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해도 되는 거짓말 해 봅시다
[덕암 칼럼] 해도 되는 거짓말 해 봅시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4.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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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은 4월의 첫날이자 ‘만우절’이다. 요즘이야 거의 사라진 일이지만 해마다 이날 곤욕을 치르는 게 소방서였다. 불났다고 허위신고를 해서 힘든 소방관들을 골탕 먹이는 허위신고가 이제는 과태료가 부과되니 근절된 셈이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거짓말과 해도 되는 거짓말이 있다. 언제부턴가 서로를 경계하며 과열된 경쟁사회 구조가 남을 눌러야 내가 살 수 있는 각박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장점을 깎아 내리고 자신의 단점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삭막한 인간관계가 자리를 잡게 되고 어렵게 성공한 사람도 인정받기 보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공무원 퇴직금은 ‘눈먼 돈’이며 먼저 가진 자가 임자라는 말이 있다.

울타리 안에 평생을 살며 사회 물정을 모르다 보니 날고 기는 사기꾼들의 농간에 남은 밑천을 날리게 되는데 귀가 얇아서가 아니라 그 출발점에 당사자의 욕심이 깔려 있기 때문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짜는 없고 싸고 좋은 것은 없을진대 나름 잘났다고 자부하던 공직사회의 상명하복이 사회에서 먹힐 리가 없다. 대놓고 충고하자면 퇴직하고 시골에 조그만 땅이라도 사서 귀농한다면 모를까 어설프게 사업한답시고 벌렸다가는 낭패를 당하고 만다.

좋은 물건 사라 하면 그 좋은 물건 지가 갖고 있지 왜 팔며 기가 막힌 기회라면 지가 챙기지 왜 권하겠는가. 어쨌거나 만우절을 맞이하여 거짓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충고를 남긴다. 그런데 한번 눈이 뒤집히면 뭐가 씌인 탓인지 아무리 말해도 안 먹힌다.

이쯤하고 진짜 거짓말쟁이를 논해 보자. 선거전에 온갖 공약을 마구 남발하고 당선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싹 닦는다. 뿐인가 임기가 다가오면 다시 비굴한 미소에 시장판까지 돌아 다니며 손을 내민다.

더 웃긴 건 그러면서 다시 찍어주는 호구들이 참으로 지천에 널렸다. 한번이라도 빈 약속 즉 공약을 지키지 못해 낙선의 고비를 마신다면 안 그럴텐데 순진하고 착한 유권자들은 수 십년을 속아도 바뀌지 않는다. 도둑질도 훔친 자나 문 단속 안 한 자나 공범이고 거짓말도 하는 자나 속는 자나 공범이다.

누가 누굴 탓할까. 여기까지는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이다. 사랑한다는 그 말도 거짓말 좋아한다는 그 말도 거짓말 세상의 거짓말 다해 놓고, 문득 가수 조항조의 거짓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해도 되는 거짓말은 뭘까.

힘든 사람에게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늙은 어머니에게 아직도 고우시단 말은 자주해도 되는 거짓말이다. 요즘처럼 봄꽃이 만개하면 연인과 함께 널 위해 준비했다는 뻔한 거짓말도 듣기 좋은 말이다.

흔히 듣는 말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하지 않았던가.

돌아보면 요즘처럼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어렵게 차린 가게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망했는데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말보다 밥이라도 사며 공감대를 표현한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설령 힘들지 않더라도 나도 힘들다며 같이 이겨내 보자고 거짓말을 한다면 혼자 번민하는 입장에서 다소 위로가 되지 않을까.

배부를 때 진수성찬 보다 허기질 때 찬밥이 낫다. 지금이야 호랑이 담배 피던 전설이지만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거나 손해 보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은 허가 난 거짓말이다.

일명 내숭떤다는 말로 치부되던 거짓말은 이제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됐다. 힘든 세상인 것 확실하다. 주변을 돌아보라. 건강 문제나 돈 때문에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나라도 못 구할 가난과 자신만이 감내 해야 할 병마와의 사투에서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며칠 전 경기도 안성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사는 게 허탈하다며 경제적으로 힘든 현실을 털어 놓았고 달리 해줄 말이 없어 그 친구의 장점을 몇 가지 나열하면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좋은 일거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같이 희망을 갖자고 격려한 적이 있었다.

설령 이행되지 않더라도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지라 다시 활기를 찾는 말투에 필자까지 흐뭇한 적이 있었다. 덧붙이자면 아직은 한창 일한 나이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이 있으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며 용기를 준적이 있었다.

함께 사는 사회란 남을 눌러 내가 서는 게 아니라 남을 세워 같이 공생할 줄 아는 덕담과 배려가 넉넉해 질 때 가능해 지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가. 모든 게 자신이 이룬 것 같지만 곰곰이 되뇌어 보면 크고 작은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나무가 절로 자란 것 같지만 비바람이 적셔주고 흔들어 주었기에 키도 자라고 뿌리도 깊이 내려지는 것과 같다.

돌이켜 보건대 필자가 부모님과 5남매 장남으로 어렵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 탄광촌이라 돈이 남아 돈다지만 대부분의 광부들로 구성된 탄전지대에 고등어 한 손은 귀한 반찬이었는데 조금씩만 나눠 먹어도 모자란 밥상이었다.

지금은 80을 앞둔 어머니는 비린내 나서 드시기 싫다 하셨고 그 말씀은 나이가 들면서 거짓말임을 알았다.

한 점 이라도 자식 입에 들어가는걸 보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작금의 시대에는 물질적 풍요 때문인지 찾아보기 어렵다.

살면서 위로가 될 만한 선의의 거짓말 조차 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가 되어 가지만 오늘 만큼이라도 약간 과장된 칭찬을 해 주면 다소 훈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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