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난민과 망명 남의 일일까
[덕암칼럼] 난민과 망명 남의 일일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6.20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난민은 전쟁과 폭력이 두려워 다른 나라로 피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고 망명은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난민은 개인이고 망명은 난민이 일단 거주할 수 있는 곳이나 기관인데 여기서 난민은 집단에게 주어진 법적 지위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난민은 얼마나 되며 대한민국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돌아보자. 일단 2020년 기준 통계만 보더라도 약 8,500만 명이 나름 이유 있는 상황에서 살던 곳을 강제로 떠난 사람들로 집계된다.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탈출 행렬이 1위를 차지하고 뒤이어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 삶의 벼랑끝에 선 베네수엘라, 다음 아프카니스탄이 뒤를 이었고 남수단과 미얀마도 포함되어 총 5개국이 난민주요 국가로 손꼽혔다.

난민은 발생국가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에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이웃나라로 망명을 떠나는 집단이 늘고 있다.

살기 위한 최악의 탈출행렬,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자고 배설문제까지 난민에게 닥친 현실은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라는 말을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터키로 망명한 약 400만명의 시리아인들이 벌인 감정싸움은 가히 남의 일이 아니다.

물가 고공행진에 터키인들도 먹기 어려운 바나나를 피난민 입장에 처해진 시리아인들이 비웃는 표정으로 먹는 동영상이 유포됐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시리아인들이 겪어야 하는 환경과 어쩔 수 없이 받아 주었지만 결코 반갑지 않았던 터키인들이 바나나 동영상으로 정면충돌 현상을 빚었다. 어쩌다 보니 시리아 학생이 터키학생과 폭력사태가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대결양상이 확산됐다.

줄여서 표현하자면 살려고 도망친 사람들 구해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는 모양새다. 어쨌거나 터키 국민들은 열이 상한가를 치솟았고 정부도 400만 명의 난민 중 100만 명을 자국으로 돌려보낸다고 발표했다.

돌아가면 보나마나 사지로 몰릴 것인데 누가 간다고 나서겠는가. 결국 목숨 걸고 버틸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와 안 간다고 버티는 입장에 더욱 큰 대립으로 이어질 판이다.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황부터 짚어보자. 지도를 보면 현재까지 난민들의 피난행렬은 대부분 어딘가 갈 곳이 있었다. 대부분 국경선을 넘어 집단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상황이 허락지 않으면 바다로 뛰어든다.

국제사회는 그들을 보고 보트피플이라 하는데 1975년 한국은 베트남을 떠나 한국 부산에 도착한 보트피플 3,000명을 품은 전례부터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들 560명을 받아들인 적이 있으며 작년 8월에도 코로나19가 극성인 가운데 아프카니스탄 주민 380명의 망명을 수락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전쟁이나 기타 내전이 발생해서 탈출한다면 어디로 갈까. 독자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인지.

간다면 누구와 동행하며 어떤 이동수단을 택할 것인가. 물론 그럴리가 없겠지만 기존의 난민들도 자신들이 난민이 될지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진작 이민이나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설마 했던 것이고 전쟁이나 내전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 대한민국도 예외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문제는 지리적 특성상 갈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간혹 미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모습을 나타내고 북한의 미사일이 하와이를 넘어 발사되어도 한국사회는 사재기나 불안한 표정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정작 하와이에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으니 배짱이 좋은 건지 어차피 갈 곳이 없으니 이판사판 될 대로 되란 것인지 알 수 없다.

하기야 걸핏하면 선거때마다 북한의 엄포 비행이나 포격이 유행했었으니 만성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일명 나봐야 나는 거지, 또는 나더라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의 불감증 현상이 대단한 수준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난민집단의 생활을 보면 열악함이란 단어를 쓰기조차 어렵다.

특히 여성과 아이, 노인과 같이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경우 더욱 참혹한 곤란을 겪게 된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젊은 여성들의 미모가 국제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뉴스가 속속 떠오른다. 성매매로 연결되는 어둠의 터널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숙소 제공이나 기타 특혜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검은 마수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손꼽히고 있다.

뿐일까. 살려고 나선 험한 길은 무사히 제3국에 도착할 때까지 생명의 위협은 물론 모든 면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국경선을 넘는 과정에서 무슨 친절이 있으며 인권이 있을까. 마치 한국의 교통편에서 제공하는 것처럼 최고의 서비스가 아니라 짐짝 취급당하는 걸 각오해야 한다.

비단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현실을 살펴보면 허기를 못 이겨 북한을 탈출하는 이른바 새터민 숫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문화라고도 칭하는데 문화가 같은 민족을 다문화라 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살던 곳을 탈출한 새터민들은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다.

당연히 국가에서 동등한 대우를 해주어야 하며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맞는 것이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자유로운 환경이 철저한 생존경쟁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며 이른바 사육되는 사회구조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남의 나라도 품는 대한민국이 같은 민족을 홀대 한다면 이는 제 식구도 못 챙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녘 땅에서 험한 경로를 통해 자유를 찾아 가족을 두고 대한민국의 품에 날아온 자유의 상징, 비둘기들이다. 망명의 날을 맞이하여 새터민들의 두번째 생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