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92주년 학생의 날,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덕암 칼럼] 92주년 학생의 날,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1.03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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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인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은 1930년 3월까지 전국으로 확산되어 약 5만4천명이 참가한 대대적인 항일운동이었다.

젊은이들의 분노와 망국의 한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폭력 항거였다.

기성세대나 일반 국민들이 무력한 상태에서 학생들의 강한 호국의지는 일본군의 서슬퍼런 군홧발에도 망설임 없이 국민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사건은 3일전인 1929년 10월 30일 일왕 메이지 생일인 명치절에 참석했던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충돌에서 시작됐다.

320개 학교 5만4천명의 학생들, 이 사건으로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 강제전학 298명, 검거 1600명, 실형 170명, 대대적인 탄압이 벌어졌고 결국 많은 희생을 치른 뒤에야 사태는 마무리 됐다.

이후 항일 학생운동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1953년 10월 20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기념일로 제정되었으나 살벌한 군사정권인 1970년대 유신체제가 시작되자 반정부운동이 확산되면서 학생운동도 거세지자 1973년 다시 폐지했다.

민주화 열풍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들어서 다시 학생의 날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져 1985년 정부행사로 다시 인정됐다.

1987년 6월 10일 항쟁에서도 학생들의 활약은 전체 군중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 대학교 교내에는 연신 희뿌연 최루탄이 그칠 날 없었고 언론의 1면 톱 뉴스는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사진으로 장식됐다.

그 당시 눈물·콧물이 범벅되어 부르던 민중가요는 지금도 집회시위 현장에서 주요 제창 곡으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 산업재해, 기타 정부 대상 집회 현장에는 어김없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집회장소의 분위기를 엄숙하고 장엄하게 조성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동지가, 파업가,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제목들의 민중가요가 4/4박자의 리듬을 타고 심장박동을 강하게 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가 어렵고 절대 다수의 국민이 침묵할 때, 두려움 없이 군사독재를 거부하고 혁명을 시도하며 구국의 결단을 내렸던 계층이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1929년에도 50년 뒤인 1980년에도 그랬고 40년 뒤인 2021년 그래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힘든 학생들에게 집회 시위를 하라고 충돌질 하자는 게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 할 수 있는 용기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라는 뜻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가 가져온 안일한 현실 속에 나만 편하고 살만하면 괜찮다는 사고가 전체를 멍들게 하고 결국에는 돌고 돌아 결국 사회의 타락을 가져오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비진취적인 사고가 침묵은 묵시적 인정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며 주인의식을 잃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작금의 국난을 보면 정권이 정치가 되고 정치가 정부가 되어 특권층의 나라로 변하고 있는 변형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제 청년 어쩌고 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정책의 사탕을 뱉고 기존의 정치권이 정부와 한통속이 되는 3권 분립의 원칙을 찾도록 학생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의 쓴 약이라 하더라도 청년일자리, 청년 주거, 청년수당 등 말만 번지르르하고 선거 때만 청년을 찾는 정치인들에게 표로 심판할 줄 아는 최소한의 의사표현을 해야한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청년들이 겉도는 정책에 희생된 것은 바보라서가 아니라 나아지겠지 라는 기대와 나아질거야 하는 희망으로 기다렸기 때문이며 일명 꼰대와 아재들의 경륜과 연륜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참담했다. 헬조선의 이야기가 남의 일로만 치부하던 학생들이 공교육의 희생양이 되며, 연간 70조원의 공교육비 배나 넘는 사교육비로 탕진을 해도 학생들을 볼모로 몇 배나 더 많은 철밥통들의 먹고사는 명분이 되었을 뿐 여전히 OECD 국가 대열의 각종 비교수준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배우며 결혼을 하는 과정까지의 시간은 불과 30년 남짓인데 그 가운데 한창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장점을 찾을 수 있는 시기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재학시절인 16년간이다.

그 귀중한 시간에 배움을 뒤로하고 불의에 앞장선 학생들은 자신의 이익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의감과 옳다고 확신한 자신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소심하고 이기적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행동하는 양심이나 깨어 있는 정주의식은 주권자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2021년 올해도 전국적으로 풍성한 ‘학생의 날’ 행사들이 열린다. 코로나19의 일상화가 공식적으로 시행되면서 서울·경기 등 지방까지 전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행사에 많은 학생들에게 참여와 각종 시상이 주어진다.

시대가 변하면서 저항의 명분과 집회의 방법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침묵하면 절대 다수의 군중은 더 수긍하게 된다.

한국도 그랬지만 최근 발생한 미얀마 군부에 대해서도 용기 있는 항변자는 학생들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탈레반 장악에서도 의복이나 여권신장에 대해 용기 있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 것도 학생들이었다.

공부라는 틀 속에 반 강제로 집어넣고 딴 생각 안 하게 한다고 안 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불과 얼마 후면 현재의 정권을 이어받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될텐데 두렵지 않은가 싶다.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문화강국으로 키워나갈 주역들에게 현재의 기성세대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미안할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패거리 정치문화를 청산하고 대통령다운 지도자 한 명만을 선택한다면 굶주린 권력욕을 채워주는 헬조선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심에 학생들의 올바른 판단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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