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여기서 정월이란 1월을 의미하며 대보름이란 한 달의 절반인 보름날로서 음력 1월 15일에 해당하는 한국의 전통 명절이다.
흔히 정월 자를 뺀 대보름이라고도 불리지만 명칭만 다를 뿐 같은 의미다. 원래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내기도 했던 명절이었으며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다.
지금이야 이름만 대보름이지만 과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을 만큼 성스러운 날들이었다. 그런 만큼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이에 걸맞은 풍습으로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해서 안 자고 버티던 순진한 믿음도 있었다. 밤이 되면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가 유행했었다. 아마 지금 50대라면 깡통에 관솔불을 피워 빙빙 돌리는 망우리 불놀이(쥐불놀이)에 대한 추억이 있으리라. 필자 또한 꽁치·고등어 통조림 깡통이 그렇게 귀하게 쓰일 줄 몰랐었다.
이런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 옥슨 80의 ‘불놀이야’가 아마 그런 배경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대보름에는 종류를 불문하고 김치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에 이날만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김치를 피했다고 한다. 먹거리에 대해서 강조하자면 정월 대보름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아침 일찍 부럼을 나이 수만큼 깨물어 먹는 관습이 있었다.
과학적으로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으며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 여성들의 놀이로는 ‘다리밟기’가 있었는데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물론 아득한 옛날이야기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 해도 달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첨단 과학이 모든 미신을 초월하지만 과연 그렇던가. 달이 뜨면 너도나도 손잡고 가까운 아파트 옥상과 베란다 아니면 공원 높을 곳이라도 올라가 두 손 모아 빌지 않았던가.
대부분 건강과 사업 성공, 취업, 진학 등 원하는 것을 비는데 그 마음은 과학을 초월하지 못한다. 이 밖에 연날리기나 사자놀이,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놀이도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모두 케케묵은 꼰대들의 어설픈 놀이문화로 퇴색된 지 오래다. 그냥 이대로 잊어버리거나 다른 문화에 익숙하면 되지만 정작 우리 고유민족의 자산은 어디로 갈까. 오늘은 그 많은 놀이문화 중 윷놀이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윷놀이와 화투를 비교해 보자면 화투는 영화 타짜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지금까지 투견장, 소싸움, 자전거 경륜장, 말이 달리는 경마가 도박판으로 이어졌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윷놀이가 도박에 도용됐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표적인 화투의 근본을 들춰보자면 총 48장으로 구성된 놀이용 패로 일본 화투 그림의 기원으로는 우리나라의 투전과 십장생, 사군자 등이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에서 전래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한국에 이 화투가 전해진 것은 대략 조선 후기라고 전하고 있다. 민화투부터 고스톱, 나이롱뽕, 또이또이, 도리짓고 땡, 맞고, 육백 등 많은 놀이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고스톱이다.
경로당에서도 통용되는 고스톱은 민화투보다 한 끗발 위인데 놀이를 즐기는 동안 오가는 말이 보통 상스러운 게 아니다. 가령 온 가족이 마주 앉아 고스톱을 치다가도 시아버지한테 똥을 줄 테니 먹으라든가 아버님 쌌다든가, 어머님 죽으세요 등등. 별 요사스러운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뿐인가. 연사금지라고 해서 두 번 죽을 수 없는 법도 헌법보다 더 대중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스톱의 법칙이 육법전서보다 더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손가락으로 치다가 손가락이 잘려도 손목으로 친다할 만큼 도박의 중독성은 폐인 경지까지 끌고 간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단도박 단체도 생겨났고 사행성 성인오락게임에 대한 단속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도박은 일반 사람들의 한 방에 성공이라는 꿈을 깨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필자가 도박판 검거 현장을 동행 취재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것만 해도 도박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반면 윷놀이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 때로는 사람 사는 세상사의 축소판이라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윷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엎치락뒤치락 판이 몇 번이고 뒤집어지는 아슬아슬함을 보며 마치 인생사가 윷놀이 판과 유사하다. 다 죽어가다가도 기적처럼 다시 회생하는가 하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윷말의 진행 상황은 마치 전쟁에서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늠케 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던져도 도무지 장담할 수 없는 네 개의 윷가락은 빽 도라는 기이한 설정으로 반성과 인생 역전의 기회가 있음을 시사한다.
놀이가 진행되는 내내 단 한마디의 상스러운 말이나 상대방을 죽이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이기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점도 화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윷놀이. 카드나 마작을 해야 있어 보이고 우리 것은 촌스럽다는 인식은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천하게 여기는 선입견이다.
정월 대보름날 과거처럼 마당이나 들판이 없어 쥐불놀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연날리기나 윷놀이 정도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해봄직 하지 않을까. 그래야 자라는 아이들이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다. 훗날 그 아이들이 자라 다음 세대와 둘러앉아 지금의 풍습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 것은 귀히 여기고 함께 공감하며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 지켜갈 때 보존될 수 있다. 하나 둘씩 잊혀지는 우리민족의 슬기와 지혜가 왜 긴긴 세월 속에 유지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