수 있으며 바다를 아끼는 레저 인구들도 바다에 대한 인식과 질적 향상과 체계가 잡히는 것이다. 산신령님과 용왕님이 함께 공존하는 지구를 만드는 일.

그리 힘들지 않고도 이용하는 만큼 깨끗하게 보존하는 일. 우리 모두가 누린 만큼 관리하고 아껴주어야 할 책임도 병행되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