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우리 바다 ‘서해 수호의 날’
[덕암칼럼] 우리 바다 ‘서해 수호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3.26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대한민국은 지리적 특성상 삼면이 바다로 되어있지만 유독 서해만이 국방 안전이 각별한 지역이다. 물론 서쪽으로 중국이 있고 연평도 사건 등 기타 해상분쟁이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동해보다는 비교적 관심이 많은 해상이다.

물론 동해도 조용하지는 않다. 일본이 최근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대 놓고 명시함으로써 외교관계도 불편해지는 파렴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는 6·25 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도 했던 곳이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지난 22일은 ‘서해수호의 날’이었다. 국가가 법정 기념일로 정한 배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3월 넷째주 금요일인 이날은 북한의 서해도발 사건으로 희생된 호국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날로 연평 해전과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서해 도발 사건으로 인한 대한민국 국군의 희생을 기리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정해졌다.

그럼 이날만큼이라도 서해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기념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살면서 때로는 돈이 안 되는 일이라도 알아두어야 국민으로서의 자긍심도 생기는 것이고 자라는 아이들이 물어보면 대답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제1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남과 북이 휴전선을 놓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철조망이라도 쳐놓고 경계를 하고 있지만 바다는 다르다. 북한과 남한 사이에 북방한계선 이른바 NLL이라 칭하는 경계선이 있는데 이를 침범해 발생한 사건이다.

또 천안함 침몰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1,200톤급 천안함이 폭발로 침몰한 사건이다. 이 밖에 연평도 포격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에서 연평도를 향해 포격한 사건이다.

이를 통틀어 2016년 각종 보훈 기념행사 지원에 관한 규정에 의해 정한 날이다. 특정일이 아니라 매년 3월 넷째주 금요일이다 보니 매년 날짜가 바뀐다. 먼저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행사는 2016년 3월 25일이었고 제2회는 2017년 3월 21일로 지켜졌다.

올해는 지난 3월 22일로 제9회째를 맞이했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애국도 중요하지만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내 집 앞만 괜찮으면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지나치리만큼 내 것만 중요하고 서해상의 안전이야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는 안보의식의 부재를 논하는 것이다.

물론 해상은 해군이 지키는 것이고 각자는 삶에 치중하면 되겠지만 국민 각자가 내 집 못지않게 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독자들은 아파트에 어느 날 포탄이 날아들고 언제 또다시 같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면 어떨까.

연평도 주민들이 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인데 세월이 지났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약이라면 같은 일이 되풀이돼도 무감각할까. 특히 천안함 사건은 당시 정권이 쉬쉬하면서 축소하는 바람에 졸지에 특정인만 명예가 실추되고 말았다.

해군 초계함인 1,200톤급 천안함의 선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됐고, 40명은 사망, 6명은 실종됐다. 사고 원인에 대해 어뢰설, 기뢰설, 내부 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은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14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퇴역한 함장이 당시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는 언론보도가 나갔어도 여전히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한 군인과 실종된 46명의 유족들 또한 망연자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망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보상과 대우를 받는 전사자들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서 1999년 6월 15일 오전 9시경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해군의 도발로 벌어진 제1연평해전은 대한민국 해군은 7명이 부상을 당했고 고속정이 경미한 피해를 입은 반면 북한 해군은 어뢰정 1척과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다른 경비정 3척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했다.

불과 3년 뒤 같은 해역에서 유사한 전쟁이 발생했다. 비록 전면전은 아니지만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다시 NLL을 침범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은 갑자기 아무런 신호도 없이 참수리 357호에 85㎜ 포를 비롯한 모든 화기를 동원해 선제 기습포격을 감행했다.

양측은 치열한 교전 끝에 북한 경비정은 전사 13명, 부상 25명, 남한 해군도 윤영하 대위를 포함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참수리 357 고속정은 침몰했다. 대략 양측을 합쳐 6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어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해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부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부상자 3명, 도합 사망자 4명과 부상자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같은 세가지 사건으로 총 82명이 사상을 입었다. ‘서해 수호의 날’은 어느 기념일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날로 정해진 것이다. 이에 대한 경각심과 안보의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알고 기억해야 하는 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