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현장에서 - B.러셀의 권력애
역사 속 현장에서 - B.러셀의 권력애
  • 이달순 수원대 명예교수 kmaeil@
  • 승인 2008.06.0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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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러셀이 “권력(Power)"을 출간한 것은 50년 전인 1958년이었다. 그는 이 저서에서 권력을 ”의도한 효과를 창출하는 힘“이라 하였다. 98세까지 살면서 70년간 저술활동을 한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철학자였다. 이에 비해 56세에 세상을 떠난 M.베버는 권력을 ”다른 사람들의 거부나 반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3세대에 걸친 활기찬 생애에서 철학, 수학, 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 역사, 정치학, 논쟁술에 이르는 적어도 40권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 했다. 또한 수리논리학분야의 저작들과 평화운동 핵무장 반대운동을 비롯한 사회정치운동으로 유명하다.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욕망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권력욕(Love of Power)라고 했다. 요즈음 중국이 세계적 관심사로 떠있으니 중국의 역사에서 찾아봄이 좋을 것 같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측천무후와 서태후의 권력욕이지 않겠는가! 무후는 638년 13세에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궐했다. 649년 태종이 죽을 무렵 이미 태자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 태종이 죽자 관습대로 비구니가 되어 절에 은거하고 있던 중 신임 황제인 고종이 그곳을 자주 방문했다. 고종은 마침내 무후를 궁중으로 데려와 소의라는 비의 지위를 주었다. 655년에는 자신이 황후가 되었다. 무후와 고종 사이에 4남1녀가 태어났다. 무후는 중신들도 차례로 숙청했다. 그리고 장권을 장악하여 고종의 병약함을 핑계로 통치를 해나갔다. 683년 고종이 죽자 태자가 중종으로 즉위하였다. 무후는 중종도 추방했다. 둘째를 예종으로 즉위케 하였다. 65세의 무후는 왕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15년간 통치했다. 그리고 장씨 형제에게 총애를 베풀었다. 무후는 705년에 죽었다. 서태후는 금년이 서거 100주기가 된다. 그는 함풍황제의 후궁으로 1856년 황제의 유일한 아들 재순을 낳았다. 그는 황제를 죽이고 6세인 아들을 동치제로 즉위시켰다. 그녀는 섭정을 했다. 아들이 친정을 하게 되자 그도 죽였다. 그리고 3세인 조카를 양자로 즉위케 하였다. 그녀는 여름별장을 지었다. 평지에 산을 만들고 연못을 파고 석선을 띄었다. 시원한 돌배위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북양 대신 이홍장과의 스캔들도 떠돌았다. 그는 전함을 구입하려고 준비한 돈으로 돌배를 만들었기에 동양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집무실에서 연못까지 가는 복도 천정에는 삼국지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며 정치집권의 야욕을 불태웠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같은 권력자가 절대 나오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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