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그 사람이 그 사람
역시 그 사람이 그 사람
  • 박호양 논설위원 kmaeil@
  • 승인 2007.06.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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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큰 목소리를 내면서 떠들썩거리고 있는 말들이 많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문 앞에 걸어 놓은 문패(門牌)를 뒤로하고 정 담아온 그 집이 실증나서 등을 돌리고 떠났다. 그 집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래저래 있어봤자 장래도 없고 희망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자기가 목표하고 있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그 집에서 몸담고 있을 때 여러가지 장벽에 부닥쳐 미래에 대한 구상이나  앞날의 미래상(未來像)을 밝히지를 못하고 갈팡질팡해 나왔다. 하루가 편안하고 조용할 날 없이 불편을 늘어놓으면서 옥신각신 지그락 지그락 해 온 집이었다.  부처가 보기 싫은  중(僧)이 절(寺)을 떠나 버린 것과 같다.
절을 떠난 중과 다른점이 있다면 절을 떠난 중은 조용하면서 수양과 도(道)를 닦는 암자(庵子)로 갔는지 속세에 묻혔는지 행방도 묘연(杳然)한데 있다. 이와는 반대로 듣기 싫을 만큼 시끄럽다.
집이 바뀌고 문패의 이름을 새로 내걸고 있으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보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보다 훨씬 나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미 때묻고 구겨져 있다는 평가로 낙인(烙印)이 찍힌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몸담고 살아 온 집안을 온통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또 남의 집에 들어가서 흙탕물을 일으켜  보려고 문전구걸을 하고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만약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받을 때 갈 곳 없는 그 사람은 새로운 집터를 장만하여 새 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낡아서 짜임새가 없거나 볼품이 없는 허술한 집이든  새 집이든 간에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그 사람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붉은색이든 파랑색이든 색깔에 한번 물 들으면 그 색깔이 오래가면 빛이 바레거나 퇴색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같은 색깔의 변화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한번 굳어져있는 색은 변화되지 않는데 있다. 색의 사상에 물들어 세뇌(洗腦)되어 버린 색깔은 개조되거나 변질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기인(基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한 색깔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옷을 잘 갈아입는 습성도 가지고 있다. 오늘은 파랑색의 옷차림을 하고 내일은 흰색의 옷으로 갈아입는 버릇이 있다, 본 색깔은 붉은 색임에도 위장하고있는 것이다. 위장술에  능숙한 이 사람은 구변(口辯)도 능숙하다.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흐리게 만들고 현혹시키는 화술(話術)도 대단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철학이다. “충성은 충성을 낳고 반역은 반역을 낳는다”는 철학이다. 사실 부정할 수 없는 철학이다. 충성사상에 세뇌되고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 있거나 어느 곳에 있든간에 오로지 충성밖에 모른다.
그리고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하고 있다. 진심과 신뢰을 목숨보다 소중히 하고 있다.
 충성자는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도 다툼은 없고 의로울 뿐이다. 그 때문에 충효는 필적(匹敵)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동료간에도 우의(友誼)가 돈독하다. 순리를 긍정하고 불의를 거역하면서 항상 온화하면서 모든 사물을 합리적으로 분별하려는 태도를 갖기도 한다.
불합리한 조건을 없에고 능률적인 것으로 되게 하는데 힘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합리적자애(合理的自愛)정신이 투철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반역에 세뇌되고 있는 사람들은 합리적사리(合理的事理)마져 부정하면서 매사에 배타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긍정을 부정하고 반대을 위한 반대를 더하면서 결사적으로 결단을 내보자는 데 혈안이 되어 반대에 몰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반항심도 매우 강하다.
 부모형제간의 충과 의리에도 냉혈(冷血)하고 있다. 덤비고 싸우기를 좋아하고 한치의 양보도 없다.
상급자에게 반항하고 항의하면서 다투는데만 일관하고 있으면서 보기에도 사납게 눈알을 부릅뜨고 덤비기를 잘 한다. 이 같은 소질에 능숙하고 있는 사람은 남을 넌지시 해하려는 음해계략(陰害計略)에 능달하고도 있다.  따라서 은밀히 모사(謀事)를 꾸미면서 행동하고 대중의 감정을 부추기면서 행동대열에 참여하도록 선동(煽動)하고 책동(策動)하는 재주도 비상하다.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 “정직하고 깨끗한 인간의 심성” “가식 없고 거짓말 없는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풍조”가 조성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다수인의 소망을 어찌하여 귀담아 듣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지 안타까워하면서 여음(餘音)을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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