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역사적 범죄의 부역자들
[덕암칼럼] 역사적 범죄의 부역자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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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흥행 가도를 달렸던 서울의 봄이 지난 7일을 기점으로 1300만명 관객을 돌파했다. 여기에 극장 동시 IPTV, 온라인 및 모바일에서 VOD 서비스를 오픈했으니 이번 설 명절 시청인구까지 포함한다면 영화 볼 시간이 되는 대다수의 국민은 서울의 봄을 봤다고 추정할 수 있다.

관건은 내용이다. 같은 은막의 화면이라도 어떤 내용이기에 그 많은 관객들이 꼭 봐야 할 영화로 인식하고 있을까. 필자 또한 시간상 안방극장을 통해 최근에 시청했는데 마지막 장면이 대미를 장식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킨 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지켜온 과정. 국민을 보호하라고 쥐여 준 총으로 아군끼리 벌인 총격전. 적을 막으라고 운행을 허락한 장갑차를 몰고 행주대교를 건너는 모습은 평소 알고 있었던 것과 실제와 유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도 있었고 충격도 느꼈다.

제11대·12대 대통령을 연임하며 8년간 군사정권을 유지하다 친구인 노태우에게 제13대 대통령을 넘기면서 또 5년간 도합 13년간 서울에는 봄꽃만 피었지 봄이 오지 않았다.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봄은 그렇게 차가운 군홧발에 짓밟히며 선언 같지도 않은 6·29 쇼맨십까지 감동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대학가에는 연일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지만, 국민들은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질만 하느냐는 핀잔으로 군정이 합리화되던 시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2021년 11월 23일 사망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도 한 달 빠른 2021년 10월 26일 향년 88세로 삶에 마침표를 찍기까지 권력의 든든한 배려 속에 부와 영광을 누렸다.

문제는 그들은 물론 가족들과 부역자들까지 떵떵거리면서 살게 된 배후, 공범은 누구였느냐다. 당사자들이 누린 호사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인이 누리는 만큼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비단 삼청교육대 말고도 군정 시절 고문을 당한 사람들과 10·26 사태 이후 정권을 찬탈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름 애국심으로 이를 만류하거나 총격전을 벌이다 다치고 죽은 사람들의 희생은 지금도 재조명되지 않고 있다.

12·12 군사 반란을 비판하는 장성들을 전역시키거나 보직 변경을 단행하는가 하면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공석이던 중앙정보부장까지 겸임하면서 서서히 대한민국의 국운은 민주화와 멀어지게 됐다.

국민들은 몰랐다. 그날 밤 역사의 변곡점이 방향을 달리하고 향후 13년간 민주화가 피어나지 못하는 미래가 올 것임을.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이 처음일까. 아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지난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지난 2018년 2월 6일 국가 보훈처가 정한 2·28 민주화운동 기념일 행사를 해마다 관련 부처의 주관하에 진행하고 있다. 당시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질러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해 일어난 운동이었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리자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불거진 시위였다.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으로 확산했고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에 큰 이정표로 기록됐다.

위의 두 사건 모두 권력 찬탈의 과정이었으며 죄 없는 국민들의 희생을 전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전자의 사건은 44년 전이고 후자는 64년 전의 일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보장이 있을까.

1960년과 1980년 20년을 주기로 벌어진 두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가 36년간 지속되었다면 1945년 8월 15일 해방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7년 만에 2·28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10년부터 2010년까지 100년간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역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심했다. 이제 살만한 2020년대 들어 참담했던 전쟁의 폐허는 벗어났지만 겉만 멀쩡했지 속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가임 여성이 넘쳐나도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놀고 있는 청년들이 수백만 명이라도 일자리가 없다 하고 자살율은 전세계 1위를 기록하며 청소년들은 꿈과 희망이 없다고 한다. 국가는 세금을 거둬 특정인의 정권 연장 예산편성으로 막대한 국고를 소진해도 3선·4선이 가능해지는 현실에 봉착해 있다.

군홧발로 밟고 일어선 권력은 떵떵거리며 살아도 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집회도 열릴 일이 없을 것이다. 사회적 참사로 인한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마주 보고 국론이 양분되는 현실 속에 진정한 민주화의 기반은 심한 요동을 치고 있다.

이제는 민주화보다 새로운 변혁의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정당 정치보다 새로운 혁명을 통한 국민적 통합. 게을러진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어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는 참신한 정치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서울의 봄처럼 군인이 반란으로 가진 권력이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잔다르크처럼 등장해 여성들이 안심하고 임신하며 남성들이 다시 장갑과 장화를 신고 현장에 뛰어들 수 있는 동기를 명확히 부여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20년 주기로 우리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면 이제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이할 시점이다. 진정한 권력이란 국민적 공감대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미 각본대로 정해진 정치권의 노림수에 언론의 부추김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기존의 틀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기념하는 2·28 민주화운동의 기념일 당시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명복을 빈다.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