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말은 인격이자 국격이다
[덕암칼럼] 말은 인격이자 국격이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9.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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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나도는 말 중에 시장판에서도 듣기 민망한 단어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시장판을 격하시키자는 게 아니라 일반 민중들이 격의 없이 편하게 통용되는 단어를 뜻한다.

명색이 정부의 분야별로 임명된 국무위원이나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면 사회적 위치에 맞는 격을 갖추어야 한다.

가령 태영호 국회의원이 발언 도중 의원석에서 던져진 “북한에서 쓰레기가 다 왔어” 발언을 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순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단식장을 예고 없이 찾아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선거 공작은 자유민주주의 근본을 허물어 버리는 국기문란으로 가장 사악하고 사형에 처해야 할 반국가범죄”라면서 “치밀하게 계획된 1급 살인죄는 과실치사죄와는 천양지차로 구분되는 악질 범죄로써 극형에 처하는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미 국민들이 다 알고 있듯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답변은 ‘깐죽댄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이 수십 차례나 반복됐고 인사청문회와 대정부 질문에서는 고성, 삿대질, 심지어 반말까지 시도때도 없이 쏟아졌다.

연륜에 대한 예의가 무너진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오던 국회의원만의 특권으로 비칠 만큼 일국의 국무총리를 세워놓고 초등학생 야단치듯 호통을 치기도 한다.

과거 국회에서 빠루로 문을 뜯어내거나 의사당 발언대에 올라가 기습날치기 법안 통과는 물론 이를 막겠다고 팔짱을 끼고 인의 장막을 둘러쌓던 장면도 이젠 익숙하다.

복도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나 걸핏하면 정쟁을 전쟁처럼 벌이던 정치인들의 이전투구는 이미 조선왕조 오백 년 전부터 내려오던 풍습(?)이었다.

백성이야 죽든 말든 여진족(만주족)의 포탄이 남한산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한겨울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눠 각자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며 으르렁거리던 관료들이었다. 나라밖은 리비아의 홍수로 수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모로코도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현재 진행형임에도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지도자의 행보가 연일 한국 매스컴에 시간대 속보로 보도되고 있는데 국내 정치인들만 약 6개월 남은 제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회기의 일정이 유종의 미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정부의 방탄이 되고 야당은 무조건적인 여당의 반대만 외칠 게 아니라 상식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적절한 견제를 하는 것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인데, 어떻게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면 과연 3년 반 전 선거 당시 후보로서 했던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을 두고도 말이 많다. 같은 단식을 두고 여야 간의 첨예한 반응은 우리 국민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제3국에서도 보고 있음을 의식해야 할 텐데 단식 방법이나 효과, 그리고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면 국민들 의식수준의 비해 정치인들의 언행이 시대를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의 이모저모를 취재하다 보면 아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어차피 4년 세월 보내려면 당론도 중요하겠지만 의원들 각자의 철학도 어느 정도는 소신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회의원,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아무나 당선될 수 없는 높은 산 넘고 깊은 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보면 나름 기량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의사당 안에만 들어가면 오로지 당론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옳고 그름에 대한 비중보다는 당파싸움에 누가 선봉적인 역할을 했느냐에 따라 언론에도 부각되고 상대 당의 기를 죽이고 말발을 세우는 앞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회 지도층의 말은 말이 아니라 법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막강한 파장력으로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특히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를 생산해 내고 논리적으로 누가 잘 따지고 멋진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방송 카메라 앵글에 잡히느냐에 따라 멋진 의원이 될 수 있으며 말을 더듬거나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으면 언제든지 맹한 의원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모습이 전부일까. 아니다. 얼마든지 상대 당의 장점과 자당의 단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을 갖출 수도 있다. 비속어, 은어, 심지어 경어 대신 반말이나 직급에 ‘님’ 이란 한 글자조차 붙이기를 꺼리는 의원들을 보면 국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의원들의 프로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싸움의 소재를 들어보면 이태원 참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국방부 대응 방침, 대통령 일가에 대한 부동산 투기 등 헐뜯기 쉬운 소재에 국한될 뿐 민생을 찾겠다는 화려한 구호는 각 정당의 정견 발표 뒷배경에 적힌 글귀뿐이다.

같은 4년이라도 개정 법안 발표와 출석 일수 기타 지역구에 대한 관심보다는 공천의 이정표가 어디에 있는지 국민들 바람의 풍향은 어느 쪽인지가 중요했다. 비단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장관급에 속하는 국무위원들도 마찬가지이고 공기업에 낙하산 타고 내려 앉은 기관장들도 마찬가지다.

말은 인격이다. 소는 음매 말고 다른 소리를 낼 수 없고 호랑이는 아무리 입을 다물어도 목에서 으르렁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봉황인척해도 닭 소리를 감출수 없으며 늑대인척해도 개 짖는 소리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말해 잘 싸우는 국회의원은 소리 지르고 삿대질에 욕설을 잘하는 것보다 차분히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조리 있게 설명하며 상대 당의 적절히 예우해 주는 것이 자신의 수준도 올리고 국민들 보기에도, 자라는 아이들 보기에도 덜 민망한 것이다.

속 빈 강정이 겉모습만 보기 좋고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지도층과 상류층의 말은 개인적으로 인격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국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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