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 해야
[덕암칼럼]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 해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5.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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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필자가 육십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돈을 벌어봤을지 돌이켜보니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어릴 적 공사장의 아르바이트부터 현재 글로 품삯을 받는 언론인이 되기까지 때로는 척박하고 또 한때는 풍요로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모친에게 이러저러하다고 자랑도 하고 엄살도 피워보았다.

그럴 때마다 모친께서는 돈은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 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실제로 살아보니 적은 금액도 쓰기 나름이고 돈의 크고 작음보다 평상시 얼마나 검소하게 사느냐와 돈의 사용 출처에 대한 분별을 의미한다.

길가에 버려지거나 방치된 10원짜리 동전을 모은 것이 도둑이 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질 때까지 모았으니 그 정성은 가히 본보기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자고로 돈이란 쓰기에 따라서 얼마가 있든지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100만 원짜리 급여를 쪼개고 쪼개 10만 원을 저금하는가 하면 300만 원도 모자라 쩔쩔매는 가정도 있고 1,000만 원을 버는 가장도 가족의 사치와 허영을 견디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한편 돈은 마약과도 같다. 한번 써 버릇하면 습관이 되어 충분히 아낄 수 있는데도 돈이 아니면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쓸 것 다 쓰고 저축한다는 말은 불가능한 말이다.

한편 부모에게 용돈을 전할 의지가 있다면 달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전할 것이지 필요하면 달라고 하는 말 자체가 줄 의사가 소극적이라는 점도 돈의 지출에 대한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사람의 본능이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다. 돈이 없으니 벌려고 장사를 하거나 투자하는 것인데 자영업의 97%가 5년 이내 폐업한다는 통계는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지천으로 널렸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디 사업을 벌인 가장뿐인가. 함께 살아보려고 동조한 아내는 물론 한창 학교 공부에 열중해야 할 자식들의 난감함은 무엇이고 죄 없는 보증인과 대출금융사의 원리금 회수는 어쩌란 말인가.

없으니 시작한 사업이고 빚내서 했다가 망했으면 빚만 늘어난 것인데 1차 사업장에서는 인력이 없어 난리고 계절근로자까지 받아야 할 형편이지만 여전히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자영업은 전문성과 대단한 경험 없이 뛰어드는 자체가 무덤을 판다고 볼 수 있다.

안 되면 1차 산업, 2차 산업에서도 얼마든지 많은 일자리가 넘친다. 손에 흙 안 묻히고 편히 살려는 욕심과 허영심이 부른 화에 불과하다. 얼마 전 정부가 벼랑 끝에 몰린 취약계층을 위해 서민 정책금융 대위변제에 대한 지표를 발표한 바 있다.

취약계층·소상공인이 고금리·고물가·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으며 햇살론을 이용한 취약계층이 원리금을 갚지 못해 정부가 이들을 대신해 갚아준 비율이 높아졌다. 빚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재정 부담 가중은 물론 한정적인 보증 재원 탓에 앞으로 취약 차주에 대한 신규 지원을 시행했는데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빚을 못 갚았을 때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것을 대위변제라 하는데 올해만 1조 1,159억 원을 편성했다. 이미 작년에도 6,795억 원을 갚아주었고 올해는 64.2% 늘어난 규모다.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올해 예상 대위변제액도 4조 6,395억 원에 달해 전년대비 42% 증가했다.

이처럼 빚을 갚아주는 금액과 범위가 늘면서 빚에 대한 무책임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밑천이 없으면 못할 일도 일단 빌려서 했다가 못 갚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자본주의 근간을 흔든다.

너도나도 같은 생각이라면 누가 피땀 흘려 일할 것이며 귀한 남의 돈 빌리는 것을 우습에 여기지 않을 것인가. 한 달에 몇천 원 수준인 소액 대출의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크게 늘고 있고 갚지 못하면 그다음은 악순환의 반복이다.

근로소득자 외에 소상공인의 상환능력도 마찬가지다. 일단 가장 문턱이 낮았던 신용보증기금의 소상공인 위탁보증 사업에서 대위변제액은 2022년 1,830억 원에서 지난해 5,070억 원으로 3배가량 뛰었고 2024년 1분기 까지만 해도 1,2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규모를 이미 추월했다.

물론 코로나19 기간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등으로 미뤄졌던 부실이 지난해 본격화하면서 작년 말 기준 대위변제율이 올라간 점도 있지만 그래도 빚은 빚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현재의 경기 변동성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상환 여력을 고려할 때 자본이 빠른 속도로 고갈된다.

돈이란 게 돌고 돌아야지 멈추면 다음 빚을 낼 사람에게는 그만큼 기회가 상실되는 것이며 금융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부적인 원인을 찾아보면 건설 분야에서 많은 공백이 생겼는데 2023년 기준 건물건설업 취업자 수는 2022년에 비해 2만 8,000명 줄었다.

건설업과 관련된 건물·산업 설비 청소, 방제 서비스업, 부동산 관련 서비스업, 건축·건축 마무리 등을 포함하면 7만 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미 건설업계의 적색 신호등은 작년 초부터 켜졌다.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 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건설 자금 조달을 위해 지난 2020년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발행했고 강원도가 이에 지급보증을 했는데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진태강원도지사는 그해 9월 28일 강원도는 지급보증 의무 이행 능력이 없다며 GJC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12월 15일 기업회생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철회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미 채권 금리 상승과 한전·도로공사 회사채 유찰 등 채권시장에 이미 크나 큰 파장을 미친 이후였다. 도미노 현상으로 1군 업체에서 단종 건설로 다시 하청업체로 불황을 겪고 거리로 쫓겨 난 건설 실업자의 배고픔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몇천 원도 못 갚는 이자는 누가 갚아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