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꿈틀대는 지구촌 한반도는
[덕암칼럼] 꿈틀대는 지구촌 한반도는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9.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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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리비아, 필리핀 민다나오, 동독·서독, 북베트남·남베트남, 카메룬. 이 밖에 많은 나라들이 오랜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겪었거나 현재도 진행 중인 상태다.

일명 집안싸움이니 외국 군대, 국제사회에서 이렇다 할 도움도 줄 수 없고 권력 싸움에 국민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죄 밖에 없는 불운한 사람들은 결국 보트피플로 험난한 망명길에 오르지만, 이를 받아줄 국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에 도착한 이들의 삶은 척박한 환경 속에 언제 어떤 식의 위험에 봉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뿐인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이자 대륙의 낙원이었다는 호주는 수개월 동안 타오르는 산불과 다시 엄청난 폭우로 꺼진 산불 대신 수해가 몰아쳤다. 사람들과 동물들, 가옥은 화마가 삼켰다가 다시 물 폭탄을 맞았다.

최근에 베이징, 홍콩, 리비아에 기록적인 폭우로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난대류와 온대류의 결합이 요동치면서 바람만 포함되었던 토네이도는 산불을 삼킨 불기둥을 만들어 지구촌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잠잠하던 지표면도 보란 듯이 들썩인다. 얼마 전 튀르키예 지진이 그러했고 최근 발생한 모로코 지진이 그랬다. 모로코는 빈국이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관심도 끌지 못했다. 여기에 캐나다 산불의 장기화, 하와이 산불로 인한 재해는 더욱 참혹했다. 불을 피해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은 지옥이 따로 없었고 인정사정없는 자연재해는 전쟁 못지않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문제는 곧 닥쳐오는 겨울이다. 한파가 수해 현장이라고 춥지 않을까. 한두 곳, 한두 나라야 도와주고 말고 하는 것이지 온 사방이 피해 지역인데 누가 누굴 도울 것이며, 한두 푼도 아니고 각자 살길을 찾기 바쁜 시대에 돕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도 개인주의, 이기적인 풍토가 확산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점차 각박해진 분위기로 과거처럼 연합군이나 유엔군이 전쟁을 억제하거나 목숨 걸고 도와주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러하듯 대리전 양상이다.

전면에는 양국이 싸우고 있지만 실제로 물자나 무기가 제3국에서 공급되니 사실상 언제 확전될지 모르는 제3차 대전의 서막이라 할 것이다. 다행히 아직 파병까지는 안 나서는 것이니, 이 또한 인심이 달라진 글로벌 시대의 변화라 할 것이다.

여기서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내전이나 자연재해, 기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피해는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이를 전제로 볼 때 한반도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누가 어떤 국가에서 도와줄까.

최근 관계가 원만해진 일본일까, 아니면 영원할 것 같은 바다 건너편 미국일까. 지구본을 돌려보면 한반도의 면적, 특히 남한의 넓이는 그리 넓지 않다. 자연재해가 제아무리 심각해도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며 전쟁이 난다 해도 과거처럼 유엔군이 달려와 줄 형편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안전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일간의 공조 체제가 대외적으로 알려지자, 북한의 수뇌부가 러시아를 방문, 무기 체계를 들러보며 이를 전 세계 매스컴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조 체제를 과시했다.

영국에서는 최악의 만남이라 했고, 미국에서도 심상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약삭빠른 일본에서도 온통 머리 굴리는 분위기가 역력하고 중국에서도 말리기는커녕 박수치는 모양새다.

북한의 러시아 방문, 극빈 대우에 마치 공산주의 연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푸틴의 적극적인 접대가 여과 없이 대한민국 안방극장을 도배했다. 반대로 북한에서는 남한의 연속극만 봐도 수용소로 끌려간다.

북한의 야간열병식은 유튜브를 통해 온 국민 누구나 모두 낱낱이 볼 수 있는 시대에 이제 북한의 실상에 대한 검색이나 강대국들의 무기 자랑은 동네 반상회 회보보다 더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대한민국 국민만 위기에 적응해서인지 망태 할아버지가 너무 자주 출몰해서인지 그리 긴장하거나 심지어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러거나 말거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에 가든지 베이징에 가든지 그리 관심이 없다.

자국의 안보에 대한 마지노선도 이미 전 정권에서 상당 부분 평화를 전제로 축소해 놓았고 환경보호를 전제로 반쯤 죽여 놓았던 원전도 현 정권에서 다시 살리니 그사이 발생한 경제적 손실과 국제사회에서 실종된 신뢰는 어느 정권에서 다시 살릴 것인가.

이제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에 대놓고 전후 복구에 참여하겠다고 경제협력을 약속했고 북한은 러시아와 공조 체제에서 언제 어떤 식의 무기를 지원하고 심지어 파병까지 할지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참한 삶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있는 것만 잘 지켜도 다행이다. 운이 좋아서인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력이었는지 몰라도 자연재해가 타국처럼 극심하지는 않았다.

지진도 수해도 산불도 없었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국토 전체가 휘청거릴 만큼 크지는 않았다. 문제는 있는 복도 차버리는 현실적 안일함이다.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 남과 북만 조용히 각자 살길을 찾으면 먹고 사는 데는 그리 지장 없는 현재의 행복이 복에 겨워서인지 언제 어떤 식으로 내란이 발생할지 모를 만큼 이념대립과 국론분열의 도가니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겉만 멀쩡했지 속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선친들이 어렵사리 찾은 국권은 태극기 게양조차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적 풍토가 만연했다. 도덕과 예의 실종은 이미 수십 년 전 케케묵은 꼰대들의 합창이고 무감각해진 안보 의식과 무관심한 국민들 간에 서로 신고하고 모든 생활에서 안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한반도 100년, 1000년을 돌아봐도 지금처럼 호강에 겨운 적은 없었다. 언제까지 갈까. 이제 우리 국민들이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야 할 시점이 됐다. 때 묻은 장갑과 장화를 신고 외국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자주국방과 자력갱생의 의지를 살려야 하며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의 몫이다. 행복도 불행도 우리가 만들고 자초한 일이다. 정치권의 모든 면면도 유권자가 만들었듯이 후손들의 미래도 현재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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