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잡는다고 잡아질까
[덕암칼럼] 잡는다고 잡아질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0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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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또 돈 문제로 나라 안팎이 난리다. 국세청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내용은 연 수천%의 살인적 고금리로 서민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악성 사채업자들에 대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뿌리 뽑겠다는 각오를 천명했다.

출발은 대통령실이었다. 가장 악질적인 163명을 1차 표적으로 정하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간단히 말해 사채 문제가 어제오늘 일인가. 지금까지 무엇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한 것처럼 서슬 퍼런 칼날을 빼 든 것인가.

호랑이가 토끼를 잡으려면 바람 부는 반대 방향에서 신중하게 한발씩 다가서야 한다. 경찰이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을 검거하려면 오랜 기간 뒷조사와 충분한 수사망을 형성한 뒤 관련자들을 사전에 꼼꼼하게 물색하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고 관리하는 부처이지 범인을 검거하는 능력은 경찰이 훨씬 더 나을 텐데 승냥이 잡는다고 어부가 그물을 들고 숲에서 설치는 형국이다. 과연 당찬 포부처럼 얼마나 검거할 것이며 이러다 슬그머니 시간이 약이 되고 말면 약자였던 사채의 먹잇감들은 “차라리 말이나 말지”라며 협조했던 자들에게 후환이 더 할 뿐이다.

사채업자들을 검거하려면 처음에 사채를 구하려는 서민 입장에서 출발해 거미줄 같은 망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달려도 보고 검거 이유에서 발표했듯이 악질적인 수금 형태에 직접 시달려도 봐야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 모색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천문학적 고금리 사채를 쓰는 것이며 제도권 밖에서 이뤄지는 만큼 음지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요건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현재 공표한 제목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다 잡으러 간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다 도망가란 뜻인가. 아니면 선거철이 다가오니 국민들 인심이라도 사려고 생색을 내는 전시행정인가. 어느 바보 같은 사채업자가 국세청 조사에 가만있다가 잡힐 만큼 아둔할까.

돈을 뿌리고 걷는 방법부터가 불법이고 여차하면 꼬리 감춰버리면 그만인데 소나기 잠시 피하려고 정부의 철퇴를 가만히 맞고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사채업자에 대한 단속은 수십 번도 더 있었다.

그런데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1금융권의 까다로운 조건을 못 맞추면 다음 단계인 제2금융권, 그것도 안 되면 제3금융권으로 넘어 가는데 그마저도 안 되니 사금융을 찾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바보가 연리 2%나 4%대인 1금융권 돈을 마다하고 연 1.000%의 사채를 쓰는 것일까. 까다로운 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그런 것이며 그나마도 목을 축일 수 있는 구정물이기에 비싼 줄 알면서도 마시는 것이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다. 괜히 어설프게 나서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결과만 초래한다면 사채업자들 배짱만 키워놓게 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금융권에 대출이 안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서민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 사채시장이다.

어쩌면 당연한 시장경제 논리고 누가 개입한다고 달라질 일 없는 것이다. 사채 쓸 일이 없다면 사채업자 입장에서 고객이 없는 것이고 당연히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문이 닫혀있으니 당연히 다음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이것을 단속한다고 될 일인가. 불가에서 가장 무서운 지옥 벌을 받는 것이 사채업자, 즉 고리대금 업자인데 죄 중에 가장 중죄라 한다. 채무자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이자는 잠들지 않으며 돈 갚는 날은 빨리도 다가온다.

지금처럼 정부가 사채업자들을 잡아들이면 그나마 고금리로 돈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어디서 돈을 구한단 말인가.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이 아니라 생명이며 삶의 일부가 전부가 될 수 있는 위기의 절벽에서 찾는 것이다.

틀어막았으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급전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게 되면 그다음은 어쩔 것인가. 물론 고금리, 잘못된 불법이고 근절해야 맞는 것이다. 어느 사채업자를 만나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고금리라고 하는데 사채업자들이 불안정한 담보나 신용불량자에게 돈을 빌려주면 회수율은 은행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오히려 안정된 여건 속에서 저금리지만 이자놀이를 하는 제도권내의 은행들은 해마다 상여금 잔치를 하지만 정작 사채업자들의 수익률은 그리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예로 내놓은 연리 1,000%대 이자나 신체 포기 각서 등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일부를 전체로 몰아 대국민 인기놀이를 한다면 이는 사채시장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공감하는 것은 그렇게 될 경우 소액으로 막을 수 있는 부도나 기타 급전 시장이 빙하기를 맞아 얼어 죽는 사람이 도처에 널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경우는 사채업자 89명, 중개업자 11명, 추심업자 8명 등 악질적 불법 사금융업자 108명에 대해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철저한 점조직으로 형성된 이들의 수법을 보면 조직원 간 가명, 대포폰은 물론 수시로 사무실을 변경하고 비대면 형태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불법이므로 가해자로 칭할 수 있다. 제도권 대출이 어려운 취업준비생, 주부 등을 대상으로 비교적 추심이 쉬운 소액·단기 대출을 해주며 연 2000~2만8157%의 초고금리 이자를 수취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자가 아니라 독약이다. 변제기일이 지나면 욕설과 협박으로 상환을 독촉했고 채무자 얼굴과 타인의 나체를 합성한 전단지를 가족, 지인에게 전송하겠다고 협박·유포하는 나체 추심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면서도 돈이 사람 잡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