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핑크 뮬리, 분홍으로 칠한 생태 적신호
[환경칼럼] 핑크 뮬리, 분홍으로 칠한 생태 적신호
  • 성해인 객원기자 kmaeil86@naver.com
  • 승인 2022.11.03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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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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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성해인 객원기자]가을이 되면 SNS 피드를 분홍으로 물들이는 식물이 있다. 바로 털쥐꼬리새이다. 우리에게는 핑크뮬리(Pink Muhly)로 더 친숙한 이 식물은 마치 분홍 캔버스와 같은 배경을 연출한다. 본래 핑크뮬리는 미국 중서부의 평야에서 자생하는 벼과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다 지구 반대편 외래종이 우리나라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된 것일까. 답은 어렵지 않다.  

핑크뮬리는 “insta-worthy”하다. 다시 말해, 인증사진을 찍고 SNS에 드러낼 만한 가치가 있는 관광명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요는 공급을 일으키고 결국 전국 곳곳이 핑크뮬리 군락지로 자리잡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 분홍색 벼의 식재는 마냥 생태계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이를 인지한 환경부는 2019년 12월 핑크뮬리를 생태계 위해성 2급 식물로 규정했다. 

생태계 위해성 평가에서 2급은 “생태계 위해성이 보통이나 향후 생태계 위해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확산 정도와 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는 생물”을 일컫는다. 당장의 해(害)는 없을지언정, 잠재적인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핑크뮬리는 번식력이 강해 토착종의 생육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최근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은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 핑크뮬리 식재규모를 넓혔다. 공단은 약 420m² 규모의 핑크뮬리 군락을 조성하였고, 이는 농구코트 5개 규모와 맞먹는다. 이미 핑크뮬리 식재 자제 권고가 있었음에도 군락지 조성을 강행한 것이다. 
 
한 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하는 데 막대한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요구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서식지와 떠나간 동물들을 복원하고, 오염된 생태계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화제성과 생태계를 맞바꾼다는 것은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식물 식재는 비단 핑크뮬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조경용으로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을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식재하곤 한다. 가령 하천 산책로에 알록달록한 들꽃이 피어있다면, 이것이 정말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보여지는 것이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실상은 그곳에 있어야 할 동식물들의 자리를 빼앗은 것뿐이다. 

자연에서, 모든 동식물의 존재에는 그만한 이유와 역할이 있다. 하천에서 살아가는 갈대 군락은 주변 동물들의 은신처가 되어주고, 하천의 정화기능에 도움을 준다. 또한, 질기고 억센 성질을 지님으로써 우기에도 하천의 물살을 견딜 수 있다. 이러한 순기능을 무시하고 부적절한 식물을 식재한다면, 그 공간은 낭비된 공간이 될 것이다. 더욱이, 우기나 기온의 변화를 버티지 못하는 종이라면 복구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천이든 초원이든 그에 알맞은 식물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핑크뮬리는 생태계 위해성 평가 2급으로 지정되었지만, 생태계 교란종으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다른 경각심 없이 핑크뮬리 군락을 가꾸고, 각종 홍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면 조금은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드넓은 토지에 식물을 식재하고자 한다면, 주변 생태계와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는 식물종은 무엇인지, 식물을 식재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향후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책임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생태계 위해성 2급 식물로 분류된 이후에도 여전히 핑크뮬리의 인기와 수요는 증가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수요가 크면 자연스럽게 공급을 하고자 할 것이다. 반대로 수요가 없다면 공급은 줄고, 관광객이 없는 관광지는 금방 대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너무나 명백하다. 

 아직까지도 SNS에 핑크뮬리를 검색하면, ‘인생샷’, ‘명소’ 등의 태그들이 쏟아진다. TPO, 패션업계에서 쓰이는 단어로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을 의미한다. 이제는 SNS에 업로드할 본인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사진 속 생태계의 TPO가 적절한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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