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응답하라 시골집
[덕암칼럼] 응답하라 시골집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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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얼마 전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람 사는 향기를 맡게 하는 훈훈한 감동을 심어주었다.

1988년 당시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길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이웃 간에 한집처럼 허물없이 정을 나누는 장면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멀리 보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주거문화의 변화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아파트 전성시대가 몰고 온 흔적들이었는데 단독주택 중심의 환경은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아침이면 마당을 쓸고 식사 때가 되면 주부들이 아이들 이름을 소리쳐 불러 모으던 시절.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정이 사랑이 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면서 시대적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진 드라마였다.

그러한 주거문화는 탈 지방,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방의 빈집이 급증하였다. 한때 대가족이 모여 살며 웃음꽃 피우던 사람 소리가 정적으로 변했다. 제2의 쌍문동 사람들의 이주현상은 전국에서 발생했다.

마당을 지키던 누렁이도 안방에서 귀빈 대접 받는 외래종 애완견으로 바뀌었고, 새벽마다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온 밭을 헤집고 설치던 닭들의 행진도 배달업체의 치킨으로 바뀌어 토종닭은 구경도 할 수 없게 됐다.

요즘처럼 추운 날 외양간의 송아지를 먹이려고 가마솥에 끓이던 쇠죽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는 장면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어느 한적한 어촌에서 그물 손질하던 아낙네는 아들·딸의 성화로 서울로.

그렇게 텅 빈 농·어촌은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한번 정착하면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대대로 살던 일명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정과 한과 눈물, 땀이 배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향은 사람이 떠나고 텅빈 집만 남았다.

최근 모 국회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의 농촌 빈집이 2018년 38,988동에서 2022년은 66,024동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5년 동안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둥지를 옮긴 제2의 쌍문동 사람들이 27,036가구, 1가구당 2명만 가정하더라도 5만 4천 명이 넘는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의 30년 전 모습과 흡사하다. 한국이 일본의 30년 전 전철을 밟고 가고 있다. 일본은 현재 빈집으로 지방자치단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과정이 전개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지역적 분포를 보면 전남, 경북, 전북 순으로 많다. 빈집에 대한 철거는 18%에 그치고 활용 비율은 불과 0.7%대로 제자리걸음이다.

나머지는 그냥 방치된다는 산술적 결론이다. 빈집은 화재나 붕괴 등 안전사고와 농촌환경 저해, 범죄 장소 악용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는 농·어촌 정비법상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농·어촌 건축물을 빈집으로 정의하고, 빈집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빈집을 철거하면 남는 사람들은 도시로 갈 수 없는 고령이거나 경제적 열악함에 엄두도 못 내는 빈민들이다. 이들에게 빈집은 남은 자의 고독이요 떠난 자들의 그림자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유통과정도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당연히 보따리를 쌀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도미노 현상은 남은 자들에게는 악순환이다.

텅 빈 농·어촌 고령의 일부 주민들만 남아 질병과 각종 안전 문제의 사각지대로 남게 됐다. 대부분 영남, 호남의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1970년도부터 시작된 민족 대이동이었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상경 러시가 있었지만 이제는 자리 잡은 현세대들이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거나 그나마 남은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몰리는 것이다. 대안이 없을까.

정부는 귀농·귀촌 유치지원 사업과 농촌공간정비사업 등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빈집은 최대한 활용하고 철거가 필요한 빈집은 신속하게 정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농촌 빈집의 활용과 철거 모두 전시행정이다.

말만 요란한 정책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성과를 보인다. 철거 대상으로 파악되고도 실제로 철거한 빈집과 활용이 가능하다고 파악된 빈집 중 실제로 활용된 빈집의 비율은 실제 1%도 안 되는 실정이다.

관련 부처의 안일한 탁상행정이 낳은 결과물이다. 악순환은 빈집부터 시작된다. 온 동네가 빈집으로 유령 동네가 된다면 누가 이농을 결심할 것이며 그나마 남은 사람들조차 살기가 불안해지니 이농현상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은 비단 농·어촌뿐만 아니라 도시의 변두리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가령 대전시의 경우 3,857채가 빈집 상태다. 대부분 구도시에서 신도시로 떠나면서 생긴 집들이다.

소유자를 찾기도 힘들고 소유자들은 철거하는 것보다 방치하는 게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 또 굳이 철거하지 않아도 사유재산이기에 별도의 과태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전은 예산이라도 있어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00억 원을 투입, 방치된 빈집 40채를 사들인 뒤 주차장과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외국의 경우 빈집 관련 세금을 부과한다.

현재 한국의 실정법상 그러한 법률은 개정이 필요할 뿐 어느 국회의원이 표 떨어질 일에 앞장설 것인가. 영국은 2013년, 캐나다 밴쿠버는 2017년부터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 교토시도 지난해 3월 빈집세 도입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올 상반기 총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르면 2026년부터 세금을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빈집에 대한 철거보상비도 문제다. 기껏해야 지자체별로 약 300만원 정도인데 그 돈으로 철거업체에 의뢰하면 실없는 사람이란 소리 듣는다.

더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머문 자리는 아름답다”고 했다. 화장실 뿐만 아니라 살던 집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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