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세를 기원하는 단오절
태평성세를 기원하는 단오절
  • 박호양 논설위원 kmaeil@
  • 승인 2007.06.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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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5월5일은 민족재래 명절인 단오절이다.
명절의 하나인 단오절을 수릿날. 중오절, 천중절이라고도 했다. 단오절은 신라때 부터 명절로 삼아왔다.
고려 때에는 북방 민족의 영향을 받아서 전통 민속놀이, 풍악, 공연, 연등, 격구, 석전, 무술놀이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면서 이 날 하루를 즐겨 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영향은 이조 중기까지 계속 이어오면서 단오절의 의미를 부각시켜 오기도 했다.
 또한 이조 때에는 원일(元日), 동지와 함께 이 날을 3절 일로 삼아 경향 각지에서는 단오 차례를 드리고 궁중에서는 단오 부채라고 이름한 공조(工曹)에서 만든 부채를 나누어 가졌으며 대신들은 단오첩(帖)을 만들어서 궁중에 거는 풍습이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날에는 이 같은 관습적 풍속은 찿아 볼 수가 없다. 또 여자들은 단오절을 맞이하는 날에는 의례히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난 뒤에 창포 비녀를 꼽았고 남자들은 각 지방마다 씨름판을 벌리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각 가정에서는 관상감에서 찍은 부적을 문에 붙여 놓기도 했다.
이 같은 부적은 단오날을 맞이하여 잡귀를 몰아내고 불길한 것을 제거하기 위한 주사(朱砂)로 벽사문을 써서 문설주에 붙이던 부적인데 일명 천중 부적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관습은 민간에 크게 유행했으며 현재도 부적 관념이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어 오면서 각지방에 성행하고 있는 곳도 있다. 단오절이 유래된 뚜렸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백년 전에 성행했던 당시의 전통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단오절을 맞는 오늘 날 씨름대회 그네뛰기 여려가지 풍속놀이 잔치를 벌리면서 단오의 의미를 상기하는 하루의 즐거움을 갖는 곳에서 전통문화 사상이 드높게 고취되면서 회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오 부채는 이조때 성행하였다. 공조에서 만든 부채는 왕에게 진상한다. 진상 받은 왕은 모든 신하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받는 신하들은 부채에다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영남과 호남의 방백(方伯)과 절도사들은 자기 지방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왕에게 진상하기도 했으며 조관 친지에게도 선사하기도 했다. 선사했던 부채중에는 전주. 남평. 나주에서 만든 것이 유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오첩은 이조때 단옷날 신하들이 궁중에 올리는 첩자다. 말기까지의 풍속으로 내각. 옥당. 한원의 여러 신하들이 첩자를 지어 대궐 각전(各殿)의 기둥에 붙여 놓는 관례가 성행했으나 지금은 이 같은 관습은 사라져 버렸다.
 당시의 임금을 비롯한 조정백관을 비롯하여 육방관속에 이르기까지 주지육림으로 방탕과 낭만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 폭정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왕조대신들 가운데는 정사를 바르게 치도(治道)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온 군신도 적지 안 했다.
파사현정하고 위민선정하면서 태평성세를 구가(謳歌)하기도 했다.
당시의 정가에는 단오절 같은 명절을 맞이 할 때마다 백성들과 더불어 이 날의 의미를 같이 감명하면서 행운을 방해하는 잡귀를 몰아내고 불행이 없는 장래를 소망하고 기도하면서 모두가 축복 받기를 기원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는 그 날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명절은 일년을 시작하면서 한해의 행운을 비는 음력 정월1일, 조상의 성묘를 추도하는 한식과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오곡이 무럭무럭 익어 가는 결실의 계절인 추석일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큰 명절은 아니지만 단오절도 명절로 손꼽고 있는 이상 오늘 단오절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화합하고 협력하지는 못할망정 서로 헐뜯고 물고늘어지는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오늘을 살고있는 모든 국민들은 조용하면서 너도나도 축복을 받아가며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어하는 소망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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