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
[덕암칼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1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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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의 첫 대목이다. 은은하면서도 구수한 톤의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인기를 모았던 가수 양희은의 한계령은 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노래 한 곡에 담긴 가사 내용만으로 산의 운치를 공감하게 한다.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대목에서는 힘든 현실을 훌쩍 버리고 어디론가 안주할 곳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가 솔깃한 대목이다. 그렇다. 산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만 요란하다.

산은 어머니처럼 한없이 품어주고 늘 위로해 주는데 사람만 쓰네 다네 하며 세상살이 온갖 고초를 산에다 토해 놓는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등산이다. 한때는 묻지마 관광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또 한때는 정치인들의 조직 발판이 되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산은 춘하추동 사계절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그 오밀조밀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에 감탄을 금할 길 없다. 산은 혼자 있지 않고 시냇물과 산새와 나무와 돌과 각종 곤충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현대 문명이 아무리 잘나도 모두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의 공간이다.

12월 11일은 ‘세계 산의 날’이다. 해외여행을 떠나 눈 쌓인 정상에 자신의 모습을 함께 담아야만 멋진 산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이 100곳이라면 10곳도 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해외 산이다.

필자는 독자들이 굳이 해외에 가기 전에 우리나라 산이라도 돌아보고 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바람을 이 글에 적는다. 지금은 큰 산이 다소 겁이 나지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웬만한 산은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통로였다.

오를 때는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채워도 정상에 올라 운해의 멋진 장면과 일출을 보노라면 땀이 온몸을 적셔도 마냥 흐뭇하고 뿌듯함을 공감하게 된다. 힘이 들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도지는 등산에 대한 기대감.

그렇게 10년을 넘게 쫓아 다녀도 우리나라 산의 절반에 절반도 못 가 봤는데 이제는 등산을 두려워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필자는 권한다. 산이 높으면 천천히 오르면 될 것이고 걷다 보면 사소한 병들은 스스로 잠재워진다.

어떤 이는 산의 봄꽃과 여름날 풀벌레 울음소리와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을 구경조차 못한 채 오락 게임만 붙잡고 있다가 그 소중한 세월을 다 보낸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가고 싶어도 휠체어에 앉아 구경만 해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스스로 걷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정상의 장관은 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자산이다. 간혹 대형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보면 저걸 어떡하나 저기 살던 들짐승, 날짐승, 곤충들과 계곡에 사는 물고기까지 모두 떼죽음을 맞이할텐데 수 십 년 된 고목들과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온갖 잡목들의 소실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다.

자연발화든 인간의 실화였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불타는 숲속은 아비규환이다. 인간은 인명손실이 중요한 것이지, 인명피해만 없다면 산이야 얼마가 타든 별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언젠가는 꺼진다. 호주의 산불처럼 몇 달동안 인공위성에서도 관찰될만큼 대규모 산불이 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조심하고 확산하기 전에 조기진화가 되었다면 불행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강원도 영동지역과 동해안지역 산불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지만 여전히 그때 뿐이다. 소방당국은 불이 나서야 온갖 장비동원과 인력이 투입되었다가 진화되면 더 이상 관심도 끌지 못할뿐더러 여차하면 가동되지 못했던 허물만 여론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 동해 바다로 간다. 파도를 바라보며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한동안 멀거니 바라보다 다시 돌아오는데 망망대해의 수평선이 시름을 달래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산은 어느 정도의 육체적 노력을 요구한다. 바다처럼 운전대만 잡고 있으면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렵게 올라와야 그때서야 답을 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고. 풀리지 않았건 현실적 어려움의 이면에는 자신의 욕심이 있지는 않았는지 그때서야 정답을 준다.

등산은 단체로 가는 것과 단독 산행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단체로 가면 등산기록은 많이 남길 수 있으나 앞 사람 뒤꿈치만 기억난다. 물론 속보로 함께 동행 하자니 걸음도 빠르고 기념촬영도 남기면 동호인 간의 화합도 다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독 산행은 산과 함께 산의 정취를 느끼며 천천히 등산하는 과정에서 온갖 진풍경을 다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풀벌레조차 친구가 될 수 있고 야생 들꽃의 예쁨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야간산행을 하다보면 어둠속에 들리는 노루와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제격이다. 산이 어머니 품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산행을 갔다고 멧돼지에게 피해를 입었다거나 뱀에 물려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등산로만 다니지만 산속의 모든 생물들은 사람의 통로에 굳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욕심 때문에 엽총을 들고 다니거나 안 해쳐도 될 동·식물들 심지어 기암괴석까지 산에서 무단채취 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들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간혹 자연동굴과 볼만한 장소에 가면 어김없이 온갖 낙서들이 무식한(?) 등산문화의 일면을 장식한다. 필자가 한때 해마다 야간 단독산행을 다녔던 이유는 처음 어둠속으로 입산할 때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망설이는 것이지,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면 선택의 여지는 없어진다.

밤이 깊을수록 산이 높을수록 두려움도 사라지고 태산 같이 커다란 산중에 티끌보다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 있고 한낱 소나무 보다 오래 살지 못하는 미물이 태산을 옮기겠다고 장담하며 사는 게 인간이고 그런 인간을 품어주는 것이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