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인류사회는 통계로부터 시작된다
[덕암 칼럼] 인류사회는 통계로부터 시작된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9.01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덕암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덕암 김균식

지난 1995년 9월 1일 통계청에 의해 지정된 ‘통계의 날’은 통계청의 생일이나 마찬가지다.

2009년 법정기념일로 격상되면서 일반 국민들이야 기억조차 못하고 남의 일인냥 지나가겠지만 밥 먹고 하는 일이 숫자 취합인 통계청에서는 이날 하루만큼이라도 수고했다는 소릴 들을 만 하다.

이와는 별개로 국제연합 즉, 유엔(UN)에서는 10월 20일을 전세계 기념일로 묶어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날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일부 동참하고 있다.

통계에 대한 이론은 많다. 통계의 거짓말이라는 책자에서 언급하듯 정치인, 정부부처, 은행, 보험 등 통계를 활용하여 해당 분야의 미화 내지는 사회적 공공성을 인정받으려는 경우도 있고 통계의 미학을 보면 다양한 통계를 데이터화시켜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역량으로 사용한다는 내용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어느 부분에서도 통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다못해 평균 취침시간부터 식단에 대한 내역, 출근 시간, 이동수단, 비용, 근무시간과 사업자의 경우 매출·매입·수익과 고객 분석 등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온통 데이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지역주민들의 독서량이 도서관 건립 조건의 하나일 수 있고 햇볕이 드는 일조량에 따라 주거환경의 수치가 달리질 수도 있으니 통계란 어찌 보면 수단이면서도 모든 걸 평정하는 잣대일 수 있다.

통계의 정확성은 그 사회발전의 중요한 데이터로서 예산의 편성과 효율적인 지출의 기준이 되고 있기에 데이터 취합과정에 어느 정도 투자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기에 이쯤하고 최근 정치권이 남용하는 통계의 일부를 거론해 보자. 먼저 특정 정당의 지지도, 국정만족도, 대권후보에 대한 선택의 여부, 이를 받침하기 위해 답변하는 당사자의 나이·성별·거주지 등을 전제하며 최종 데이터가 발생한다.

이젠 통계를 전문으로 취합, 발표하는 민간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 같은 난립은 데이터 취합과정에 상당한 오류를 낳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질문을 유도하기도 하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답변기회를 박탈하기도 한다.

물론 법적인 대응방법이나 범죄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지만 결국 통계에 대한 신뢰추락과 반복된 불신이 가져오는 회복 불능의 사태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될 수 없다.

그만큼 통계가 가져오는 중요성이 사회발전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직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교통량에 따라 교량·터널이 생기고 입출항의 빈도에 따라 신항만이 추진된다.

하지만 이런 숫자에 개념도 없이 특정 개인의 출세를 위해 엉뚱한 통계로 불필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혈세를 낭비한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작게는 수 조원에서 수십 조원까지 통행도 없는 대형사업을 벌이고도 아무런 책임이나 사과 한마디 없는 정치권의 안일함이 문제다.

그 중에서도 저출산이나 일자리 창출 2가지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통계를 전제로 비현실적 정책을 적용하여 소중한 혈세가 줄줄 새는 현상이 지천이다.

가령 학생 한 명을 가르치기 위해 담당 교사부터 적어도 5명 이상이 달라붙어 밥줄을 해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공무원들 업무적 편의나 복지에는 점점 그 폭이 증가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불편함은 별반 취급되지 않는다. 5천만 국민의 일상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행정이 전산화된 이유도 있지만 데이터의 집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쯤 되면 통계가 경제와 복지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국제적으로도 통계는 매우 중요하다.

난민들의 기아와 가뭄, 기상이변에 따른 해수면 상승, 산불로 인한 손실여부, 특히 국가별 군사력 비교는 모두 통계에 의존한다.

물론 숫자만 부풀리고 내용은 허접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달리 비교 방법이 없으니 결과 치에 따라 대안도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에 발생하는 것이 통계의 오류다. 잘못 파악된 데이터가 현실에 적용될 경우 파장은 매우크다.

오래 전이나 멀리갈 것도 없이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진자 발표를 보자. 감염자 숫자는 나오고 검사자 숫자는 빠졌다.

사망자 숫자는 나와서 연령대나 사망원인이 코로나냐, 기존 질환자냐는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 백신예방주사 처방 이후 주사를 맞은 숫자 가운데 감염된 인원수는 발표되지 않았다.

백신 예방주사를 맞은 국민 가운데 부작용으로 질병을 앓거나 사망한 숫자 또한 명확히 발표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사망자 연령이나 숫자, 발병 원인에 대해서도 한국처럼 빠르고 대단한 의료기관의 시스템을 가동한다면 당일 취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거리두기의 효율성에 대한 통계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어서는 안된다. 압축하자면 앞뒤 안 맞는 발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칫 떠들었다가는 가짜뉴스 내지 국민건강의 적으로 몰려 마녀사냥감이 되기 십상이다. 자고로 통계란 형평성과 취합과정에 투명성과 다양한 데이터를 산출하기 위한 집계 방법이 공정해야 한다. 오래 전 초등학교에서 집집마다 소유한 가전제품까지 조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사생활 침해지만 작금의 시대에 얼마든지 스마트폰 만으로 정확한 통계를 뽑을 수 있음에도 허위나 과장, 축소된 통계들이 판을 친다면 이는 통계를 이용하여 통계를 희롱하고 가치를 하락시키는 행위가 아닐까.

가치는 훼손되기 쉽지만 복구하기에는 열배 이상의 노력이 든다는 통계가 있다면 몇 %나 믿을까.

적어도 이번 대선만큼은 통계 장난치지 말고 국익에 도움되는 데이터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공정하고 정확한 통계는 어두운곳을 밝게하지만 조작된 통계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김균식
김균식 다른기사 보기
kyunsik@daum.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