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삶의 실현
참다운 삶의 실현
  • 박호양 논설위원 kmaeil@
  • 승인 2007.06.18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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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쉬지 않고 한치의 착오 없이  흘러만 가고 있다.
시간을 진행시키는 초침(秒針)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정지하지를 않는다.  초침은 절대불변의 철칙(鐵則)이다. 변경되거나 어길 수 없는 규칙이다.  만세불변(萬世不變)의 진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과 호흡을 나누면서 세월여류를 노래하고 긴 한숨을 짓기도 하며  세강말속(世降末俗)을 개탄하면서 비운에 잠들기도 한다. 또한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살아왔거나 살아가는 동안 즐거움을 노래하면서 때로는 재난을 당하기도 한다. 원통하고 분하여 긴 한숨을 쉬며 한탄(恨歎)하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 할 것 없이 성년이 되면 결혼을 하여 사랑스러운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하여 다양한 이념과 철학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이러한 내적 성향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목적. 그리고 국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는데 의미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참다운 삶의 가치를 구현하지를 못하고 가서는 아니 될 길을 가다가 허망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행복한 가정의 보금자리마저 일시에 패가망조 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을 겪는 가운데서도 전통적인 도덕관과 사회관을 배척하고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젊은 세대들의 위험한 발상이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수위를 넘고 있다는 데 염려스러운 신호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찬반양론의 격랑(激浪)가운데 FTA타결 소식을 듣고 이에 격분한 한 농부가 공기총으로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나, 분신자살에 이어 촛불시위등의 행렬이 연일 계속되어 온 국내의 어제와 오늘의 상황을 보고 과연 이 같은 행태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수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수세기를 겪어 나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부귀(富貴)하면서 고등교육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자원을 멋지고 지헤롭게 활용하고 탈 없는 가운데 행복을 추구하고 평화복지를 지향하는데 힘을 기울여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결과를 판단하기에 어려운 예측을 했거나 못했거나간에 장애요인이되는 여론의 장벽에 부닥쳐 자기가 구상했던 원대한 이상이 실현되지를 못하고 비운을 맞이하는 사례도 적지 안 했다.
성(盛)하면 쇠(衰)하고 하는 인생의 기복이나 세상의 변천(變遷)을 뜻하는 부침의 역사가 이 같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억지가 없고 무리가 없는 곳에는 순리와 이치가 따르고 있는 법이다.
도도히 흐르는 대하(大河)의 물결은 사회적 대중의 공통된 의견을 뜻하고 있는 여론의 흐름과 다름없다. 그럼으로 대중심리와 의사가 일치되는 합의체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 같은 곳에 여론의 거센 물결은 지지와 공명이 동반되기도 한다. 시대조류를 역행하고 그 시대환경에 적응하여 함에도 시대가 요청하는 모든 조건을 거역하고 부정한다. 그리하여 반항하고 제 멋대로 독불장군(獨不將軍)하면서 세상의 이목이나 여론은 아랑곳 하지를 않고 천방지축(天方地軸)하고 있다.
여기에 한 예을 들어 보기로 한다,  서구세계에서 발생한 1960년대 히피운동이다. 이 히피운동은 미국의 삭막한 물질문명에 반발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운동에 참가한 자들을 보고 히피족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주로 청년층이 주역을 이루면서 2차대전 종말 후 미국이 장기적인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 현대의 기계문명에 저항을 나타내는 형태로 철학적인 무관심과 동양적 선(禪)을 추구하는등 월남전에 적극적으로 항의했고 반전데모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더벅머리에 험상스럽게 수염을 기르고 기묘한 복장차림과 맨발로 거리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산층 문화의 속물적 성격에 대한 반발과 혐오 속에 태어난 이 같은 허위문화는 1970년대후 다소 사그라지기도 했다.
 이들은 불행속에서 불행을 낳으면서 향정신성 약물을 통하여 행복과 삶의 질을 찾으려고도 했다. 이 같은 운동의 결과는 마약중독자들과 난잡한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만이 산출(産出)하는데 한몫을 하였고 사회적 타락을 부추기면서 도덕적 혼란을 가속화하는 불행한 결과만을 낳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반대를 위한 반대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고 초분(秒分)의 흐름을 잘 조절하면서 근시안적 안목을 탈피하고 거시적 안목(巨視的眼目)으로부터 장래에 취득 가망이 확실한 희망이익(希望利益)을 찿는데 신중해야 한다.  또한 바르게 판별하면서 매사에 일을 잘 처리 해 나가는 능력과 슬기가 있으며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조절할 수있는 지혜가 있다는  긍지력을 갖는 생활인이 되어 보자고 호소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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