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창] 오빠생각
[동심의창] 오빠생각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11.17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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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생각

                                               최순애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국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이> 1925.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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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최순애는 1914년 수원 북수동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던 아버지 최경우와 어머니 마정심 사이의 1남 5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최순애는 열한 살 때인 1925년 소파가 발간하던 <어린이>지 11월호에 「오빠 생각」을 발표했다. 그의 오빠는 개벽사에 근무하며 소파 방정환을 지척에서 도왔던 최신복(필명 영주, 1906~1945)이다. 그는 <고향의 봄>을 지은 세 살 위의 이원수와 결혼했다.

이원수와 최순애의 결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순애 집안에서는 이원수가 편모에 집안이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반대가 심했지만, 최신복은 이원수의 문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집안의 반대를 설득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36년 이원수와 최순애가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최순애는 「오빠 생각」 초고에 ‘비단 구두’ 대신 ‘비단 댕기’라고 썼는데, 오빠인 최신복이 ‘비단 구두’로 고쳤다고 회고했다. 최순애는 잡지출판 일로 서울에 자주 가서 소식도 없는 여덟살 위 신복 오빠를 그리워하며 「오빠 생각」을 쓴 것이다.

작곡가 박태준(1900~1986년)이 1930년에 곡을 붙여 동요를 만들었는데, <고향의 봄> 과 더불어 국민동요가 되었다. 

최순애도 적지 않은 동시를 발표했지만 6.25전쟁 피난 중에 원고 뭉치를 분실하였다. <어린이>, <소년>, <아이생활> 등에 발표한 「봄날」, 「가을」, 「느림보 기차」 등 10편만 전해지고 있다. 그는 1998년 6월 28일 뻐꾸기 소리 들리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에서 17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영원한 오빠 이원수를 그리며 타계했다.

(사)수원문화도시 포럼이 주관하여 「오빠 생각」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장소는 최순애 시인이 다녔던 매향여중이나 과수원이 있었던 장안문 부근 북수동이 될 수도 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 마을에 살던 최순에는 오빠를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 올게"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오빠는 뜸북새, 뻐꾹새 등 여름 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 귀뚜라미가 우는 늦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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